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 도전 : 1일 1글쓰기 - 프로젝트 '좋아해'
크리스마스는 그 단어를 듣는 것만으로도 이미 행복이 차오르게 한다. 크리스마스에 특별한 추억이 있냐고? 아니다. 우리 가족에게 크리스마스는 연말의 어느 날 중에 하나였고, 지금도 그렇다. 그렇다면 예수를 숭배하느냐고? 역시 아니다. 나는 절실할 때 법화경을 듣고 나무 관세음보살을 읊조리는 모태 불교 신자다. 나는 아마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모든 게 반짝이고, 성스럽고, 웅장한 것들의 집약. 소풍 당일보다 전날이 더 설레듯, 나도 크리스마스를 손꼽아 기다리는 날들이 좋다.
그래서 매년 나의 크리스마스는 10월에 시작된다. 모두가 할로윈을 준비하는 때에 나는 크리스마스 소품을 하나씩 꺼내고, 집안 여기저기에 따뜻한 기운을 불어 들인다. 투명한 유리 화병에 작은 전구를 넣어 빛나게 하고, 며칠 전에는 크리스마스 갈란드를 꺼내 거실에 걸었다. 해가 짧아진 게 아쉬운 요즘이지만, 빨리 전구를 켤 수 있어 즐겁기도 하다. 아직 전기장판을 개시도 하기 전인데 트리를 꺼내는 건 오버인가 스스로 다독이며 꾹 참고 있다.
트리는 2년 전 고속터미널 상가에서 180cm짜리로 사서, 고생스럽게 버스에 싣고 왔다. 펼치면 펼칠수록 23평 아파트의 거실이 점령당하는 모습에 당황했지만 신이 났다. 함께 사온 전구가 불량이었는데 반드시 완성해야겠다 싶어 다시 버스를 타고 가서 교환해왔다. 그날 버스만 6시간을 탔고, 거실을 가득 채운 트리를 보며 온종일 먹지 않은 것도 잊었다. 당시 유행이 시작된 지네 전구는 쌀알만 한 전구들이 지네 다리처럼 양옆으로 수없이 달린 전구인데, 트리에 감아 불을 켜면 시골 밤하늘의 별처럼 빼곡했다.
- 와아, 이거 진짜 미쳤다.
나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오너먼트는 안 보일 듯 보이는 유리 고드름 오너먼트로 몇 개만 달았다. 8가지의 전구 무브 중에 내가 좋아하는 건 천천히 켜졌다 꺼지는 버전. 거실의 불을 완벽하게 끄고, 깜박이는 전구를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반딧불이 수백 마리가 트리에 매달려 엉덩이 불을 깜박이는 것 같다. 토닥토닥, 마음의 위로가 됐다.
그 해는 코로나가 시작된 첫 해로 7개월 가까이 재택근무 중이었고, 방송도 편성이 안 되는 날들이 몇 달씩 이어져 페이가 제대로 나올지 매달 맘 졸여야 하는 시기였다(프리랜서라 방송 편성이 안 되면 페이가 지급되지 않는다). 우울했고 의지할 데가 없었으며, 머리만 대면 잠들던 내가 난생처음으로 불면증에 시달리던 날들이었다. 이 우울감을 어떻게 떨쳐버려야 할지 모르겠을 때, 인스타그램으로 <나 홀로 집에>에서 볼 법한 멋진 트리를 발견했다. 생소한 오너먼트가 가득해 더 이상 화려할 수 없는 완벽 그 자체! 다이렉트 메시지를 보내 트리 구매처를 물었고, 다음 날 바로 고속터미널 상가에서 사 왔다. 그때도 10월 말이었다. 그렇게 나의 10월의 크리스마스는 올해로 3년 째를 맞이했다.
나에게 10월은 매일 창밖의 나무가 얼마나 물들었나 확인하는 달이고, 오후의 햇살을 만끽하는 달이며, 가습기와 난로를 꺼내는 달이자 크리스마스가 시작되는 달이다. 개인적으로 2020년보다 올해는 더 괴로운 날들이 많았다. 비록 전기장판을 꺼내기 전이지만, 트리를 꺼내야겠다. 송송 구멍이 뚫린 마음에 반딧불이처럼 작은 전구를 콕콕 박아 넣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