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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묘한 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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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멀스멀 Dec 18. 2021

고양이와 이사하기 1

웬만하면 추천하지 않는다

 쏘이는 하루 만에 새로운 영역에 완벽히 적응했다. 동네 성묘에게 쫓기고 맞으며 고깃집 데크에 숨어 사는 게 전부였으니 처음으로 자기 영역이 생긴 것일 수도 있었다. 여러 날 만나서 익숙한지 두 명의 반려인을 바로 받아주었다. 아무 걱정 없는 곳에 왔다고 생각했을까? 집안을 탐색한 첫날부터 거실에서 잠들었다. 모자란 잠을 한 번에 몰아서 자듯 덮어주는 담요를 편히 덮고서. 내 곁에 대자로 누워 꿀잠을 자는 모습을 보니 길에서 견뎠을 시간에 대한 안쓰러움과 동시에 묘한 안도가 찾아왔다. 집냥이가 되고 싶다는 생각 같은 건 해봤을 리 만무하겠지만 편한 곳을 갈구했음은 분명해 보였다.


편안하게 자는 쏘이
어디서나 자는 쏘이


 쏘이가 오기 몇 달 전부터 고양이에 관한 책들을 읽었다. 길에서 마주치는 애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했다. 고양이와 살기로 마음먹고 책에서 권하는 대로 가까운 동물병원들을 알아봤다. 뚜벅이라 도보 10분 안에 갈만한 곳들 위주로 보니 24시간 병원을 포함해 7곳이 있었다. 인터넷의 평을 다 믿을 순 없지만 하나하나 읽어보고 검진과 예방접종을 할 병원을 정했다. 그러나 그렇게 만난 수의사는 쏘이를 그다지 잘 다루지 못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분이었던 것 같다. 1.7kg짜리 작은 고양이를 보는데 수의사와 테크니션, 보호자 둘까지 도합 8개의 손이 필요했다. 검진 결과 길냥이들에게 흔하다는, 싸움으로 생긴 작은 상처들과 회충알 정도가 걸렸다. 병원에서 목욕*을 하고 돌아와 온 집안을 청소하고 소독하는 작은 소동 외에 큰일이 없어 다행이었다.


 이 즈음 우리의 새 보금자리가 정해졌다. 평범한 아파트 1층이었다. 공원에 맞닿아 있고 넓은 화단에는 나무가 울창했는데 무엇보다 집 앞에 데크가 있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집을 보러 갔을 때 데크 담장에 앉은 고양이를 마주친 것도 기분 좋은 징조였다. 창밖을 내다보길 좋아하는 쏘이에게도 잘 맞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다. 그 당시 살던 집도 1층이었지만 창문 밖엔 주차장이 전부였다. 층간소음과 화단 풍경 등 여러 이유로 우리가 1층을 원하기도 했고 에너지 넘치는 망아지처럼 하루 종일 뛰어다니는 캣초딩에게도 딱이라고 생각했다. 그땐, 성묘가 된 이후에도 쏘이가 치타같이 뛰어(날아)다닐 거라고 까진 생각하지 못했다. 고양이는 중성화** 수술과 성장기를 거치며 성격이 조금 차분해지고 덜 뛰어노는 경향이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이삿날을 정하고 꾸준히 비우는 날들이 이어졌다. 이 때도 공원에 사는 새벽이와 반달이를 만나러 산책에 나서곤 했다. 이사를 앞둔 어느 새벽, 반달이가 보이지 않았다. 때마침 마주친 캣맘의 얘기를 들어보니 매일 돌보던 젊은 사람이 데려갔다고 했다. 혼자 남은 새벽이는 어떡하나 싶었는데 다행히 새벽이도 데려갈 사람이 정해졌다고 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쏘이가 어느 날부터 안 보여서 걱정했는데 우리 같은 가족을 만났다니 다행이라며 반겼다. 쏘이 사진을 대번에 알아보는 그분과 아깽이들이 가족을 만나 다행이라며 인사하고 헤어졌다. 좋은 소식을 들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동네를 떠날 수 있게 됐다.


새벽이와 반달이


 고양이와 이사를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기 때문에 환경이 바뀌면 매우 불안해한다. 정신없이 짐을 빼고 넣는 과정 또한 편할 리 없다. 10분도 안 걸리는 병원에 다녀오는 것도 힘들어하는데 이사를 편하게 받아들이는 고양이는 드물 것이다. 다른 문제도 있었다. 이사 들어갈 집에 손 볼 곳들이 많았다. 십여 일 정도의 공사 기간 동안 지낼 숙소를 찾아야 했다. 사람끼리라면 여행 떠나듯 어디든 가서 비비면 됐겠지만 고양이가 함께이니 상황이 많이 달랐다. 가능한 고양이의 스트레스를 줄여야 했다.


