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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묘한 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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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멀스멀 Nov 19. 2021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고양이

천진하게, 그리고 아슬아슬하게

 길고양이들은 매일 수십 번씩 길을 건넌다. 동네 터줏대감 너구리는 이 단지만 호령하며 살 것 같았다. 그것은 길을 경계로 구역을 인식하는 나의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착각이었다. 한 번 눈에 띄기 시작하자 길 건너에서도 보였고 사거리 너머 위치한 편의점 쪽 수풀에도 너구리는 있었다. 우연히 함께 길을 건너기도 했고 (내 기준에) 엄한 동네에서 마주치기도 했다. 단풍이도 마찬가지여서 단지 밖 길 건너에 사는 똑 닮은 고양이를 만나는 걸 자주 목격했다. 외모만 보고 가족이다 아니다 판단하긴 어렵지만 너무 닮은 둘이 계속 만나 인사하는 모습에 자매 고양이가 아닐까 생각했다.


 길고양이의 평균 수명은 3년 정도라고 한다. 집에 사는 고양이는 15년도 넘게 사는 데 비하면 정말 짧은 삶이다. 야생에 사는 고양이라면 태생적으로 맞닥뜨릴 어려움들이 많다. 태어난 순간부터 경쟁이다. 악천후를 이겨내야 하고, 영역 다툼을 하루 종일 하는 와중에 사냥도 해야 한다. 몸 누일 편안한 곳도 없는데 온갖 질병과 싸우면서 발정기가 찾아오면 교미를 하고 목숨을 건 출산과 양육을 해내야 한다.


 진짜 야생이라면 그건 그들의 삶이니까. 순리대로 돌아가겠지. 하지만 우리가 흔히 보는 길고양이의 삶은 그것과 다르다. 이미 인간의 손이 깊숙이 개입돼 설 곳을 잃은 아스팔트 위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들이 사는 곳을 인간들이 뺏었다'고 표현하기에도 애매한 건, 그들 중 상당수가 인간에 의해 버려졌기 때문이다.


 밤 산책길엔 집 근처 화단을 먼저 살폈다. 그러다 보면 십중팔구 어딘가에서 단풍이, 너구리나 다른 고양이들을 만났다. 집 근처를 돌고 관리실과 어린이집, 옆 단지, 지역 스포츠센터를 지나 길을 건너면 공원이 나왔다. 새벽이와 반달이가 사는 공원은 언뜻 보기에 고양이들이 지내기 아주 좋은 환경이었다. 절반 이상이 녹지로 구성된 3천 평 가까이 되는 공원이었다. 경기용 운동장은 아니지만 농구코트와 인조잔디, 작은 트랙이 있었다. 주차장, 번듯한 화장실 건물과 놀이터까지 있는 규모였다. 공원 한 켠에 위치한 지구대 뒤에 둘의 밥자리가 있었다. 종종 경찰들이나 행인들이 아깽이*들을 확인하는 모습도 보곤 했다. 여러 사람의 손을 타버린 고양이들의 경우 장난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이나 동물을 혐오하는 사람들의 학대에 노출되기 쉬운데 지구대 옆이라는 입지는 그런 면에서 나쁘지 않아 보였다.


나무를 타고 노는 새벽이와 건물에서 포즈를 잡는 듯한 반달이


 문제는 새벽이와 반달이가 공원에서만 지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3개월령 정도 된 고양이들은 영역을 확장하거나 새로운 영역으로 옮기기도 한다. 너구리나 단풍이가 차도를 건너 멀리 까지를 영역으로 삼았던 것처럼 아깽이들도 훨씬 넓은 영역을 탐험한다. 일본의 한 시골에 사는 집사가 쓴 책**에 따르면 고양이는 매일 수 킬로미터에 이르는 영역을 루틴처럼 돌기도 한다. 물론 도시에 사는 길고양이들은 건물, 도로, 행인, 차량 등 여러 제약에 의해서 상대적으로 좁은 영역을 가지지만. 며칠 전 길 건너 건물 여럿을 지나 수백 미터 떨어진 우리 집 현관까지 반달이가 제 발로 왔었다는 건, 이미 공원 안에서만 지낼 것이란 내 생각이 틀렸단 방증이었다. 아깽이들이 노는 모습을 잠깐 지켜보면 공원에서 인도를 지나 차도로 뛰어들고, 반대편 단지를 왔다 갔다 했다. 세상 천진한 모습으로 위험 속에 살고 있었다.


