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처럼
더 무거워지고 비장해졌다.
경험과 연륜이 쌓여서? 아니다.
나만 무게 잡고 즐기지 못함을 느꼈다. 내가 어느새 이렇게 무거워졌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내게는 웃음이 사라지고 엄숙이 자리 잡았다. 가벼움이 사라지고 무거움이 자리 잡았다. 박장대소가 사라지고 진지함이 자리 잡았다. 희로애락의 표정에도 인색하다. 심지어 이 글도 진지하다.
신수정 <일의 격> p.223
누구나 다 양면성을 가지지고 있다. 내게도 진중함과 천진난만함이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박장대소가 줄었고 표정도 무표정이 디폴트다. 진지해졌다.
언제부터였을까, 왜 변했을까?
성격이 꽤나 차분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다운되어 있었다.
조금은 다른 맥락이지만 나는 감정 때문이었다.
기분 부전증 혹은 기분부전장애 — 우울증은 아니지만 기분이 다운된 상태가 거의 매일, 장기간 지속되는 증상(경미한 우울증)
우연히 금쪽 상담소 <김완선> 님 편에서 오은영 박사님이 언급한 단어이다. 이 말을 듣는 순간 2020년 한국에 돌아온 내가 4년째 경험하고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 명명되는 듯했다. 우울이라는 단어가 내 삶에 존재하리라 생각지도 못했는데 말이다.
늘 무기력하고 거의 매일 무감정한(보다 우울한) 상태였다. 자존감도 낮아지고 늘 피곤을 달고 살았다. 늦은 밤 매운 음식이 늘 먹고 싶었고, 고립되어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과거형으로 쓸 수 있는 이유는,
여전히 나는 기분 부전증을 겪고 있지만 최근 그림 그리기와 글쓰기, 규칙적인 기상시간을 통해서 긍정적인 기운을 얻기 시작했기 때문. 내가 단단해지고 강해지려 노력 중이다.
나와의 시간을 더 찐하게 보냄을 통해서.
류시화 작가님의 책 속 구절 또한 하나 머릿속에 떠오른다.
깃털의 가벼움이 아니라 새처럼 가벼울 수 있어야 한다. (중략) 깃털처럼 중심도 방향도 없이 이리저리 부유하는 것이 아니라 새처럼 가볍게 날 수 있어야 한다.
자유를 품은 가슴의 가벼움이다.
류시화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p.81
가볍지만 오하려 가벼움으로 인해 이리저리 내 가치관이 휙휙 바뀌거나 흩날리는 것이 아니다. 내가 주도권을 쥐고 원하는 방향으로 끌어갈 수 있는 주체성이다. 진중하다 하여 늘 무거울 필요도, 깊어졌다 하여 늘 고요할 필요도 없다. 가볍다 하여 깊이가 없는 것도 아니다.
진지함과 열심에서 한 발짝 물러서서 힘을 빼보자.
자율과 즐거움을 통해 균형을 맞춰보자.
겉으로 보이지 않지만
무수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해내고 있는 모두를 응원하며!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진지하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