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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묘한 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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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멀스멀 Nov 29. 2021

마루 밑 고양이에서 책장 밑 고양이로

묘생 역전의 시작

 고양이와 함께 살기로 마음먹은 이후 방을 비웠다. 싱글 침대와 보통 크기의 책상을 넣으면 간신히 문만 열 수 있는 복도형 아파트의 작은 방이다. 해묵은 침대와 물건들을 치우니 공간이 제법 생겼다. 고양이가 물거나 떨어트릴 수 있는 것들은 남은 화장대와 플라스틱 수납장 안으로 넣었다. 캣타워는 없지만 의자, 수납장 등으로 수직 공간*도 만들었다. 작은 고양이 화장실**과 튼튼한 플라스틱 이동장*** 같은 필수품들까지 갖춰졌다. 남은 건 우리의 결심과 고양이뿐이었다.


 현관 안까지 들어와 내 마음에 도장을 찍고 나간 반달이가 가장 눈에 밟혔다. 아깽이가 제 발로 찾아와서 '자, 나를 한 번 키워봐.' 내지는 '여기가 내가 지낼 집인가?'라고 말하는 것 같은 다시없을 집사 간택의 순간을 겪고 나면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반달이는 형제인 새벽이와 깨발랄하게 잘 지냈고, 도심 중에선 그나마 나은 공원에 자리 잡고 있었다. 여러 날 지켜보니 밥자리를 관리하고 아깽이들을 지켜보는 시선도 여럿 있어서 당장이 걱정되진 않았다. 짝꿍은 고깃집 데크에 사는 우주에게 금방 마음을 뺏겼다. 우리는 터놓고 누구를 언제 데려오자 얘기하진 않았다. 어디서 발걸음이 더 머무는지 서로의 눈에 빤히 보였을 뿐이다.


 고양이와 함께 하려는 나의 결심은 고양이와 나의 삶 모두에 큰 영향을 끼칠 터였다. 아깽이는 바깥보다 안전하고 쾌적한 삶을 살 수 있다. 사냥으로 먹고살기 힘든 도심에서 배곯을 걱정이 없어진다. 매일 목숨 걸고 수십 번씩 길을 건널 필요도 없다. 궂은 날씨와 손길 또한 피할 수 있다. 평균 3년 정도의 기대수명이 다섯 배 정도로 늘어날 것이다. 다만 집으로 한정된 공간에서 살아가야 한다. 반려인이 제공하는 것 안에서 묘생의 각 단계, 그리고 매일의 필요를 충족받아야 한다. 넘쳐나는 호기심과 에너지를 제한된 환경에서 해결해야 한다.


 길냥이가 집냥이가 됐을 때 얻게 될 좋은 점과 나쁜 점 모두 반려인의 손에 달려있다. 그만큼 반려인의 삶도 변해야 한다는 뜻이다. 공간을 내어주는 것 이상으로 큰 변화를 주어야 한다. 굶기지 않기 위해 때 맞춰 제대로 된 식사를 제공해야 한다. 다섯 배는 늘어날 반려묘의 기대수명만큼 반려인의 삶도 맞춰나갈 준비를 해야 한다. 중성화 수술, 각종 예방접종, 건강검진, 연령과 건강상태에 맞는 사료 급여 등 마음 쓰고 큰돈 써야 하는 일이 많다. 성장과 늙어가는 묘생의 각 단계의 필요, 매일의 사냥욕과 호기심을 충족시켜야 한다. 사냥놀이를 위한 장난감 값 지출만 해도 보통이 아니다. 외출을 줄이고 여행은 힘들다는 사실도 받아들여야 한다.


 외향적인 사람이라 약속이 잦고, 한 달에 한 번 정도 여행을 가는 나였다. 겨울엔 꼭 라오스에서 한 달 정도 보냈고 최근 몇 년 간은 치앙마이에서도 몇 주씩 보냈다. 틈틈이 다른 나라에도 일주일 내외로 다녀오며 살았으니 내적 갈등이 심했다. 여러모로 예전처럼 마음껏 여행을 다니기 힘들어진 상황이 힘을 조금 실어줬을지도 모르겠다.


 사람인지라 조금이라도 정든 고양이와 함께하고 싶은 동시에, 그러면 단풍이는? 너구리는? 하는 생각도 들었다. 훨씬 오랜 기간 봐왔고 문 열고 나오면 화단에서 눈을 마주치는 녀석들은 어떻게 하지 싶었다. 그렇다고 눈에 띄는 모든 고양이들을 데려올 수도 없다. 한 마리의 고양이를 반려하기에도 현실적인 제약이 큰데 무턱대고 다 들이는 건 불가능했다. 알면서도 결국 한 마리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 선택받지 못한 고양이는 그대로 남겨진다는 게 못내 마음을 괴롭혔다. 한 마리의 아깽이라도 보다 나은 삶을 사는 게 누구도 그렇지 못한 것보다 낫겠지만 그러면 남은 아깽이는?


