아는 만큼 보인다고
어려서부터 동물을 좋아했고 내셔널지오그래픽, BBC, 디스커버리 같은 TV 채널에서 동물 다큐멘터리가 나오면 그냥 넘기지 못하는 나였다. 2년여 호주에 사는 동안 지낸 모든 집엔 개나 고양이, 혹은 개와 고양이, 심지어 양도 있었다. 지인의 집에는 캥거루나 퍼슴 Possum이 있을 정도였으니, 주양육자는 아니더라도 동물들과 살아본 경험은 많다. 그럼에도 내 삶에서 열대어나 병아리 말고 다른 동물이 바로 곁을 차지한 적은 없다. 좋아하고 바라보지만 여러 순위에서 밀리다 보니 특별한 경우에만 눈에 밟혔다고 해야 할까.
그런데 2019년, 2020년 치앙마이에서 보낸 여러 번의 시간 동안 갑자기 고양이들이 내 삶에 쳐들어왔다. 코로나가 폭발적으로 확산되기 직전 머물던 태국과 라오스에서부터 차츰 눈에 밟히기 시작했는데 한국에 돌아오고 나니 바야흐로 어딘가 열린 문으로 고양이들이 쏟아져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공적 마스크를 구매할 때 빼고는 모여있는 사람이라곤 접할 수 없던 그즈음에 가는 곳마다 고양이가 보였다.
2020년은 온 세상을 코로나가 휩쓰는 대격변의 시대인 동시에 나에게는 다음 문장 한 줄로 요약할 수 있는 해였다. '갑자기 내 인생 어딘가에서 새로 문이 열려 고양이들이 쏟아져 들어온 것 같았다.'* 짝꿍의 소개로 읽은 책에서 본 한 문장이 내 마음에 진하게 남아있다.
집을 드나드는데 언제부턴가 고양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분명 없던 고양이들이 유입된 것이 아닌데 마치 그런 것 같았다. 이미 장성한 고양이들이 제 자리들을 확실하게 갖고 있다는 점만이 그들이 원래 존재했음을 말해줬다. 1층인 집 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화단과 베란다 앞을 주 무대로 삼는 고양이가 둘 있었다. 괴팍한 아저씨 같은 인상의 수컷 고양이는 꼬리 무늬나 볼 양쪽의 뾰족함 때문에 너구리라 이름 붙였다. 사람이 보기에 참 예쁘고 행동이 빠릿빠릿하고 영특했던 암컷은 삼색 무늬 색깔 때문에 단풍이라 불렀다. 그저 그러기로 나와 짝꿍이 정했을 뿐, 다른 이들이 부르는 수많은 이름이 있었겠지. 너구리와 단풍이 입장에선 그러던가 말던가 알바인가, 싶었겠다.
집 문만 열면 보이는 고양이들은 너구리와 단풍이었으므로 손을 타진 않지만 만나면 그저 반가웠고, 안 보이면 아쉬웠다. 날이 지나다 보니 외출하다 보는 게 아니라 보기 위해 외출했고, 안 보이면 걱정됐다. 항상 인간과의 거리를 깔끔하게 유지하는 단풍이가 여러 날 계속되는 빗속에서 마주치면 적당한 거리에서 길을 가로막고 무언가 어필하기도 했다.
단풍이는 어찌나 영리한지 곁을 절대 내어주지 않으면서도 필요할 땐 칼 같이 나를 찾았다. 슈퍼마켓에 가기 위해 바삐 걸어가던 내 앞에 '양!' 하며 등장하기도 했고, 장마가 이어지던 때에는 문 열고 나온 나를 화단에서 올려다보며 부르곤 했다. 간식거리를 내어주면 확실히 경계하면서도 어찌나 야무지게 먹던지. 이 즈음부터 나는 고양이에 관련된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엔 길 위의 저들을 이해하고 싶은 호기심이 컸지만 점점 반려묘를 들일 준비를 하지 않았나 싶다.
