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무 - 고다 아야

우리도 언젠가는 사라질 존재이지만

by 세잇
"고목이 온기를 품은 것일까, 아니면 새로 자란 나무가 한기를 막아주는 것일까."

고다 아야의 『나무』를 펼치며 처음 밑줄 그은 문장입니다. 쓰러져 죽은 가문비나무에서 새로운 생명이 자라나는 모습을 보며 작가가 던진 질문인데요. 단순해 보이는 문장이지만 그 안에는 삶과 죽음, 그리고 시간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겨 있다 생각했습니다.


고다 아야는 일본 근대문학의 거장 고다 로한의 둘째 딸로 태어나 1990년까지 86년을 살았습니다. 다섯 살에 어머니를 잃고 스물두 살에는 남동생마저 떠나보내는 슬픔을 겪었죠. 결혼 10년 만에 이혼하고 딸과 함께 아버지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함께했던 작가입니다. 『나무』는 그녀가 말년에 13년 6개월에 걸쳐 일본 전국의 나무를 찾아다니며 기록한 유작으로, 출간된 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어요. 작가의 이런 개인사를 알고 나니 왜 그녀가 나무에게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보려 했는지 이해가 되었습니다. 상실을 겪으며 살아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시선이랄까요.



두 번의 생명을 사는 나무들

"나무는 뿌리를 내리고 서 있을 때의 생명과, 잘려서 목재가 된 이후의 생명 이렇게 두 번의 생명을 갖는다."

호류지 대보수에 참여한 도편수들의 말을 인용한 대목입니다. 1,200년 묵은 나무일 지라도 대패로 한 번 쓱 밀면 여전히 향기를 풍기고, 습기를 머금으면 부풀고 건조하면 쪼그라든다는 고백.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 장면에 우리 인생에도 '두 번의 생명'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첫 번째는 우리가 실제로 살아가는 시간들이고, 두 번째는 우리가 남긴 것들이 다른 사람들 안에서 계속 살아가는 시간들 이겠지요. 고다 아야의 글이 지금도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는 것처럼요.


"이는 '형태를 바꾼다'는 것이다."

포플러가 목재로 가공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작가가 내린 결론입니다. 자연 속에서의 나무는 시간을 들여 서서히 형태를 바꿔가지만, 인간의 보살핌 속에서는 단 몇 시간 만에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죠. 어떤 변화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아주 천천히 일어나고, 어떤 변화는 갑작스럽게 우리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여러 세대가 함께 사는 지혜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그보다 훨씬 더 윗대 할아버지부터 현재의 아버지, 자식, 손자, 증손자, 증손자의 아들까지 모두 한 그루 안에 뒤섞여 살아가는 것 같다."

폭포벚나무를 보며 작가가 써 내려간 감상입니다. 아주 오래된 가지부터 올해 자란 어린 가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한 그루 안에 공존하고 있다는 것. 인간 세계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지만 나무는 그렇게 여러 세대가 함께 살아간다고 합니다.


이 문장을 읽으며 저는 문득 우리들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할머니에게서 어머니로, 어머니에게서 딸아이에게로, 그리고 그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그 무엇.

DNA 로만 설명할 수 없는, 습관이나 성격, 가치관 같은 것들이 복잡하게 얽히며 전해지는 과정.


나무의 관점에서 보면 개별적인 존재라는 경계가 모호해 질지 모릅니다. 어디서부터가 할아버지이고 어디서부터가 손자인지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죠. 다만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하나의 생명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 그저 신비스러울 따름입니다.



똑바로 서는 것과 뿌리의 힘

"비스듬히 서 있는 나무는 더 많이 애를 써야 할 겁니다."

편백나무에 대해 장인이 설명합니다. 똑바로 자란 나무와 비스듬히 자란 나무 중 어느 쪽이 더 편할지는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고 하죠. 비스듬히 서 있는 나무는 자기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더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하고, 그 결과로 껍질에 뒤틀림이 생겨 좋은 목재를 얻기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이 대목을 읽으며 저는 우리 인생에서도 '똑바로 서는 것'의 중요성을 생각해 봅니다. 여기서 말하는 '똑바로'는 도덕적 완벽함을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의 본성에 맞게, 자연스럽게 성장해 나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죠.


