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아있게 하는 말은
안녕하세요. 저는 '나와 당신의 문장은'이라는 주제로 제가 깊이 읽은 책 속 문장들을 길잡이 삼아 그 의미와 사유를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브런치북 연재는 잠시 멈추었지만, 벌써 열아홉 번째 이야기를 전해드리게 되었네요. 글이 쌓여가는 경이로움과 브런치 작가분들과의 소통에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이번 여정에서는 정혜윤 PD의 『슬픈 세상의 기쁜 말』이라는 책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이 복잡하고도 때로는 슬픔으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어떤 희망과 기쁨의 언어를 발견할 수 있는지를 함께 찾아보려 합니다. 이 책은 제게 예상치 못한 순간에 깊은 깨달음과 마음을 어루만지는 잔잔한 위로를 안겨주었습니다. 그 감동의 여운을 더욱 세심하게 나누고자, 세 편에 걸쳐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낼 계획입니다.
그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슬픈 세상의 기쁜 말』이 담고 있는 핵심적인 메시지와 제가 밑줄을 그어가며 깊이 공감했던 구절들을 중심으로, 우리에게 어떤 의미 있는 통찰과 울림을 전하는지 자세히 이야기해 드릴게요. 부디 이 글을 통해 삶의 소중한 언어를 찾아가는 여정에 동참해 주시길 바랍니다. 분명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도 저마다의 '기쁜 말'이 숨 쉬고 있음을 발견하시게 될 겁니다.
삶을 규정하는 핵심 언어, 그리고 이야기의 힘
정혜윤 PD는 이 책을 쓰기 시작하며 단 하나의 질문, "당신을 살아 있게 하는 말은 무엇입니까?"를 던졌다고 합니다. 이 질문은 마치 우리 각자에게 삶의 본질을 꿰뚫는 핵심 단어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단어가 우리를 어떻게 존재하게 하는지 되묻는 듯했습니다. 『슬픈 세상의 기쁜 말』은 코로나 시국 속에서 출간되어, 가난, 우울, 슬픔, 그리고 때로는 끔찍한 재난과 같은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자신을 굳건히 지탱하고 마침내 회복과 재생에 이르게 한 '기쁜 말'을 찾아낸 보통 사람들의 특별하면서도 진솔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제 마음을 사로잡았던 구절 중 하나는, 보르헤스, 위화, 오에 겐자부로와 같은 위대한 작가들이 각자 자신의 인생을 열 개 정도의 핵심 단어로 압축하려 했다는 대목이었습니다. 보르헤스에게는 '시간, 불멸, 거울, 미로, 실명, 시'가, 위화에게는 '독서, 글쓰기, 루쉰, 차이, 혁명'이, 그리고 오에 겐자부로에게는 '이인조, 장애'가 그러했듯이 말입니다. 특히 오에 겐자부로가 장애를 가진 아들을 위해 '말의 정의를 새롭게 내리는 것'을 소설가의 일이라고 여겼다는 부분에서는 단어가 한 사람의 삶을 어떻게 깊이 있게 규정하며, 나아가 그 삶의 의미를 어떻게 새로운 차원으로 창조해 낼 수 있는지에 대한 놀라운 통찰을 얻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단어를 나열하는 것을 넘어, 그 단어가 한 사람의 존재 방식이자 세상을 이해하는 틀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슬픈 세상의 기쁜 말』은 우리 각자에게도 삶을 규정하는 핵심 단어가 무엇인지 조용히 묻고 그 단어를 통해 자신만의 회복과 재생의 이야기를 써 내려갈 수 있음을 부드럽지만 강력하게 일깨워 줍니다. 정혜윤 PD가 말하는 것처럼 세상은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고, 우리는 언제나 가장 좋은 이야기로 힘을 얻는 존재라는 이 책의 깊은 믿음은, 우리 자신의 고유한 언어를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삶의 크고 작은 위기를 헤쳐나가는 가장 근원적인 힘이 됨을 절실하게 시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기쁜 말'을 찾는 여정은 곧 우리 삶의 의미를 재발견하는 과정과 같을 테니까요.
미래에 대한 믿음, 내면의 자유, 그리고 겸손의 미덕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 정혜윤 PD는 '현재 우리의 위기는 미래를 말하지 않는 데에 있다'는 날카로운 지적을 합니다. 더 이상 좋은 미래를 믿지 않는다는 냉엄한 현실 인식을 마주하며, 우리는 과연 어떤 희망의 언어를 발견하고 삶의 동력을 얻을 수 있을까요? 이 책은 절망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희망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며 그 해답을 찾아 나서는 귀한 안내서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남도의 외딴 항구에서 만난 어부의 이야기는 제 마음속에 깊은 울림으로 남아 있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망망대해 한가운데서도 작은 물고기는 놓아주고 금지 어종은 풀어주며 지킬 것을 굳건히 지키는 어부에게 작가님이 '어떻게 해서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작은 물고기는 놔주고 금지 어종은 풀어주고 지킬 것은 지키는 사람이 되었어요?'라고 묻자, 그는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그건 내가… 자유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답합니다. 그 어부의 등 뒤로 끝없이 펼쳐져 있던 누구의 소유도 아닌 드넓은 바다처럼, 어부의 '자유'라는 단어는 단순히 외부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난 상태를 넘어선, 스스로 옳다고 믿는 가치와 약속을 지켜내는 내면의 강인한 주체성과 윤리적 태도를 의미하는 듯했습니다.
