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소비일기
슬플 땐 빨래를 한다는 이적의 노래 가사처럼 괜스레 빨래가 하고 싶어지는 날. 평소 쓰던 ECOVER세제가 떨어져서 이번엔 귀여운 곰돌이가 그려진 ecostore세제로 바꾸었다. 지구를 생각하는 환경지킴이까지는 아니지만 몇 해 전 유명 브랜드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 이후로 물건을 더 신중히 들이게 되었다. 빨래가 되는 동안 전자책으로 좋아하는 뮤지션 중 한 명인 오지은 님의 익숙한 새벽 세시라는 책을 읽었다. 같은 제목의 노래를 들었을 때도 그랬지만 책 역시 내 마음을 대신 읽는 기분이었다. 책 속에서 오지은 님은 이렇게 말했다.
'풍선은 천진난만하게 하늘 높이 올라갔다. 풍선의 유일한 임무이기에. 모두들 가능한 한 높이 올라가라고 말했다. 먼 곳을 바라보라고도 했다.
하지만 풍선은 언젠가 바람이 빠진다. 고도는 점차 낮아진다.
하지만 그때가 언제인지, 어떻게 하면 좋을지, 결국 어디에 도달하게 되는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
잠시 지나가는 우울증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증세는 심각해졌다. 음악을 들을 수 없게 되었다. 그다음은 영화, 그다음은 책, 그다음은 사람을 만날 수 없게 되었다. 나쁜 생각은 더 나쁜 생각을 불러왔고, 그 찌질한 기운에 좋은 생각들은 짐을 싸서 나가버리고 돌아오지 않았다.
- <익숙한 새벽 세시>
삐삐삐 - 세탁이 완료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탈수된 세탁물을 꺼내 탁탁 털어 창가에 걸어두었다. 하늘은 파랗고, 봄바람에 셔츠가 펄럭이고, 방 안에는 기분 좋은 섬유 유연제 향기가 가끔 들어온다. 무인양품에서 산 타월들과 남편의 셔츠들이 나란히 걸려 있는 걸 가만히 보고 있으면 이번 주도 참 열심히 살았구나 싶다. 슬플 때마다 빨래를 한다면 아마 우리 집 세탁물은 남아나지 않겠지만 마음이 어지러운 날에 흩날리는 빨래를 보고 있으면 확실히 마음이 편해진다.
빨래가 마르는 동안 읽다 만 책을 마저 읽다가 저자의 말처럼 어쩌면 쓸모없을지도 모르지만 남기고 싶은 기록을 한 글자 한 글자 적어본다. 두서없이 써 내려간 글자들. 어느새 노트 한가득 빼곡히도 적었다. 나도 오지은 님처럼 나와 비슷한 사람들에게 가만히 위로를 건네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을 글로 잘 쓰고 싶고, 스스로를 돌보며 천천히 나만의 리듬을 찾아가고 싶다고. 오랜만에 그녀의 노래를 들으며 생각했다. 어느새 뽀송뽀송하게 마른빨래를 차곡차곡 개다 보면 몽글몽글 했던 마음도 한결 정돈되는 느낌이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는 순간들이 있다. 그런 장면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