너구리는 단풍이와 함께인 듯 또 아닌 듯 영역을 공유하는 사이였다. 고양이 사이에선 미남상이라는 대두(...)에 좌우로 뻗은 얼굴형과 특유의 꼬리 모양이 딱 너구리 같았다. 나와 짝꿍이 그리 이름 붙였지만 누구에게라도 사진을 보여주면 빵 터지곤 했으니, 적절한 작명이었지 싶다.
너구리는 터줏대감처럼 온 동네를 컨트롤했으며 역시 사람 손을 타진 않았다. 어느 날 밤 짝꿍과의 밤 산책에서 봤던 너구리와 단풍이의 놀이 장면은 책으로 배운 고양이의 습성과는 또 다른, 무언가였는데, 마치 야생동물 다큐에 들어간 기분이었다.
별다른 목적 없던 산책길이 고양이라는 색깔로 다채로워지자 더 자주 나서게 되었다. 무더운 여름이었으므로 낮에는 집 근처를 가볍게 한 바퀴 도는 정도였지만 밤에는 조금 멀리 갔다. 고깃집 데크 아래 틈에 사는 고양이가 있는 상가도 들르고, 방향을 바꿔 현관에 찾아왔다 사라진 고양이와 헤어진 공원까지 돌았다. 사실 고양이가 제 발로 왔던 그 특별한 날 이후 매일 밤 공원으로 향했다. 누군가 관리하는 밥자리가 지구대 바로 뒤에 있었다. 주차장을 낀, 동네에서 제법 넓은 공원은 인근 차도를 제외하면 고양이들이 지내기 딱 좋은 환경처럼 보였다.
며칠이나 지났을까 공원의 밥자리 근처를 살피며 산책을 하는데 작은 고양이가 나타났다. 집에 찾아왔던 고양이하고는 확연히 다른 고등어 태비였다.** 월령은 삼색이 아이와 비슷해 보였는데 당당하게 다가오더니 내 발 주변을 돌며 인사를 한다. 이미 사람 손을 탄 것도 똑같았다.
조심스레 내민 손에 거침없이 박치기를 하며 머리를 비벼대는 녀석에게 작은 간식을 주는데 가까운 차 아래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불빛을 비춰보니 비 오던 날 다리를 절며 사라졌던 그 삼색이였다. 간식을 다 먹은 고등어가 바로 달려가서 서로 엎치락뒤치락 장난도 치고 화단을 달리는 모습을 보니 한 어미 아래의 형제냥이 같았다.
달리는 모습을 보니 다행히 다리는 말짱했다. 아마 우리집에 다녀간 후 달리다 살짝 삐끗한 정도였나 보다. 다시 만나서 반가웠고, 멀쩡히 달리는 모습에 안도했다. 우리끼리 구분해 부를 이름을 붙였는데, 집에 왔던 삼색이는 얼굴의 반이 색깔이 달라 반달이. 새로 만난 고등어 태비는 새벽하늘 색깔을 닮아 새벽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 문장과 제목은 다음 책에서 인용 및 차용했다.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by 무루
** '태비'는 고양이의 털 무늬 중 호랑이 같은 줄무늬를 말하며 회색, 갈색 톤의 바탕에 검정 줄무늬가 있는 경우 고등어 태비라고 흔히 부른다. 노란색 줄무늬의 경우 치즈 태비라 부르며 각각 줄여 고등어 혹은 치즈라 한다.
- 매거진 '묘한 묘연'을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으시면 이해하기 편한 연재 글입니다.
01화. 집사 간택의 순간 - 어느 날 새끼 고양이가 현관에 들어왔다
02화. 갑자기 고양이들이 쏟아져 나왔다 - 아는 만큼 보인다고
03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고양이 - 천진하게, 그리고 아슬아슬하게
04화. 마루 밑 고양이에서 책장 밑 고양이로 - 묘생 역전의 시작
05화. 그렇게 식구가 된다 - 고양이가 집에 온 첫날
06화. 고양이와 이사하기 1 - 웬만하면 추천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