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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묘한 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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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멀스멀 Jan 18. 2022

20평짜리 캣타워를 만들어보자

고양이가 사는 집 인테리어 1편

공간 계획

 고양이와 함께 새로운 집으로 이사하면서 주로 활동할 공간과 제한할 공간을 우선 정했다. 보아하니 우리집 고양이 쏘이는 그리 독립적으로 생활하지 않았다. 고양이답게 혼자만의 시간을 갖긴 했지만 함께하기를 요구할 때가 더 많았다. 잠을 자거나 편안히 쉬는 시간에도 우리와 같은 공간에서 지냈다. 시도 때도 없이 무릎에 올라오는 무릎냥이는 아니지만 개냥이라면 개냥이랄까. 반려인들이 주로 자고 생활할 공간을 정하면 쏘이도 그걸 따를 게 분명해 보였다. 그래서 우리는 안방과 거실을 주로 생활할 공간으로 정하고 나머지 두 방은 드레스룸과 게스트룸으로 정했다.


회색 공간은 금묘 구역이다

 거실 발코니를 확장한 구조에 방이 셋 있는 아파트 평면도다. 현관엔 3연동 중문이 돼있어서 그대로 활용하기로 했다. 소음 감소와 단열, 공간 분리 등 사람이 취할 이점 외에 현관문이 열린 틈에 고양이가 튀어나가는 것을 막아주는 필수 장치다. 호기심과 영역 확장 욕구를 차단하기 위해 중문 밖 현관 공간은 금묘 구역이 됐다. 현관에 붙은 방 또한 금묘 구역이다. 게스트룸이라 이름 붙였지만 평상시엔 창고처럼 자주 드나들지 않을 공간이다. 냉난방을 자주 할 방이 아니라 주로 닫아둘 것이라는 게 첫 번째 이유고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는 손님이 왔을 때에 대비하는 게 두 번째 이유다. 주로 닫아둘 공간은 애당초 영역으로 인식시키지 않는 게 낫고 지인 중에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다. 나와 반려인의 형제들 모두, 그리고 제법 자주 놀러 올 법한 친한 친구가 해당됐다.


 마지막으로 욕실도 금묘 구역이다. 아주 깨끗이 유지하기 어려운 공간인 데다 혹시라도 샴푸, 비누, 치약 같은 위생용품이나 락스, 청소솔 등의 세척 용품에 중독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함이다. 곰팡이성 피부질환에 약한 고양이들에게 습한 공간이 안 좋기도 하다. 고양이의 생활이 허락된 거실, 세탁실, 발코니는 방범방충망을 시공했고 주방 창은 다이소에서 산 네트망과 케이블 타이를 이용해 방묘창을 설치했다.


수평 동선

 고양이가 움직일 수 있는 동선은 수평과 수직으로 나눌 수 있다. 공간을 구획하고 인테리어를 할 때 수평 동선을 다채롭게 구성하는 게 좋다. 그러면 똑같은 면적이라도 갔다 돌아오는 동선만 있는 게 아니라 연속해서 이동할 수 있고 단조로운 동선에 비해 선택지가 많아 덜 지루할 것이다. 특히 다묘 가정이나 다른 반려동물과 함께 생활한다면 더욱 중요하다.



집 전체 평면도로 보는 동선


 만약 모든 공간의 문을 닫아두고 생활한다면 고양이가 가장 길게 이동할 수 있는 동선은 주방 끝에서 거실 끝까지의 직선형 동선이다. 내 편한 걸음으로 열일곱 걸음 정도 된다. 그런데 문과 창문을 통해 이동할 수 있도록 원형으로 동선을 만들면 주방-세탁실-드레스룸으로 연결된 좁은 공간도 열다섯 걸음이나 이어진다. 좁은 공간도 원형, 팔자형으로 막힘 없이 연결되는 동선은 직선형 동선에 비해 훨씬 먼 거리를 끊김 없이 이동할 수 있다. 이 이유로 방을 통과해 이동할 곳이 없는 현관 옆 방이 게스트룸이 되기도 했다.


방문이 유일한 출입로인 경우의 단조로운 동선


 위의 두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방문이 유일한 출입로인 경우 직선형의 동선이 된다. 동선이 단조로울 뿐 아니라 고양이가 문으로 드나드는 반려인 혹은 다른 반려동물과 마주치면 퇴로가 확보되지 않아 불안감을 느낄 수 있다. 안방과 발코니, 드레스룸과 세탁실은 창문을 통해 퇴로가 확보된다. 게스트룸처럼 막다른 공간의 경우엔 수직공간을 구성하고 오르내릴 곳을 여러 군데 만들면 도움이 된다. 하지만 공간을 드나들 방법은 구조적으로 하나밖에 없다. 고양이 화장실을 발코니 끝 같이 막다른 곳에 두지 않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양쪽 창문을 이용하면 동선을 다채롭게 구성할 수 있다


