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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러스가 말하는 행복

북한산 둘레길18, 19, 20, 우이령길 (2020년 9월)

by Claireyoonlee

이번 여름에는 태풍이 유난히 자주 발생한다. 해수면 온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라 했다. 아무리 걷기를 좋아해도 태풍 속을 걷기는 어렵다. 하지만 태풍이 지나간 후 하늘은 더욱 푸르고 금방 씻은 아이처럼 맑은 햇살이 가득하면 뛰쳐나가지 않을 수 없다.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후 자연의 특별한 은혜를 누릴 수 있는 날, 북한산 둘레길 18, 19, 20 그리고 우이령길을 걸었다. 우리가 어릴 적 살았던 서울의 모습을 아직 간직하고 있는 골목길에 집들이 촘촘하고, 산의 오르막과 내리막이 제법 있다. 둘레길이라 ≪내 맘대로 백산≫에 포함해도 될까 고민했는데 산으로 들어가는 여정이라 넣기로 했다. 어차피 ‘내 맘대로’이니.


도봉산역에서 시작하는 도봉옛길(18길)은 한숨만 고르면 끝난다. 그리고 이어지는 19길, 방학길로 들어서는 길을 놓쳤다. 아니 중랑천의 물소리와 맑음에 홀렸나 보다. 아무리 햇살이 강하게 꽂혀도 9월의 해는 견딜 만했고, 밑이 훤하게 보이는 물속에 버들치가 흐름을 거슬러 살랑살랑 헤엄치는 모습이 신기해 길을 벗어난 줄도 몰랐다. 중랑천은 하수구 냄새가 나는 오염된 하천이었는데 수질 개발에 성공해서 이제는 여느 시골 마을의 개울처럼 맑고 향기롭다. 왜가리가 한 마리가 물고기를 노리고 앉았다가 인기척에 푸드덕 소리를 내며 요란하게 날아올랐다. 물놀이하는 아이들도, 애완견을 데리고 나온 어른들도 모처럼 태양이 주는 선물을 누리며 즐거워했다.

산에서 멀어졌음을 알고 우리는 다시 산 쪽으로 들어가 19길로 들어섰다. 아침 늦게까지 피어있는 진보라 색 나팔꽃이나 결코 못 생기지 않은 호박꽃이 배시시 웃으며 길을 찾아온 우리를 반겼다. 방학길은 한 시간이 좀 넘게 걸린다. 사방에서 빗물이 흘러 길이 흠뻑 젖어 질척댔지만, 물로, 햇볕으로 산은 생명력이 팽팽하게 차올라 우리도 그 기운을 얻었다.

감각적 쾌락을 추구했던 쾌락주의 철학자 에피쿠러스는 사치품이나 호화로운 음식보다 우정, 자유, 사색, 음식, 오두막, 옷을 '행복을 위한 자연스럽고 필수적인 것'이라 보았다. 그러나 ‘자연’스럽지 않고 불필요한 값비싼 물건에 흔들리는 이유는 우리 자신의 책임보다는 주위 사람들의 쓸데없는 의견들 때문이라고 했다.

알랭 드 보똥은 에피쿠러스가 상업적 활동으로 인한 불필요한 소비가 인간을 불안하게 하므로 성숙한 자기의식과 소박함에 대한 존중이 퍼지기를 바랐던 철학자라고 하면서 고대 로마의 시구 하나를 인용했다.

“커다란 나무의 가지들 아래로 졸졸 흐르는 시냇가의 부드러운 풀밭에 사람들이 무리 지어 드러누워, 별다른 돈을 들이지 않고도 자기 몸을 상쾌하게 가꿀 때면 본성은 결코 이런 호사스러움을 놓치지 않는다. 날씨까지 그들을 향해 미소를 짓고, 계절이 푸른 초원을 꽃으로 점점이 장식할 때라면 금상첨화 아니겠는가.”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알랭 드 보똥≫

'에피쿠리안 라이프'는 바로 우리가 등산하고 숲속을 걸을 때마다 누리는 삶이다. 5백 년이 넘게 살아있는 나무, 귀한 색을 숨기고 조용히 피어있는 이름 모를 꽃, 물에 씻겨 반짝이는 바위,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과 가볍게 떠 있는 구름. 고대 로마인처럼 우리도 자연을 즐기며 에피쿠러스적인 소박한 행복을 느꼈다.