 공사 기간에 앞뒤 며칠을 더해 숙소를 알아봤다. 짐을 빼기 전에 고양이를 숙소로 옮기고 청소와 이사를 마친 뒤에 새집으로 데려가려는 계산이었다. 이삿날 고양이 케어와 여러 업무를 동시에 해낼 자신이 없었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반려동물 동반 가능한 곳을 찾았다. 현장을 방문하기 적절한 위치에, 아주 비싼 숙소를 얻었다. 사람만 묵는다면 6명도 가능한 투룸 빌라였다. 인근 도시까지 넓게 찾아봐도 반려동물 동반 가능한 곳이 거의 없다 보니 어쩔 수 없는(눈물겨운) 선택이었다. 이때 우리가 필수 요소로 고려한 점이 두 가지 있다.


 - 반려묘 동반이 가능한가. 어떤 숙소는 반려견만 가능하다거나 중성화 여부, 성별, 몸무게 등에 따라 여부가 달라진다.

 - 중문이 있거나 안전문 설치가 가능한 구조인가. 사람이 외출할 때 고양이가 호기심에 튀어나가면 다시는 찾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에 중문이 없다면 안전문이라도 설치 가능한 구조를 찾았다.


 이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하면서 기간, 위치가 적당한 곳은 연식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쌌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사 갈 집 인테리어에도 고양이를 위한 고려 사항이 있었다. 우선 고양이가 집을 나가지 못하게 해야 하니 중문은 필수다. 다음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방묘창**** 시공을 의뢰했다. 고양이는 앞발을 잘 쓰고 모방도 잘하기에 문이나 창문, 서랍 등을 여는데 능하다. 창가에서 바깥을 보기 좋아하는 고양이들이 방충망을 열거나 찢는 일은 생각보다 흔하다. 날아다니는 곤충이나 새를 보고 흥분해 발톱으로 매달렸다 찢기도 하고 방충망이 통째로 바깥으로 떨어지는 사고도 있다고 한다. 기존 새시에 문제가 있어 교체하는 김에 조금 더 돈을 들여 방범방충망을 시공했다. 철창 같은 방범창이 달려 있었는데 우리 눈에는 너무 흉물이었다. 그러니 이건 우리를 위한 결정이기도 했다.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이사 전날 반려묘 쏘이와 관련 용품을 먼저 숙소로 옮겼다. '관련 용품'이란 게 어마어마하다. 화장실, 모래, 식기, 사료, 스크래처, 숨숨집, 장난감 등등. 한 차 가득 싣고 가서 쏘이와 반려인만 숙소에 둔 채 다시 돌아와 사람 짐을 한 차 다시 실었다. 고양이가 발톱으로 긁거나 배변 실수를 할 수도 있으니 숙소의 침구는 쓰지 않기로 했다. 사용하지 않을 방에 매트리스까지 다 치워두고 집에서 쓰던 침구를 깔았다. 장판이 상하거나 층간소음이 생길 수도 있으니 모든 곳에 러그, 이불, 요, 매트 등을 깔고 소파도 덮어버렸다. 집에서 쓰던 안전문을 가져다 중문 대신 설치했다.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전후의 서류 작업과 금전 문제를 차치하고서도 이사 자체의 스트레스가 보통이 아니다. 그런데 반려동물과 함께 숙소 생활까지 하게 되니 정말 힘들어서 앓아누울 뻔했다. 숙소로 옮긴 쏘이는 잠깐 소파 밑에 숨어있다 나와 금방 깨발랄한 망아지가 되어서 앓아눕는 걸 허락하지 않았지만.


<다음 편에 계속>


숙소 소파 밑에 숨었다 이내 밖에서 편히 잠든 쏘이


* 목욕은 꼭 해야 하는 건 아니다. 길냥이었기 때문에 각종 이물질 제거를 위해 목욕을 했지만 단모종인 건강한 고양이들은 필요 없는 경우도 있다. 고양이들은 하루에 몇 시간을 들여 자신의 털을 핥는 그루밍을 한다. 고양이의 침에는 냄새를 없애는 성분이 있기 때문에 냄새도 지우고 죽은 털, 이물질 등도 없앤다. 그래서 매일 빗질을 해주면 목욕이 특별히 필요하지 않은 고양이들도 많다. 단, 장모종의 경우 긴 털 안쪽까지 그루밍하기 어렵고 이물질이 묻거나 피부질환 등의 이유로 목욕이 필요할 때도 있다. 목욕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아 호흡곤란이 오거나 집사를 강하게 공격하기도 한다. 드라이기 소리를 싫어하여 완벽한 건조가 힘들어 감기에 걸리는 경우도 있다. 성묘의 경우 동물병원이나 미용샵에 맡길 경우 목욕을 위해 마취를 하는 경우도 있다. 고양이들은 대부분 물을 싫어하므로 어릴 때부터 조심스럽게 익숙해질 수 있도록 하면 좋다.