 안방과 발코니 새시를 할 때 창을 양쪽으로 열 수 있게 해서 드나드는 곳을 두 곳으로 만들었다. 그러면 원형, 팔자형으로 움직일 수 있다. 쏘이가 우다다 하거나 사냥 놀이할 때의 모습을 보면 매번 정해진대로 움직이지 않고 다양한 동선을 활용한다. 발코니와 거실을 오고 갈 때도 최단거리인 문을 통하지 않고 안방을 거쳐 돌아가기도 한다. 망아지처럼 온 집안을 뛰어다닐 때 보면 들어간 곳으로 도로 나오기보다는 계속해서 새로운 경로로 이어 달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집사 입장에서도 공 던지기 같은 놀이를 할 때 다양한 방향으로 던질 수 있어 덜 지루하다.(덜 지루한 것이지 지루하지 않은 건 아니다.)


 창이나 문을 통해 이어지는 동선을 만들기 위해선 문을 열어두고 생활해야 한다. 이렇다 보니 냉난방 효율도 떨어지고 공간 분리나 소음 등의 문제가 있다. 이때 문틀에 압축봉과 커튼, 긴 노렌을 설치하면 유용하다. 문만큼의 효과는 아니지만 공간이 확실하게 분리되고 바람도 어느 정도 막아주는데 고양이의 이동엔 불편함이 없다. 얇은 천이 큰 의미가 있을까 싶었지만 드나들어보면 확실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겨울철 창문의 커튼이 단열에 크게 기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보다 확실한 방법은 견문이나 펫도어라고 불리는 제품을 이용하는 것이다. 방문 아래쪽에 설치하면 문이 닫혀있어도 고양이나 개는 드나들 수 있다. 창문 새시에 끼우는 제품들도 여러 회사에서 판매되고 있다.


여러 문에 설치한 긴 노렌들
발코니 문에 설치한 긴 노렌과 열린 문에 설치한 도어 스토퍼


 항상 열어두는 문에는 스펀지 재질의 방문 스토퍼를 끼워두면 좋다. 혹시라도 문이 닫혀 고양이가 갇히는 일도 막을 수 있고 문 뒤에서 놀던 고양이가 닫히는 문틈에 다리나 꼬리가 낄 걱정도 덜 수 있다. 바닥에 두는 스토퍼는 괜한 관심만 불러일으키니 고양이가 닿을 수 없는 높은 곳에 설치하는 게 좋다. 어린이 손끼임 방지를 위한 제품을 사용하는 방법도 있다. 반대로 항상 닫아두는 금묘 구역에 고양이가 문을 열고 들어간다면 문열림 방지 잠금장치를 사용하자. 손잡이를 돌리지 못하게 하는 형태부터 단추 형태까지 다양한 제품이 있다. 서랍, 옷장, 중문 등에도 마찬가지다.


수직 동선

 수직 동선 구성은 고양이에게 아주 중요하다. 고양이는 뛰어난 점프력과 균형감각으로 높은 곳을 좋아하며 밖에서도 나무를 타거나 장애물을 뛰어넘으며 생활한다. 한정된 실내 공간에 수직 동선이 추가되면 고양이는 같은 공간을 사람보다 훨씬 넓게 쓸 수 있다. 복층이나 여러층으로 구성된 용적률이 높은 건물을 생각해보면 쉽다. 수직 공간 제공을 위해 캣타워나 캣폴 같은 고양이용 가구뿐 아니라 사람용 가구, 냉장고 같은 가전도 활용할 수 있다.


 공간 구성 시점에서 고려해볼 수 있는 건 캣워크(캣워커, 캣선반, 고양이선반 등으로도 불린다)다. 캣워크는 벽이나 천장에 고양이가 다닐 수 있는 길을 만드는 것이다. 집사에겐 큰 효용이 없는 벽, 천장을 고양이 전용 통로로 활용할 수 있다. 침대나 소파, TV가 놓이면서 죽는 벽면도 살릴 수 있는 방법이다. 안전하게 고정해야 하기 때문에 가급적 콘크리트 벽에 시공하는 게 좋다. 다른 재질의 벽이나 천장에 설치할 경우 보강재나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할 수 있다. 계단, 통로, 터널 등 다양한 구성이 가능하며 앞서 말한 캣타워, 캣폴 혹은 일반적인 가구, 가전과 결합해 무궁무진한 동선을 만들 수 있다. 우리는 인테리어 단계에서 거실과 안방에 여러 설치 방안을 고민했으나 예산과 시간문제로 용이치 않았다. 직접 설치하기로 하고 이사 후 안방 벽면에 이케아 벽선반*을 활용해 설치했는데 쏘이가 가장 좋아하는 길이 되었다.