"잔뿌리는 나무라는 구조의 말단이지만, 구조의 말단은 온 힘과 노력을 쏟고 있다."

거대한 나무의 뿌리를 보며 작가가 느낀 감동입니다. 말단이라고 해서 덜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체를 떠받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죠. 뿌리 없이는 나무가 존재할 수 없듯이, 우리 사회도 이런 '말단'의 노력 없이는 지탱될 수 없을 겁니다.



목재가 아닌 살아있는 아름다움

"왜 살아 있는 아름다움을, 숨결을 기억해주지 않는 것인가. 우리의 감수성은 이제 소멸해 버린 걸까?"

사람들이 편백나무를 목재로써만 인식하고, 살아있는 편백나무의 아름다움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작가의 안타까움이 드러나는 문장입니다. 이는 단순히 나무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닐 겁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전반에 대한 성찰이겠지요. 사람을 볼 때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 사람의 쓸모만을 보고, 존재의 의의와 가치를 놓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요. 직업이나 학벌, 재산 같은 외형으로만 사람을 평가하고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들과 경험, 내면의 아름다움은 보려 하지 않는 우리의 모습이 겹쳐집니다.


고다 아야가 바라는 것은 '생명의 시를 읊으며 산과 들에서 살아가는 모습과 생애를 마치고 아름답고 튼튼한 목재가 된 모습 둘 다 사랑스러워하는 마음'입니다. 즉, 존재의 모든 단계와 모든 형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하는 마음이죠.



온기를 품은 죽음의 의미

다시 처음의 문장으로 돌아가 봅니다.

"고목이 온기를 품은 것일까, 아니면 새로 자란 나무가 한기를 막아주는 것일까."

작가는 이어서 말합니다.

"죽은 후에도 이처럼 온기를 품을 수 있다면 그걸로 괜찮다."

이 문장에서 고다 아야라는 사람의 삶에 대한 태도를 엿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죽음 이후에도 누군가에게 온기를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다고 여기는 마음. 상실을 경험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성숙한 지혜는 아닐는지요.


실제로 고다 아야의 『나무』는 그녀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여전히 독자들에게 온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책 속의 나무들처럼, 그녀의 글 역시 '두 번째 생명'을 살고 있는 셈이죠.



나무에게서 배우는 삶의 자세

『나무』를 읽고 나니 나무가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시간을 보여주는 존재로서

생명의 연속성을 증명하는 존재로서

겸손과 인내를 가르쳐주는 스승 같은 존재임을 되새깁니다.


우리는 종종 다른 삶을 동경하여 다른 사람이 되기를 원하거나, 누군가가 나의 삶을 바꿔주기를 기대하곤 합니다. 하지만 나무는 그렇지 않습니다. 주어진 자리에서, 주어진 조건에서 꿋꿋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른 생명들에게 그늘을 주고, 산소를 뿜어내며, 아름다움을 선사하죠.


덕분에 일상에서 만나는 나무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지나쳤던 가로수들도

공원의 큰 나무들도

각자의 이야기를 가진 존재들이라는 것.

'죽은 후에도 이처럼 온기를 품을 수 있다면 그걸로 괜찮다'는 작가의 말처럼

우리도 언젠가는 사라질 존재이지만

누군가에게 온기를 줄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나무처럼 한 자리에서 묵묵히

꾸준히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에 기여하는 삶.


고다 아야가 나무들에게서 배운 것처럼

우리도 우리 주변의 평범한 것들에서 삶의 지혜를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중요한 것은 그저 바라보려 하고

들으려는 마음일 테니까요.

오늘 길에서 만날 나무 한 그루가

우리에게 어떤 소중한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하게 됩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