도로 옆에서 천진하게 나무를 타며 노는 아깽이들


 이 즈음의 산책 루트엔 단지 상가도 포함되어 있었다. 고깃집 앞 데크 아래에서 울던 아깽이 때문이다. 이 아깽이는 주로 데크 아래의 좁은 틈이나 에어컨 실외기 밑에 있다가 만만한 사람이 지나가면 울면서 부르곤 했다. 단풍이나 반달이 같은 삼색이였고 반달이 형제와 비슷해 보이는 월령에 잘 먹지 못했는지 깡말라 보였다. 사람을 부르지만 내어준 사료를 먹으면서도 항상 눈치를 봤다. 만지려 하지 않아도 손끝이나 발끝의 작은 움직임에 움찔하며 거리를 벌리기 일쑤였다. 길에서 살아가기엔 손을 타지 않고 경계심을 유지하는 게 좋지만 왠지 안 좋은 기억이라도 있는 걸까 싶었다. 짝꿍은 고깃집 데크 아래 사는 고양이 등에 있는 까만 무늬가 블랙홀 같다고 말했다. 새벽이, 반달이와 일맥상통하면서 특징에 어울리는 별명을 생각해봤다. 블랙홀 같은 무늬, 너무 좁고 어두운 데크 아래 공간. 벗어났으면 싶은 마음을 담아, 넓고 찬란하게 우주라고 부르기로 했다.


작디 작은 우주가 살던 데크와 에어컨 실외기


 우주는 10센티미터가 될까 싶은 데크 아래 좁은 틈에 살았다. 영업시간에 지나가다 흘끔 봐도 어둠 속 빛나는 눈이 보이거나 우는 소리가 들렸는데 고깃집에서 내쫓진 않아도 따로 챙겨주는 것도 없는 눈치였다. 우리 말고도 가끔 들여다보는 눈길이 있었는지 언제부턴가 작은 물그릇이나 사료그릇이 근처에 놓이기도 했다. 경계심 많은 쫄보 주제에 자꾸 행인들을 불렀다가 누군가 관심을 가지고 다가가면 도리어 놀라 차도로 뛰어들어 가슴이 철렁한 적도 여러 번. 급기야 터줏대감인 너구리의 타깃이 되었는지 우주를 쫓아내거나 때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좁은 데크 아래엔 너구리도 사람도 닿을 수 없었지만 차와 사람이 끊이지 않는 사거리 코너에서 위태로운 나날을 보냈다.


비오던 날의 우주.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을 바라보고있다.


 이미 반려묘와 함께 살기로 마음은 굳힌 상태였다. 다만 언제, 누구와 어떻게가 문제였다. 우리는 이사가 예정되어 있었으므로 집에 겨우 적응할 때쯤 더 큰 혼란과 스트레스를 줄까 봐 걱정되었다. 이사 갈 지역과 집이 정해지지 않았으니 고양이와 사람이 함께 살기에 충분할지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살던 집의 방 하나를 비워 고양이에게 필요한 것들을 갖춰두었지만 시기가 좋지 않았다. 이사를 앞두고 정신없이 바쁘다는 문제도 있었다. 아니 이사라는 과정 자체가 바쁘고 정신없고 고되기에 당장 식구를 늘리는 건 서로에게 좋지 않은 선택일 수 있다.


 당장 어떻게 하겠다 마음먹진 못한 채로 눈에 밟히는 작은 존재들을 만나러 매일 산책을 했다. 그 와중에 공원과 고깃집의 아깽이들은 매일 천진하게, 그리고 아슬아슬하게 그렇게 우리 곁에 존재했다.




* '아깽이'는 아기 고양이를 이르는 말이다.


** 『고양이에게 GPS를 달아 보았다』, by 다카하시 노라


- 매거진 '묘한 묘연'을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으시면 이해하기 편한 연재 글입니다.

01화. 집사 간택의 순간 - 어느 날 새끼 고양이가 현관에 들어왔다

02화. 갑자기 고양이들이 쏟아져 나왔다 - 아는 만큼 보인다고

03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고양이 - 천진하게, 그리고 아슬아슬하게

04화. 마루 밑 고양이에서 책장 밑 고양이로 - 묘생 역전의 시작

05화. 그렇게 식구가 된다 - 고양이가 집에 온 첫날

06화. 고양이와 이사하기 1 - 웬만하면 추천하지 않는다

07화. 고양이와 이사하기 2 -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08화. 20평짜리 캣타워를 만들어보자 - 고양이가 사는 집 인테리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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