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아있게 하는 질문은
비약일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는 각자의 슬픈 세상을 살아갑니다. 때로는 삶의 무게에 짓눌려 숨조차 쉬기 버겁기도, 예측할 수 없는 고난과 상실 앞에서 한없이 무력해지기도 하죠. 하지만 그 슬픔 속에서도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삶을 계속하게 하는 '기쁜 말'이 존재합니다. 정혜윤 PD의 『슬픈 세상의 기쁜 말』은 바로 그 '기쁜 말'을 찾아 나서는 여정을 담은 책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삶을 규정하는 핵심 언어와 이야기의 힘, 그리고 미래에 대한 믿음, 내면의 자유, 겸손의 미덕을 통해 '기쁜 말'의 단초를 발견했다면,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더욱 깊은 내면의 울림과 존재의 의미를 묻는 질문들을 중심으로 우리에게 진정한 회복과 연결의 길을 제시하는 메시지를 탐색하고자 합니다.
타인의 시선이 일깨우는 존재의 가치
'나는 왜 혼자 힘으로는 좋은 것이 좋은 것임을 모르는지 모르겠다. 나는 꼭 남들이 알려줘야 좋은 것이 좋은 것인지 안다. 어쩌면 이래서 타인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좋은 것이 좋은 것임을 아는 사람들이 내 곁에 많았으면 좋겠다.'
이 구절을 읽으며 스스로에게 되묻게 됩니다. 과연 나는 내가 지닌 '좋은 것'들을 온전히 인식하며 살고 있는가? 나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오롯이 나의 시선으로만 발견할 수 있는가?
'어려서 마당에서 쇠똥구리를 보았던 기억을 가장 자랑할 만한 것'이라고 말하는 작가의 고백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순간들 속에 얼마나 큰 기쁨과 자랑거리가 숨어 있을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쇠똥구리가 멸종 위기에 처한 귀한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을 '부러워하는 남들이 있어서 겨우 알았다'는 대목은, 어쩌면 우리 삶의 많은 '좋은 것'들이 타인의 시선과 인정을 통해 그 가치를 드러내는 것은 아닌가 돌아보게 됩니다. 어쩌면 타인의 눈을 통해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의 특별함을 발견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죠.
이는 비단 쇠똥구리와 같은 자연의 경이로움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우리 각자의 삶 속에도 타인에게는 경이로움이 될 만한 순간들, 재능, 그리고 고유한 이야기들이 무수히 존재할 테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익숙함이라는 옷에 갇혀 그것들의 진정한 가치를 보지 못하고 흘려보내곤 합니다. 타인이 던지는 따뜻한 시선과 공감의 말 한마디가 우리가 가진 것들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고 나아가 우리 존재의 가치를 더욱 확고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것이 좋은 것임을 아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자 '기쁜 말'을 생성하는 중요한 토대가 됩니다. 우리 또한 누군가에게 그러한 '좋은 것이 좋은 것임을 아는 사람'이 되어줄 수 있다면, 슬픈 세상에 기쁜 말이 한 조각 더해지는 일이 될 테죠.
슬픔을 감당할 기쁨을 찾는 의무
'아침에 눈을 뜨는 나의 의무 사항 중 하나는 하루의 슬픔을 감당할 기쁨을 찾는 것이다.'
이 문장은 저에게 묵직한 울림을 주었습니다. 단순히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라는 조언을 넘어, '의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은 삶의 고통 앞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능동적이고 책임감 있는 태도를 강조하는 듯했습니다. 하루는 언제나 예기치 않은 슬픔과 마주하게 될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 작은 실망감부터 큰 좌절감에 이르기까지, 삶은 우리에게 다양한 형태의 슬픔을 던져주죠. 그렇다면 우리는 이 슬픔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요?
작가는 슬픔을 회피하거나 외면하는 대신, 그 슬픔을 능히 감당해 낼 만한 '기쁨'을 찾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결코 슬픔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슬픔을 인정하고 그 앞에서 무너지지 않기 위한 내면의 힘을 기르는 적극적인 행위라고 말하는 것이죠. 하루를 시작하며 기쁨을 찾는 일은 우리 내면에 희망의 불씨를 지피고, 어떤 역경 속에서도 삶을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겁니다. 이는 거창한 행복을 좇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 작은 미소, 한 잔의 따스한 차, 좋아하는 플레이리스트처럼 소소하지만 확실한 기쁨을 의도적으로 찾아내고 음미하는 노력만으로도 채워지리라 믿습니다.