캣워크 동선과 캣워크 위의 쏘이


 우리는 벽선반과 수납가구, 의자를 활용한 숨숨집으로 안방 한쪽 벽에 캣워크를 구성했다. 방문으로 들어오면 바로 숨숨집-수납장-벽선반 순서로 올라갈 수 있고 옷장 위로 이어진다. 모든 선반과 가구 위엔 타일 카펫을 크기에 맞게 잘라 올렸다. 미끄럼 방지 효과와 함께 패브릭에 쏘이의 냄새가 묻어 자신의 영역이라는 안정감도 준다. 스크래처로 사용될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이다. 고양이 영역의 구석구석에 패브릭과 스크래처가 많아야 좋다. 공구 사용에 미숙하고 힘도 약한 내가 직접 해머 드릴로 설치했는데 고작 구멍 8개 뚫다 너무 힘들어서 진짜로 울 뻔했다. 그래도 설치하자마자 원래 알고 있던 길인 것처럼 잘 써줘서 기뻤다.


아침엔 집사가 일어나기를 기다리며 가고일처럼 앉아있다


 가구 배치 시점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건 옷장과 수납장을 캣타워처럼 쓰는 것이다. 사람만 사용한다면 모든 가구의 높이를 붙박이장처럼 최대치로 설정하면 효율이 가장 높다. 하지만 고양이와 함께 사용한다면 계단식으로 설계해보면 어떨까. 최대 수납 효율은 포기해야 할지 모르지만 고양이의 삶의 질은 높일 수 있다. 고양이 삶의 질 향상은 곧 집사의 삶의 질 향상이기도 하다. 캣타워나 캣폴의 좁은 발판이 아니라 수납장의 넓고 안정적인 자리가 주는 안락함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안방에 낮은책장-책상-캣폴-책상-낮은 수납장과 스툴-중간 수납장 둘-높은 수납장-캣워크로 이어진 동선을 사방에 구성했다.


 쏘이는 방의 가운데 부분에서도 달려 지나가고 숨고 놀지만 수직 공간을 십분 활용한다. 반려인끼리 만든 암묵적인 규칙으로 수직공간 높이 쏘이가 올라갔을 때는 건드리지 않는다. 자신만의 안전한 공간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다. 병원에 가야 하는 날 맨 위에서 깊은 잠을 자면 '제발 빨리 내려와 주길' 바라며 동동거릴 수밖에 없지만 트라우마를 심어주고 싶지 않아 격정적인 사냥놀이 중간에도 잠을 잘 때도 꼭 지키는 룰이다. 덕분에 옷장 위를 너무 좋아해서 밤에는 꼭 옷장** 위에서 자고, 발판이 좁은 (값 비싼) 캣폴을 등한시한다는 단점이 있다.


채 완성되기 전부터 바로 올라가서 사용했다
때에 따라 다른 층에 정을 붙이고 쓰는데 가장 좋아하는 곳은 가운데 자리다


 책장도 고양이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소재다. 우리가 애써 준비하지 않아도 책장의 구조 때문에 고양이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책장을 고양이가 함부로 탐험했다간 고양이나 책이 다칠 수도 있다. 반대로 벽에 고정하거나 무게중심을 제대로 맞춘 튼튼한 책장에 고양이 해먹 등을 이용하면 훌륭한 수직공간이 된다. 이런 효용에 맞춰 애당초 캣타워와 책장을 겸할 수 있는 제품들도 가구회사들에서 내놓을 정도다. 책상은 그 자체로 훌륭한 캣타워이고 집사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싶은 고양이들이 알아서 올라오곤 하니 책상, 책장과 다른 가구를 혼합해 고양이를 위한 거대 캣타워를 만들어보자.


책상-캣폴-책상-옷장으로 이어지는 거대 캣타워와 드레스룸 책장의 고양이 해먹




* 벽선반은 이케아의 BURHULT 부르훌트 / SIBBHULT 십훌트 제품을 사용했다. 59x20cm, 각 5,000원이다. 고양이가 이용하는 통로는 20cm 이상을 추천하며 다묘 가정은 더 넓으면 좋다.


** 옷장은 이케아의 PLATSA 플랏사 제품을 사용했다. 옷장, 서랍, 내부 서랍 등 필요에 맞게 다양한 구성이 가능하다. 계단식으로 설치할 수 있고 이케아 웹사이트에서 다양한 구성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가상 스튜디오에서 직접 디자인할 수 있고 원하는 대로 구매할 수 있다.


- 매거진 '묘한 묘연'을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으시면 이해하기 편한 연재 글입니다.

01화. 집사 간택의 순간 - 어느 날 새끼 고양이가 현관에 들어왔다

02화. 갑자기 고양이들이 쏟아져 나왔다 - 아는 만큼 보인다고

03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고양이 - 천진하게, 그리고 아슬아슬하게

04화. 마루 밑 고양이에서 책장 밑 고양이로 - 묘생 역전의 시작

05화. 그렇게 식구가 된다 - 고양이가 집에 온 첫날

06화. 고양이와 이사하기 1 - 웬만하면 추천하지 않는다

07화. 고양이와 이사하기 2 -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08화. 20평짜리 캣타워를 만들어보자 - 고양이가 사는 집 인테리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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