집 근처 어디에서나 보였던 고양이들


 그렇게 복잡한 생각을 안고 매일 아깽이들을 만나다 보니 훨씬 위험한 환경에 있는 우주에게 점점 마음이 갔다. 차도로 뛰어드는 모습을 몇 번이나 봤는지 모른다. 돌보는 어미나 함께하는 형제도 보이지 않았다. 데크 아래라는 거주지가 보여주듯 특정한 밥자리도 없었다. 누군가의 선한 마음이었겠지만 놓여있는 참치캔이나 소시지 등을 보면 고마움과 동시에 걱정도 커졌다. 배고픔에 찾게 되는 음식물 쓰레기나 짠 음식들은 건강에 안 좋을 게 뻔했다. 어릴 때 봤던 『마루 밑 바로우어즈』의 작은 사람들은 큰 사람들에게 알아서 빌려 먹고 쓰기라도 했지, 우주는 그럴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언제 차에 치일지 모르는 입지가 가장 신경 쓰였다.


 결심은 섰고, 이제 데려오기만 하면 된다. 어떻게 데려오면 될지 이미지 트레이닝도 끝났다. 오늘이냐, 내일이냐의 문제만 남았다. 하루에 두어 번 이상 찾아가 상태를 확인했다. 고깃집이 문 닫은 인적 드문 시간이 가장 좋은 시간이었다. 그렇게 밤에 찾아간 상가에 처음 보는 젊은 커플이 있었다. 바닥에 이동장을 열어두고 간식으로 우주를 유인하며. 우주를 데려오기로 마음먹었던 우리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상황 파악을 위해 멀찍이서 지켜봤다. 한 명은 계속 우주를 유인하고 있었고 나머지 한 명은 연신 통화를 했다. 우리를 의식한 한 명이 다가오더니 본인들은 고양이를 반려하고 있는데 우주 입양처를 찾아서 데려가려는 중이라고 말했다.


 복잡했다. 짧은 순간 복화술 같은 귓속말을 짝꿍과 주고받았다. 우리가 아직 품은 아이도 아니긴 하지만 이렇게 눈앞에서 떠나보내야 하나? 싶은 마음. 우리가 아무리 여러모로 준비하고 공부를 해도 미숙한데 이미 반려묘가 있는 사람들이 찾아주는 입양처로 보내주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루하루 결심을 미뤄온 만큼 미숙함만 쌓인 것 같았다. 그런 만큼 더 능숙한 손길에 맡기는 게 맞는 것 아닐까. 그렇게 느꼈다. 알겠다고, 우리도 우주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지금 어떤 상황인지 주시하고 있었다고, 잘 됐으면 좋겠다 얘기하고 지켜보다 방해하지 않으려 발길을 돌렸다. 아니, 돌리려 했다.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딱 그날의 우리 마음 아니었을까? 방해되지 않을 만큼 거리를 벌린 채 차마 자리를 뜨지 못했다. 가능한 먼 거리에서 가로등 불빛에 비친 커플과 우주를 지켜봤다. 왜인지 우주는 간식에 반응하면서도 이동장에 들어가지 않았다. 능숙해 보이던 커플은 계속 어딘가로 전화를 했다. 애쓰는 모습은 보였지만 끝내 우주를 데려가지 못했다. 상가 옆에서 이유 모를 언쟁을 한참 하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사라졌다. 스마트폰을 보니 2시간이 넘게 지나있었다.


 다음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짝꿍에게 연락이 왔다. 우주를 만났는데 더 이상 지체할 수 없겠다고. 엄한 손에 맡길 게 아니라 지금 당장 우리가 데려오자고. 집에서 장갑과 이동장, 간식과 장난감을 들고 우주를 만나러 갔다. 우주는 짝꿍 손에 들린 간식과 이동장 안에서 흔들리는 쥐돌이 장난감에 금방 빠져들었다. 엉덩이를 톡 치자 그대로 이동장 안으로 들어갔다.


 집에 온 우주는 이동장을 열어주자마자 재빨리 책장 밑으로 들어갔다. 고깃집 데크 밑에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채  10센티미터가 될까 말까 한 어두운 틈이었다. 아깽이라도 들어가기 쉽지 않은 높이라 마치 당시 한창 유행하던 가수 비의 깡춤을 추는 것 같이 드나들어야 했다. 밖에선 그렇게 울면서 부르더니, 책장 아래에선 숨소리 조차 내지 않았다. 박스를 잘라  만든 숨숨집**** 여러 개를 방바닥에 뒀다. 우리 냄새가 밴 옷과 수건도 곳곳에 깔았다. 마트에서 급히 사온 사료와 물, 장난감과 함께 혼자만의 시간을 줬다.


 집에 적응하는 데 얼마나 걸릴까? 아깽이의 호기심이 두려움을 이기는 데 얼마나 걸릴까? 생각하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불 꺼진 방에 들어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면서.