이러한 '기쁨 찾기'는 생존을 위한 전략일 수도, 우리 영혼을 보살피는 자기 돌봄의 행위일 수도 있습니다. 슬픔이 우리의 시야를 가리고 마음을 짓누를 때 의식적으로 기쁨을 찾아 나서는 일은, 삶의 균형을 맞추고 어둠 속에서도 한 줄기 빛을 발견하게 하는 힘을 지닐 테니까요. 이 '의무'는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가 슬픈 세상 속에서도 서로에게 기쁜 말을 건넬 수 있는 여유와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기반이 될 겁니다.
깨져야 할 것과 깨지지 말아야 할 것
9·11 테러와 세월호 참사를 언급하며 작가가 던지는 '나는 모르겠어요. 뭐가 깨지지 말아야 하고 뭐가 깨져야 하는지.'라는 인터뷰 내용은 혼란스러운 역설을 안겨줍니다. 9·11 테러 당시 꿋꿋이 멀쩡하게 살아남은 유리창에서 희망을, 세월호의 우현 선수에 깨지지 않은 유리창에서 절망을 읽어내는 작가의 통찰은 사건과 상황에 따라 동일한 물리적 현상이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9·11의 유리창은 생존과 회복의 상징으로, 파괴 속에서도 견뎌낸 강인함을 의미합니다. 반면 세월호의 유리창은 절망과 비극의 상징으로, 희생자들의 마지막 순간을 갇히게 한 비정함을 의미하죠. 이 두 유리창은 우리에게 단순히 물리적인 존재를 넘어, 삶과 죽음, 희망과 절망, 구원과 비극이라는 심오한 철학적 질문을 던집니다. 무엇이 견뎌야 하고, 무엇이 무너져야 하는가? 어떤 침묵이 더 큰 상처를 남기고, 어떤 파열음이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가?
이러한 역설적 질문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만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담긴 인간의 고통과 희망을 헤아리는 공감의 능력이 필요함을 말하는 것이죠. 때로는 견고하게 지켜져야 할 것이 무너져야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기도 하고, 때로는 무너져야 할 것이 굳건히 버팀으로써 더 큰 비극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기쁜 말'은 이러한 역설 속에서 우리가 어떤 가치를 지키고, 어떤 변화를 추구해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드는 힘을 지닙니다.
위험한 세상에서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
'이 위험한 세상에서 우리가 사랑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이 질문은 앞선 유리창의 역설과 맥을 같이하며, 슬픔과 고통이 만연한 세상 속에서 '사랑'이라는 가장 근원적인 감정이 지니는 의미와 역할을 성찰하게 합니다. 세상은 언제나 위험으로 가득합니다. 자연재해, 질병, 전쟁, 그리고 인간 내면의 어둠까지, 수많은 위협들이 우리를 에워싸고 있죠.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랑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요?
작가가 만나 이야기를 들려준 9·11 테러 생존자나 콜럼바인 총기 사건 희생자들의 이야기는 위험한 세상에서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와 의미를 지니는지 보여줍니다. 극한의 상실과 고통 속에서도 타인에 대한 연민과 삶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는 이들의 모습은, 사랑이 단순한 감정을 넘어 삶을 지탱하는 가장 굳건한 힘임을 증명합니다. 사랑은 고통받는 이들을 보듬고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손을 내밀며, 분열된 세상을 다시 연결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 위험한 세상에서 사랑한다는 것은 곧 희망을 선택하는 행위일 겁니다. 절망과 분노에 굴복하지 않고,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를 마주하며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용기 있는 행동말이죠. 『슬픈 세상의 기쁜 말』은 사랑이 단순한 개인적인 감정을 넘어 우리가 함께 살아가야 할 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가치이자 슬픔을 이겨내는 가장 강력한 '기쁜 말'이 될 수 있음을 조용히 이야기합니다.