온갖 현실적, 물질적 제약 속에 부자유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무엇이라고 하든 우리 안에 파괴될 수 없이 소중한 무언가를 지키는 것', 그것이 바로 이 부자유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작가의 통찰은, 어부의 '자유'라는 단어와 놀랍도록 정확하게 맞닿아 제게 더할 나위 없는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진정한 자유는 외부 조건에 흔들리지 않고, 우리 내면에 흔들림 없이 지켜야 할 변치 않는 가치를 아는 데서 온다는 깨달음이었습니다.
매일 보는 태양에 대해서조차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에 겸연쩍어하며, '인생 최고의 깨달음은 자신이 아무것도 아님을 아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이야기는 겸손함의 미덕이 얼마나 큰 지혜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다시금 깊이 생각하게 했습니다. 자신이 세상의 전부인 양, 혹은 세상 모든 것을 아는 양 살다가 매일 뜨고 지는 태양과 같은 자연의 경이로움 앞에서 자신의 무지를 깨닫는 순간, 비로소 진정한 통찰에 이르게 되는 과정은 우리가 '슬픈 세상의 기쁜 말'을 찾기 위해 필요한 자기 성찰의 첫걸음이자 가장 중요한 태도임을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자신을 비우고 낮출 때 비로소 세상의 섬세하고 소중한 언어가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는 메시지로 다가왔습니다.
타인의 무게를 헤아리는 공감의 힘
이 책은 단순히 개인의 회복을 넘어, 타인의 무게를 이해하고 서로 연결되는 따뜻한 관계에 대한 깊은 성찰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가 지고 있는 무게를 알아요. 제 아내와 저도 서로 상대방이 지고 있는 무게를 압니다. 저는 사람을 보면 항상 그 사람이 지고 있는 무게가 보여요. 제 생각에 사람 사이의 균형과 조화란 게 서로의 무게를 알면서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그래야 둘이 같이 가라앉지 않아요'라는 구절이 깊은 공감과 큰 울림을 주었는데요.
삶의 무게는 저마다 다르고, 어떤 이에게는 감당하기 버거운 짐이 되기도 하지만, 그 무게를 알아보고 그 짐의 크기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관계의 균형을 이루고 서로가 함께 가라앉지 않도록 굳건히 지탱해 준다는 메시지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서로의 공감과 이해를 필요로 하는지 새삼 깨닫게 했습니다.
서로의 짐을 헤아리는 깊은 공감은 슬픈 세상 속에서 '기쁜 말'을 나누고, 진정한 의미에서 연결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토대가 될 수 있음을 이 책은 조용히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정혜윤 PD가 만난 수많은 인터뷰이들이 자신의 진솔한 이야기를 통해 보여준 '기쁜 말'은 단순히 개인적인 회복의 언어를 넘어, 서로의 무게를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소중한 힘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명확히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며, 서로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이해하려 노력함으로써 더 큰 회복의 힘과 따뜻한 유대감을 얻을 수 있다는 깨달음은 우리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타인의 아픔을 헤아리는 마음이 결국 나 자신의 마음을 치유하고 단단하게 만들 수 있을 테니까요.
『슬픈 세상의 기쁜 말』은 이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고난과 슬픔 속에서도 자신을 지탱하고 타인과 깊이 연결될 수 있는 '기쁜 말'을 찾아가는 소중한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삶을 가장 깊이 있게 규정하는 핵심 단어를 찾는 일, 외부의 부자유와 제약 속에서도 내면의 자유를 굳건히 지켜내는 강인함, 자신을 낮추고 타인의 무게를 헤아리는 겸손함과 깊은 공감의 미덕까지, 삶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게 하는 잔잔하지만 깊은 통찰을 끊임없이 선사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당면한 미래에 대한 불신과 삶의 팍팍함 속에서도 '이야기'와 '말'이 가진 회복과 변화의 놀라운 힘을 믿으라고 따뜻하게 속삭입니다. 한 사람의 좋은 이야기가 단순히 그 개인의 것을 넘어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되고, 그 이야기가 우리 내면의 자아를 믿을 수 없을 만큼 부드럽게 변화시킨다는 이 믿음은, 제게 깊은 영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분명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하고 싶은 소중한 사유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슬픔으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도
각자의 '기쁜 말'을 찾아내고
그 말을 서로 나누며 함께 살아갈 수 있기를.
그리고 이 책이 여러분께도 작은 울림이 되기를.
각자의 '기쁜 말'을 발견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