집에온 후 며칠 후의 모습
침대 아래 캐리어에 자리 잡은 모습




* '수직 공간'은 오르내릴 수 있게 구성한 공간이다. 같은 공간이어도 고양이의 시선으로 수직 공간을 조성해주면 훨씬 넓고 다채롭게 쓸 수 있다. 캣타워, 캣폴과 같은 가구는 물론 의자, 책상, 수납가구, 가전제품 등으로도 구성할 수 있다. 성향에 따라 조금 다르지만 시야가 확보되는 높은 곳과 안정적으로 숨을 수 있는 곳 모두를 필요로 한다. 선반, 캣워크, 창문 해먹 등을 이용하면 평범한 벽, 책장, 창문 등도 고양이를 위한 훌륭한 공간이 된다. 박스 등을 활용해 저렴하게 만들 수도 있다. 가끔 위치나 방향을 바꾸거나 보자기, 담요, 장난감, 소품 등으로 변화를 줄 수 있다. 새로운 공간에 고양이를 강제로 올려두거나 밀어 넣기보다 스스로 탐색할 시간을 주는 걸 추천한다.


** '고양이 화장실'은 고양이가 배변하는 곳이다. 고양이는 보통 배변훈련이 필요 없다. 모래나 흙에 볼일을 보고 흔적을 지우기 위해 덮는 습성 때문이다. 생존과 관련해 각인된 습성이므로 강아지 배변패드나 사람 화장실의 변기를 강요하는 행위는 아주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어미나 반려인의 배변 유도가 필요한 아주 어린 아깽이 말고는 대체로 새로운 공간에서도 알아서 해결한다. 화장실은 형태와 크기가 다양하다. 배변 중엔 취약하기 때문에 망을 볼 수 있고 퇴로가 확보된 곳을 선호하니 베란다나 복도 끝, 공간의 구석, 현관 등은 피하는 게 좋다. 고양이 화장실의 모래가 덜 튀어나오는 뚜껑형(후드형)은 집사에게만 편하고 고양이에게는 위의 이유로 불편하며 환기, 제습 면에서도 안 좋다. 모래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벤토나이트가 실제 모래와 비슷해 추천한다. 화장실에 7~8cm 이상 높이로 깔아주며 매일 삽으로 대소변을 치워줘야 한다. 소변이 굳은 모양은 감자, 대변이 굳은 모양은 맛동산 같다 하여 매일매일의 청소는 '감자와 맛동산을 캔다'고 흔히 표현한다. 2~4주 간격으로 모두 비우고 세척 후 새 모래를 깔아주는 전체 갈이를 해야 한다. 다양한 곳에서 배변하는 습성과 선택지 제공을 위한 화장실의 최소 개수는 묘구수+1 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한 마리면 2개, 두 마리면 3개가 최소 개수다.


*** '이동장'은 보통 캔넬 Kennel이라고 부른다. 플라스틱, 철, 천 등 다양한 재질과 손가방, 백팩, 유아차 스타일 등 다양한 형태가 있다. 동물병원 진료를 위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하며 평상시엔 숨숨집으로 활용하는 고양이들도 있다. 동물병원 내원 과정에서 문이 열리거나 자크, 천이 찢어져 잃어버리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이 들려오니 튼튼한 제품을 선택하고 재차 확인할 필요가 있다. 병원 내원 시 도보로 이동하는지, 차량을 이용하는지 등에 따라서도 적절한 형태를 고려한다. 개인적으로 플라스틱에 철제 문이 달린 이동장을 추천하며 위쪽이 열리는 제품은 이동장에 고양이를 넣거나 꺼낼 때 편하지만 견고한지 꼭 확인해야 한다. 캐리어 스트랩, 케이블 타이 등으로 보강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 '숨숨집'은 고양이가 숨거나 쉴 수 있는 공간을 뜻한다. 반려동물 용품 시장에서 방석과 마찬가지로 가장 흔한 제품 중 하나다. 다양한 형태를 생활공간 곳곳에 놓아주기를 추천한다. 숨숨집은 꼭 대단한 것일 필요는 없고 한쪽을 잘라낸 택배박스 등도 충분히 기능한다.


- 매거진 '묘한 묘연'을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으시면 이해하기 편한 연재 글입니다.

01화. 집사 간택의 순간 - 어느 날 새끼 고양이가 현관에 들어왔다

02화. 갑자기 고양이들이 쏟아져 나왔다 - 아는 만큼 보인다고

03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고양이 - 천진하게, 그리고 아슬아슬하게

04화. 마루 밑 고양이에서 책장 밑 고양이로 - 묘생 역전의 시작

05화. 그렇게 식구가 된다 - 고양이가 집에 온 첫날

06화. 고양이와 이사하기 1 - 웬만하면 추천하지 않는다

07화. 고양이와 이사하기 2 -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08화. 20평짜리 캣타워를 만들어보자 - 고양이가 사는 집 인테리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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