증오와 사랑, 그리고 파괴와 고통의 끝에서
콜럼바인 총기 사건의 가해자였던 에릭과 딜런의 이야기는 인간 내면의 어둠과 빛, 그리고 그 선택의 비극적인 결과에 대해 깊이 바라보게 합니다. 작가는 그들의 내면을 섬세하게 분석하며, 증오와 열등감이 어떻게 파괴적인 행위로 이어지는지, 그리고 사랑의 갈구가 좌절되었을 때 어떤 비극이 발생하는지를 써 내려가는데요.
에릭은 '열등한 사람을 미워'했고, '인간은 쓸모없는 존재이기에 인간의 멸종을 바랐'으며, '자신의 우월함을 증명하기 위해서 폭탄을 만들'었습니다. 그의 노트에는 '증오'라는 단어가 가장 많았고, 그는 '죽이고 싶어' 했으며, '인간이 고통받기를' 바랐고, '남들에게 화'를 냈습니다. 에릭의 내면은 순수한 증오와 파괴 욕구로 가득 차 있었고, 그에게 사랑의 욕구는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그는 자신의 고통을 타인에게 전가하며 세상을 파괴하려 했습니다.
반면 딜런은 '자신이 열등하다고 생각'했고, 노트에 '사랑'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썼으며, '사랑을 갈구'했습니다. 그는 '자기를 쏘기 위해서' 총을 구하려 했고, '죽고 싶어' 했으며, '자신의 고통을 끝내고' 싶어 했고, '자신에게 화를' 냈습니다. 딜런은 학살극을 기획할 때조차 동요하며 '손 떼고 그냥 좋은 아이가 되고' 싶어 하기도 했습니다. 딜런의 내면은 고통과 자괴감으로 가득 차 있었고, 사랑을 갈구했지만 결국 자신의 고통을 끝내기 위한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자살이냐 학살이냐, 그는 선택해야 했다. 결국 딜런은 세상을 날려버린 후 자살하기로 선택했다.'는 문장은 딜런이 처했던 비극적인 내적 갈등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총기 사건으로 이어진 이 두 인물의 비극적인 이야기는 우리에게 인간 내면의 복잡성과 취약성을 직시하게 합니다. 증오와 파괴가 어떻게 시작되고, 사랑과 고통이 어떻게 뒤엉켜 비극으로 치닫는지 보여주죠. 이 이야기는 단지 충격적인 사건의 기록을 넘어, 우리 사회가 개인의 내면적 고통과 사랑의 갈구를 어떻게 인지하고 보듬어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기쁜 말'은 이러한 내면의 어둠에 가려진 고통을 이해하고, 사랑과 치유의 메시지를 전함으로써 더 큰 비극을 예방할 수 있는 힘을 지녀야 합니다.
'우리'가 될 수 있다면 달라지는 것들
'세상은 서로의 차이를 서럽도록 강조하고 우리는 서로를 결코 이해하지 못하고 그 사이에 시간은 오싹할 만큼 창백하고 차갑게 흘러가지만, ‘우리’가 될 수 있다면 많은 것이 달라진다. 타인은 힘겨운 지옥일 수도 있지만 그러나 언제나 고독을 뚫고 나오게 하는 것 또한 타인의 존재다.'
이 구절은 단절과 고독이 만연한 현대 사회에 깊은 울림을 줍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배경과 경험, 가치관을 지니고 있기에 때로는 깊은 오해와 갈등 속에 놓이곤 합니다. '서로의 차이를 서럽도록 강조'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는 절망적인 인식이 자리 잡기 쉽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그 절망 속에서도 '우리'가 될 수 있다면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타인은 힘겨운 지옥일 수도 있지만 그러나 언제나 고독을 뚫고 나오게 하는 것 또한 타인의 존재다.'라는 문장은 인간관계의 양면성을 극명하게 보여주죠. 타인은 우리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고독이라는 깊은 심연에서 우리를 건져 올리는 유일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진정한 '우리'가 된다는 것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하려 노력하며, 그 속에서 공통의 연대감을 형성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콜럼바인 총기 사건의 비극적인 서사와도 대조됩니다. 에릭과 딜런이 '우리'가 될 수 없었던 고독한 개인으로 존재했기에 파괴적인 선택을 했다면, '우리'가 될 수 있는 사회는 서로의 고통을 이해하고 연대하며 치유의 길을 모색할 수 있을 겁니다.
