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묘한 묘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멀스멀 Dec 24. 2021

고양이와 이사하기 2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어렵게 구한 숙소의 창밖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거리에 맞은편 건물이 있었다. 머리를 들이밀고 살펴봐도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아무리 지역과 기간에 맞춰 고양이와 함께 갈 수 있는 숙소가 제한적이었다 한들, 낭패였다. 보름이 넘도록 창밖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집에 사는 고양이라니. 스마트폰과 TV, 컴퓨터를 모두 몰수당한 채 단칸방에 격리되면 내가 그 기분을 느낄 수 있을까. 이제 막 6개월령 정도 된 캣초딩이 견디기에 좋지 않은 환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시간 만에 적응해주어 다행이었지만 잠시 환기라도 하려고 커튼을 걷고 보면 우리 눈에도 답답하기 그지없는 곳이었다.


 <고양이와 이사하기 1> 편에서 말했듯 오래된 숙소에 꽤 비싼 돈을 주고 들어갔다. 그만큼 쾌적한 환경을 누리면 좋겠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 캣초딩과 함께였다. 숙소 기물과 이웃주민들을 생각해 모든 걸 치우고 덮어놓고 생활을 시작했다. 그렇게 해두고 보니 모든 게 너무 흉물스러웠다. 이사하며 버리려던 낡고 촌스러운 온갖 것들을 가져다 덮고 깔았던 터라 더 그리 보였겠지. 가끔씩 아깽이 짓을 하는 반려묘와 함께 있으면 손에서 폰을 놓기 힘들 만큼 사진 욕심이 가득했지만 지금 와 돌이켜보니 사진이 몇 장 없다. 그만큼 몸과 마음에 여유가 없는 이사의 한 중간이었고, 무엇보다도 배경이 너무 지저분하고 못나 사진 욕심이 쏙 들어갔다. 아침마다 쓰레기봉투, 휴지, 수건 같은 걸 문고리에 걸어놓고, 필요한 건 언제든 연락 달라는 친절한 호스트가 있었지만 내 집만큼 편할리 없었다. 금세 적응하고 활개 치던 쏘이와 다르게 우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불편하고 지쳐갔다.


배경이 못났거나 말거나 예쁜 쏘이
배경이 촌스러워도 잘만 자던 쏘이


 포장이사를 맡기고 잠시 쓸 것들만 챙겼기에 짐이 아주 많지는 않았다. 아주 많진 않았지만 많긴 많았다는 말이다. 고양이 짐, 사람 짐 모두 두 차는 가득 나올 만큼. 투룸 숙소엔 쓰지 않는 방이 하나 있었는데 며칠이 지나자 그곳에 새로운 짐들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이사에 맞춰 새로 사들일 물건이 많았기 때문이다. 고양이를 위한 물건 구매를 조금 미뤘던 것도 한몫했다. 문제는 아주 조금 넓어지는 평수와 딱 하나 늘어난 묘구수에 비해 생각보다 많은 물건이 추가됐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공기청정기가 그리 필요한 가전이라 생각하지 않아 쓰지 않았었다. 그런데 고양이와 함께해보니 화장실 모래로 인한 사막화*와 날리는 털 때문에 구매하게 됐다. 어떤 고양이와 살게 될지 몰라 작은 사이즈로 준비했던 화장실은 커가는 고양이 체구에 맞는 새 제품이 필요했다. 거기다 묘구수+1이라는 최소 고양이 화장실 개수 공식에 맞춰 두 개가 됐다. 성묘가 편하게 쓸만한 그 화장실은 영아 욕조보다 커 보였다. 고양이와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가구와 물건들까지 이것저것 새로 사다 보니 숙소가 물류창고처럼 변해버렸다.