20길, 짤막한 왕실묘역길을 내려오면 소박하고. 기품있는 정의 공주 묘소가 있다. 왕이나 왕비를 모셔놓은 왕릉은 서울 시내에도 있지만, 따로 조성된 공주의 묘는 드물다.

정의 공주는 세종의 둘째 딸로 영특하여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았고, 남편과 금슬도 좋았으며 노후에는 동생인 세조의 대접을 받았다. 한글을 창제할 때 세종 대왕에게 적극적인 도움을 주었고, 세종 사후에 천대받았던 '정음'을 전파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꺼지지 않은 촛불처럼 꼿꼿하게 귀족의 삶을 살아온 한 여인의 향기가 초록빛 잔디가 빈틈없이 깔린 묘소에서 피어 나왔다. 우리는 묘소 앞에 쓰여 있는 이분의 이야기를 꼼꼼히 읽었다. 그리고 그녀가 얼마나 학문에 조예가 깊었을까, 얼마나 호사를 누렸을까 하고 말하면서 공주의 우아한 일생을 상상해보았다. 하지만 오빠 문종, 동생 세조의 치세 속에서 누이로서 얼마나 가슴앓이를 했을까. 게다가 공주는 외로운 법이다.

20길을 지나고 나서도 우이령길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한참 걸어야 한다. 오래되어 보이는 메밀국수 집에서 점심을 먹고, 윤보영 시인의 간지러운 시가 전시되어있는 '백란'카페에서 차를 마셨다. 우리는 폭포같이 우렁찬 소리를 내는 계곡 옆 야외 테이블에 앉아 긴 여정의 반을 거뜬히 소화했음을 자축했다. 함께 걸을 수 있는 친구들이 있어 감사하는 마음이 풍성한 계곡물만큼 차올랐다.

우이령길은 비교적 평평한 길인데도 한참 걷고 난 후라 조금 숨이 찼다. 예약제(2024년 3월 이후 평일에는 예약없이 갈 수 있다)라 차도 지나갈 수 있는 널찍한 산길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전쟁 때는 무기를 나르는 교통로였고, 또 한때는 무장 공비가 숨어 지나던 길이었으나 이제는 유유자적한 북한산 길중 하나가 된 길. 도시가 가까워도 도시의 때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이 쾌적한 길이 계속 평화롭기를 바랐다. 중간쯤 오자 거인이 돌을 살짝 올려놓고 떠난 것처럼 사이좋게 늘어서 있는 다섯 개의 봉우리가 선명한 파란 하늘을 등지고 떠올랐다. 북한산 등반할 때 보았던 오봉이었다. 남사스럽게 생긴 여성봉과 묘한 합을 이루는 다섯 개의 거대한 바위들이 우이령길에서는 신비하고 신성해 보인다. 화룡점정이라고 할까? 오봉은 긴 둘레길 여정을 마무리하는 ‘점’이 되었다.


태풍은 마른 계곡을 채우고 진한 초록 잎에 싱그러움을 더해 주었다. 그리고 거친 산을 순하게 만든 길들은 편안했다. 자연과 소박한 식사로 고대 쾌락주의 철학자가 말하는 ‘호사스러움’을 누렸지만, 거의 20km 되는 여정을 유쾌하게 함께 걸을 수 있는 친구들이 가장 큰 축복이었다.

“한 인간이 일생을 행복하게 살기 위해 지혜가 제공하는 것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우정이다”-에피쿠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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