'기쁜 말'은 이러한 우리를 만들기 위한 언어입니다. 서로의 아픔에 공감하고, 격려하며, 희망을 이야기하는 말들이 모여 비로소 우리는 단단한 우리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사랑만으로는 부족하다
딜런의 엄마 수 클리볼드의 이야기는 핵심적인 메시지 중 하나로 다가옵니다.
'사랑만으론 부족합니다.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일을.'
이 문장은 조건 없는 사랑의 맹목성을 경계하며 진정한 사랑은 이해와 인식을 동반해야 한다는 깊은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자식을 한평생 사랑했지만 그 내면의 고통과 어둠을 미처 알지 못해 비극을 막지 못했던 엄마의 고백은, 우리에게 사랑의 진정한 의미와 그 한계를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끼고 위하는 마음에서 많은 것을 해주려 하지만, 때로는 그들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감정과 생각까지 전부 품긴 어렵습니다. 때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덮어버리려 하거나 혹은 나의 시선으로 상대를 재단하려 할 때 진정한 이해는 멀어지게 마련이죠. 수 클리볼드의 이야기는 '사랑만으론 부족하다'는 뼈아픈 깨달음을 통해 사랑하는 이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고 그들의 고통과 갈등을 이해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합니다.
이는 비단 가족 관계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닐 것입니다. 친구, 연인, 동료, 나아가 사회 구성원으로서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하려 하지만, 그 사랑이 진정한 이해와 공감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다면 때로는 깊은 오해와 상처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일을.' 이 문장은 타인의 무게를 헤아리는 공감의 힘을 넘어, 그 무게의 근원과 그들이 겪는 내면의 싸움을 이해하려는 지적인 노력과 정서적인 개입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기쁜 말'은 바로 이러한 깊은 이해와 깨달음에서 출발하며 타인의 내면을 보듬고 치유하는 진정한 언어가 될 수 있습니다.
정혜윤 PD의 『슬픈 세상의 기쁜 말』 두 번째 이야기는 이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근원적인 질문들과 마주하게 합니다.
타인의 시선을 통해 나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하루의 슬픔을 감당할 기쁨을 찾아 나서며
혼란스러운 현재라는 역설 속에서
무엇이 깨져야 하고 무엇이 견뎌야 하는지 깊이 있게 바라보게 합니다.
위험한 세상에서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를 묻고
증오와 사랑이 빚어내는 파괴와 고통의 비극을 통해
인간 내면의 복잡성을 이해하려 합니다.
나아가 '우리'가 될 수 있다면 달라지는 것들을 믿고
침묵하지 않고 목소리를 내어 변화를 만들 용기를 가질 것을 이야기하죠.
특히 '사랑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뼈아픈 깨달음은
진정한 이해와 공감이 결여된 사랑은 자칫 더 큰 비극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하며
사랑하는 이들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려는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합니다.
이 모든 질문과 성찰은 결국
슬픔으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우리를 살아있게 하는
'기쁜 말'을 찾아가는 여정의 일부일 겁니다.
삶은 고통과 희망, 절망과 기쁨이 뒤섞인 복잡한 태피스트리입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기쁜 말'을 찾아내고, 그 말을 서로 나누며 함께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정혜윤 PD는 말미에 '당신이 멈추지 않기 위해 필요로 했던 이야기도 들려달라. 두꺼운 고독을 뚫고 나오게 했던 존재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달라. 당신의 고유한 기쁨에 대해서도 말해달라. 나는 살아 있는 자의 귀로 듣겠다'라고 말하며, 우리 각자의 삶 속에 숨겨진 '기쁜 말'을 발견하고 세상과 공유하는 용기를 북돋아 줍니다.
부디 이 글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잔잔한 울림으로
삶의 소중한 언어를 찾아가는 여정에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