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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 끝 - 옌롄커

지는 해(日落)처럼 사라지고 다시 떠오르는

by 세잇

『그해 여름 끝』은 제목과 달리 한여름의 짙은 더위 속에 시작됩니다. 주인공인 중대장 자오린과 지도원 가오바오신은 총기 분실 사건으로 인해 인생의 변곡점을 맞게 되는데요. 변변치 않은 출신으로 인해 군 생활에 사활을 걸고 있던 두 사람, 적당한 때를 지나 더 이상 실패도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말년, 거의 마지막 차수가 될 진급을 앞두고 있던 그들에게 이 총기 분실 사건은 한순간에 모든 걸 잃게 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였습니다. 이 두 사람이 겪는 심리적 압박감을 따라가다 보니, 겉으로 드러나는 사건의 긴박함보다 더 깊은 곳에 흐르는 불안과 절망이 함께 읽혔습니다.


중대장은 지도원에게 '지도원 자네가 내게 부대대장을 맡으라고 한다면 나는 죽어도 고개를 돌리지 않을 걸세!'라고 말하며 자신의 진급에 대한 강한 열망을 드러냅니다. 이 한 문장에는 평생을 군대라는 조직에 헌신하며 오직 승진만을 바라왔던 한 인간의 절박한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간절함과는 무관하게 총을 훔친 범인은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운명처럼 두 사람을 조롱하고 있는 것만 같았죠. 지도원이 '라오가오, 보아하니 총을 훔친 범인은 자네와 나를 겨냥하고 있는 것 같네'라고 말할 때, 저는 이들이 겪는 고통이 단순한 실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속해 있는 군대라는 거대한 부조리의 시스템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음을 눈에 담았습니다.


이 소설 속 인물들의 모습은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속 주인공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고도를 기다리며』에서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끝없이 기다리던 '고도'가 끝내 오지 않는 것처럼, 자오린과 가오바오신이 갈구하는 '진급'과 '도시 호구' 역시 그들에게 결코 주어지지 않을 허망한 약속처럼 보입니다. 군대라는 텅 빈 무대 위에서 진급이라는 허상과 잃어버린 총이라는 상징적 존재를 찾아 헤매지만 그들의 행동은 결국 자신들의 삶을 송두리째 짓누르는 거대한 권력의 기제 앞에 의미 없는 몸부림에 지나지 않습니다. 특히 당시 중국의 농촌 출신 인민들에게 '도시 호구'는 단순한 거주지로서의 의미를 넘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계층 사다리적인 권리였기에, 이들이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목표가 얼마나 허망한지를 더욱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옌롄커는 이를 통해 인간의 고통이 사회적 불합리성, 즉 도시와 농촌이라는 이분법적 구조 속에서 어떻게 발생하고 소외되는지를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그럼에도 삶의 몫을 살아내는 사람들

삶의 무대가 아무리 부조리로 가득할지라도 그 안에는 따뜻한 온기가 존재합니다. 옌롄커는 이 혹독한 이야기 속에서 인간적인 연민과 성찰의 순간을 놓치지 않습니다.


"몰래 엿들었지. 그렇다고 날 원망하진 말게. 듣고 나서 감동을 받으면서도 질투가 나기도 했지. 우리가 살면서 뭘 더 바라겠나? 자기 인생의 몫을 살아내는 것뿐이지. 자네도 자신을 너무 속박하지 말았으면 좋겠네. 꼭 찾아가 보도록 하게."


이 문장은 경쟁자이자 때로는 속박의 대상이었던 지도원이 중대장에게 던지는 진심 어린 위로입니다. '자기 인생의 몫을 살아내는 것'이라는 말은 사회가 규정한 성공과 실패의 틀에서 벗어나, 오롯이 '나'로서의 삶에 충실하라는 의미처럼 다가옵니다. 인생의 방향이 총기 분실 사건으로 인해 예상 못한 방향으로 틀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비로소 자신의 삶을 온전히 마주하고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나가는 것이죠. '세상만사가 다 그렇지. 마음이 풀리면 되는 일 아니겠나'라는 한마디에 담긴 담담한 체념은, 더 이상 저항할 수 없는 현실 앞에 평온을 찾아가는 또 다른 방식처럼 보입니다.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것. 이것이 옌롄커가 고통으로 얼룩진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 중 하나일 겁니다.


강 아래로 헤엄쳐 사라지는지는 해

이 작품에서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은 지는 해(日落)에 대한 묘사입니다. 총기 분실이라는 긴박한 상황과 대비되는, 지극히 고요하고 아름다운 순간인데요.


"맞아요, 아버지. 그곳은 너무나 아름다웠어요. 뭐라고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고요해서 누군가 그곳에 도착하기만 하면 마음이 백지장처럼 깨끗해질 것 같았어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제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그곳의 지는 해(日落)였습니다. 해는 강에서 헤엄쳐 나와 강 아래로 헤엄쳐 사라졌어요."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합니다. '해는 강에서 헤엄쳐 나와 강 아래로 헤엄쳐 사라진다'는 표현은 삶과 죽음의 경계, 그리고 모든 것의 순환을 시적으로 보여줍니다. 마치 한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시대가 떠오르는 것처럼, 혹은 한 인간의 고통과 좌절이 끝나고 새로운 평온이 찾아오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지는 해는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라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찾은 영혼의 안식처, 삶의 끝자락에서 마주한 깨달음처럼 다가옵니다.


결국 옌롄커는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 아름다움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새깁니다. 총을 잃어버린 사건은 주인공들에게 불행이었지만 동시에 자신들의 삶을 되돌아보고 진정으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 역시 때때로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통제할 수 없는 불행이 닥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혼란 속에서도 우리는 지는 해처럼 고요하고 아름다운 순간을 발견하고, 그 순간을 통해 다시 일어설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자오린과 가오바오신처럼 잃어버린 총을 찾아 헤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승진이든, 성공이든, 인정이든, 우리가 간절히 추구하는 것들이 때로는 신기루처럼 아른거리다가 어느 순간 손 닿을 수 없는 곳으로 사라져 버리곤 하니까요. 하지만 옌롄커가 이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그런 상실의 순간에도 삶은 계속된다는 것, 그리고 그 이어짐 안에서 언제나 예기치 못한 아름다움과 마주한다는 것일 겁니다.


'해는 강에서 헤엄쳐 나와 강 아래로 헤엄쳐 사라진다'는 문장처럼

우리의 고통도 영원하지만은 않을 겁니다.


지는 해가 다시 떠오르듯

절망 끝에서 만나는 작은 위안들이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겠죠.


결국 삶이란 무엇을 얻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잃었을 때 어떻게 견뎌내느냐의 문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견딤의 과정에서 우리는 비로소

'자기 인생의 몫을 살아내는'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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