출처 : 그린웨일 스마트스토어 캡처

               <좌 캣폴**, 우 캣타워 예시>


 이 시기 우리의 첨예한 관심사는 캣폴이냐, 캣타워냐 였다. 쏘이를 위해 제대로 된 수직공간을 만들어주고 싶어서 오랫동안 고민했다. 이사 전 들인 3단 캣타워는 쏘이가 이미 잘 써주고 있어서 사람 키높이 정도 되는 육중한 캣타워와 천장까지 닿는 캣폴 중에서 고민을 했다. 어디에 두는 가도 문제였다. 거실 창가에 둘 것인가, 안방 창가에 둘 것인가. 아니면 현관 옆에 둘 것인가. 쏘이의 성향도 중요한 변수였다. 망아지처럼 뛰어다니는 걸 좋아하는 건 확실한데 그 이상을 확인할 길이 없었다. 수직 스크래처는 확실히 좋아한단 걸 알았지만 이전 집이나 임시숙소나 뚜렷한 선호를 관찰할 환경이 아니었다. 그저 이사 갈 집 환경에 맞춰 좋은 걸 주고 싶어 우리끼리 머리를 굴려봤을 뿐이다.


 새로운 집으로 갈 날이 다가올수록 우리의 머릿속은 늘어나는 짐만큼 복잡해져 갔다. 우리와 고양이의 생활 구역을 정해야 했다. 고양이가 모든 곳에 마음껏 다니게 할 순 없기 때문이다. 일단 가서 모든 곳을 열어주고 나중에 제한하면 힘들 건 뻔했다. 가능한 미리 계획하고 그대로 하고 싶었기에 생각을 많이 했다. 우리는 어느 방에서 생활할 것인가. 어떤 방을 옷방으로 쓰고 어디를 금묘구역으로 정할 것인가. 고양이는 어디서 주로 생활하고 자게 될까. 밥그릇과 화장실은 어디에 두는 게 좋을까. 집 평면도를 보며 계절마다의 채광까지 계산해서 결정하기 시작했다. 현장에 자주 가며 공사 진척을 확인하고 이곳저곳의 크기도 쟀다.


 어느 날 인테리어 사장님께 재밌는 소식을 들었다. 매일 집 앞 데크 계단 맨 위까지 올라와 앉아 집안을 구경하는 고양이가 있다고. 이 아름다운 소식에 우리의 피로도 많이 씻겼고 입주 날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 집을 알아보러 왔을 때 만난 그 고양이였을지, 얼마나 많은 고양이들이 이 동네에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


이사 전부터 찾아오던 녀석. 까까머리한 것 같아 '까까'라고 부른다


 예전 동네에서도 여기저기에 고양이들이 많았지만 고양이가 살기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역세권에 대형 마트 여러 곳이 있고 단지와 맞닿은 영화관이 있는 등 사람 기준의 편리함은 높은 동네였다. 하지만 새벽이와 반달이가 살던 공원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녹지가 없었다. 오래된 아파트 단지들은 화단도 좁고 삭막한 분위기였다. 이사할 곳은 느낌이 사뭇 달랐다. 동네가 조성된 시기가 비슷한데도 구석구석에 공원과 녹지가 훨씬 많았다. 부동산 중개업자와 집을 보러 다닐 때부터 어딜 가나 건강해 보이는 고양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더불어 TNR***이 돼있는 고양이들이 훨씬 많았다. 날아다니는 새들이 훨씬 많고 고양이들도 숨기 보단 여유 있어 보인달까. 반려견을 산책시키는 사람들도 끊임없이 보였다. 먼저 동네보다 동물들이 살기 훨씬 좋고 그런 의미에서 사람도 살기 좋은 동네 같았다. 어디로 산책을 가도 길고양이 급식소나 겨울집이 있었다. 살던 곳과 달리 길고양이를 향해 소리치는 사람을 한 명도 보지 못한 것도 고무적이었다.


 반려인 둘이 바삐 현장을 오가고 이케아에 다녀오며 꾸역꾸역 짐을 늘려가던 와중에도 쏘이는 천진했다. 넘치는 에너지를 소비하고 다시 채우는 데 여념이 없었다. 다만 호기심을 충족하고 체력을 쓸래도 빌릴 게 집사 손 밖에 없는 상황이 안타까웠다. 특이하리만큼 TV에는 관심이 없고 창밖에도 볼 게 없으니 더욱 그랬다. 낮에는 방과 거실, 부엌을 쭉 이어 달리며 놀아줄 수 있으니 달리기라도 신나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층간소음 문제로 밤에는 매트를 깔아 둔 곳과 침대 위에서만 놀도록 낚싯대로 유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캣초딩은 마음껏 뛰지 못해서 불만이고 우리도 편히 놀아주지 못하고 마음만 졸였다. 걸어 다닐 땐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고양이지만 고작 2kg밖에 안되면서 뛰어내리거나 달릴 땐 말 달리는 소리가 났다. 밤늦게도 새벽에도 가리지 않고 놀자고 하니 서로 힘든 시간이었다.