** 중성화 수술을 하면 발정이나 호르몬으로 인한 여러 행동 변화를 막을 수 있고 건강상의 이점이 있다. 암컷이 계속 울부짖는 콜링, 수컷의 영역표시인 스프레이 등과 함께 짝을 찾기 위한 가출 등을 막을 수 있다. 유선염, 자궁축농증, 유선종양, 전립선 질환, 고환암 등의 예방도 가능하다.(『고양이 육아 백과』(이준희) 참고)


 "고양이에게 새끼를 낳게 할 생각이라면 제발 부탁이니 마음을 고쳐먹길 바란다. (...) 고양이에게 중성화 수술을 해줘야 하는 이유에는 고양이가 포화 상태라는 사실 외에도 의학적 문제와 행동 문제도 있다. 암고양이가 생애 첫 번째 발정을 시작하기 전에 중성화 수술을 해주면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사실상 0이 된다. 수고양이도 중성화 수술을 하면 노년에 전립선암에 걸릴 확률이 거의 사라진다. 중성화 수술을 한 고양이와 하지 않은 고양이의 차이는 거의 밤과 낮의 차이와도 같다."(『고양이처럼 생각하기』, by 팸 존슨 베넷) 


*** 영역 동물인 고양이는 각자의 영역을 지키며 살아가는 습성이 있다. 야생의 고양이는 수백 제곱미터에서 수 제곱킬로미터에 이르는 넓은 영역을 갖기도 한다. 매일 영역을 순찰하고 침입자를 물리치거나 밀려나 새로운 영역을 찾는다. 집에 사는 고양이들은 직접 갈 수 있는 공간 모두를 자신의 영역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고양이가 출입하길 원하지 않는 공간은 처음부터 철저하게 보여주지 않는 게 좋다. 가끔씩 드나들 수 있는 곳을 막아두게 되면 영역을 확인하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거나 이상행동을 할 수 있다. 같은 이유로 외출이나 산책은 자신의 영역을 벗어나는 행동으로 고양이의 불안을 유발한다. 외출하는 고양이는 야외 공간까지 영역으로 인식하기에 집을 벗어나 바깥 영역을 확인하고자 하는 욕구가 점점 강해진다. 유연하고 재빠른 고양이가 집에서 빠져나가거나 야외에서 놓치게 되면 그 끝엔 비극밖에 없음을 명심하자.


**** 방묘창은 고양이가 드나들지 못하도록 창문에 설치하는 장치다. 방묘망이라고도 한다. 현관의 중문, 아이들이 있는 집에서 사용하는 안전문 등과 형태와 위치만 다를 뿐 같은 목적이다. 철창, 네트망, 방충망 등 다양한 형태가 있다. 네트망은 다이소에서도 구매 가능하며 인터넷을 통해 규격 외 제품도 주문 제작 가능하다. 네트망과 케이블 타이 만으로 저렴하게 직접 설치할 수 있어 많은 집사들이 선택하는 방법이다. 방충망의 경우 망이 찢어지지 않고 틀에서 망이 분리되지 않으며 틀 자체가 새시 레일에 강력히 고정 가능해야 한다. 세 조건을 충족하는 제품군으로 방범방충망이 있다. 성인이 수공구를 이용해도 뜯지 못할 정도로 튼튼하지만 비싸다는 단점이 있다.


매거진 '묘한 묘연'을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으시면 이해하기 편한 연재 글입니다.

01화. 집사 간택의 순간 - 어느 날 새끼 고양이가 현관에 들어왔다

02화. 갑자기 고양이들이 쏟아져 나왔다 - 아는 만큼 보인다고

03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고양이 - 천진하게, 그리고 아슬아슬하게

04화. 마루 밑 고양이에서 책장 밑 고양이로 - 묘생 역전의 시작

05화. 그렇게 식구가 된다 - 고양이가 집에 온 첫날

06화. 고양이와 이사하기 1 - 웬만하면 추천하지 않는다

07화. 고양이와 이사하기 2 -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08화. 20평짜리 캣타워를 만들어보자 - 고양이가 사는 집 인테리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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