너저분한 숙소에서 뛰어노는 쏘이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힘든 시간에도 끝이 찾아왔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에피소드도 많았지만 일일이 나열하고 싶진 않다. 공사를 마치고 짐을 넣는 날, 안전을 위해 쏘이는 숙소 방안에 두고 바깥의 모든 짐들을 먼저 실어 날랐다. 이삿짐센터를 보내고 쏘이를 만나러 갔는데 방 안에서 시큼한 냄새가 났다. 구석구석 찾아보니 사료토****를 해뒀다. 고양이들에게 흔히 있는 일이라지만 우리에겐 처음이었다. 숙소에서 견디는 답답한 시간이 이 녀석에게도 많이 힘들었구나 싶었다. 아직은 카오스 같은 새집이지만 그래도 훨씬 쾌적하고 창밖에 볼 것이 넘쳐나는 집으로 갈 수 있는 날이라 다행이었다. 쏘이 상태를 감안해 체크아웃을 하루 앞당기고 다 같이 새집으로 이사했다. 1박 치 숙박비는 날렸지만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어디로 가는지 알리 없는 쏘이는 고작 10여분 타는 차 안에서 쉬지 않고 울어 댔지만 말이다.



* 사막화는 고양이가 화장실을 쓴 후 모래가 딸려 나오거나 모래 먼지가 퍼져 집 곳곳에서 모래나 먼지가 발견되는 것을 말한다.


** 캣폴과 캣타워는 고양이에게 수직공간을 만들어주기에 좋은 제품들이다. 캣폴은 바닥과 천장까지 기둥처럼 연결된 형태이며 캣타워는 천장까지 닿지 않고 보통의 가구처럼 자립한다. 고양이는 보통 시야가 확보된 상태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아 놀이할 때는 물론 휴식할 때도 사용한다. 처음부터 너무 비싼 제품을 사기 보단 고양이의 성향에 맞춰 들이는 것을 추천한다. 빨리 사용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억지로 올려놓는 건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용하지 않는다면 방향이나 위치를 바꿔보는 것도 좋다. 사람이 사용하는 가구들의 배치로 캣폴과 캣타워 같은 효과를 낼 수도 있다.


*** TNR은 Trap-Neuter-Release 또는 Trap-Neuter-Return의 약자로 길고양이를 포획하여 중성화한 후 제자리에 방사하는 것을 말한다. 개체수 조절을 목적으로 하며 지자체별로 예산이 편성되나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재포획과 재수술을 방지하기 위해 왼쪽 귀를 1cm가량 커트한다.


**** 사료토는 사료를 빨리 먹거나 많이 먹고 소화되지 않은 사료 그대로를 토하는 경우를 말한다. 가끔 하는 사료토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만 하루에 두 번 이상 구토를 하거나 여러 날 계속되면 즉시 병원을 가야 한다. 질병이나 식이습관, 중독 등 구토의 원인은 매우 다양해서 수의사의 도움을 꼭 받아야 한다.


매거진 '묘한 묘연'을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으시면 이해하기 편한 연재 글입니다.

01화. 집사 간택의 순간 - 어느 날 새끼 고양이가 현관에 들어왔다

02화. 갑자기 고양이들이 쏟아져 나왔다 - 아는 만큼 보인다고

03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고양이 - 천진하게, 그리고 아슬아슬하게

04화. 마루 밑 고양이에서 책장 밑 고양이로 - 묘생 역전의 시작

05화. 그렇게 식구가 된다 - 고양이가 집에 온 첫날

06화. 고양이와 이사하기 1 - 웬만하면 추천하지 않는다

07화. 고양이와 이사하기 2 -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08화. 20평짜리 캣타워를 만들어보자 - 고양이가 사는 집 인테리어 1

매거진의 이전글 고양이와 이사하기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