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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케 Sep 07. 2022

근데, 네겐 왠지 보일 용기가 나.

[내가 말하고 있잖아]를 읽고


‘머릿 속 나쁜 것들이 많아

목구멍 밑엔 아픈 것들이 많아

난 어딘가 고장난 엉망진창

근데 네겐 왠지 보일 용기가 나’

- [사랑은…]의 가사 중, 마미손-


얼마 전 듣고 좋아하게 된 노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얼핏 보면 연애 감정을 말하는 노래다. 근데 이상하게도 이 가사가 (연애엔 더 이상 흥미가 없는) 유부녀의 마음을 찌르르 울렸다. 왤까. 

나는 내가 만성적인 ‘결핍’에 시달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객관적으로 뭔가가 부족한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저 내 마음이 목말랐다. 지식, 애정, 대화, 명예, 인기.. 그 대상이 무엇인지는 내 마음 상태와 인생 시기에 따라 달라졌을 뿐이었다. 

‘하늘 끝까지 헹가래질하다가 마지막에 받아 주지 않을 거잖아. 웃게 만든 다음 울게 만들 거잖아. 줬다가 뺏을 거잖아. 내일이면 모른 척할 거잖아. 이해하는 척 하면서 정작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잖아. 말뿐이잖아. 결국 다 그렇잖아. 그러니까 당하면 안 된다. 그땐 진짜 끝나는거야. 끝.’

-‘내가 말하고 있잖아’ 중-

주인공이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듯 되뇌는 문장들이 유독 찌르듯 아팠던 건, 나도 같은 마음을 먹은 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에 대해 막연히 기대하고 어쩌면 겁 없이 뛰어들었다가 얻은 상처. 그리고 그 상처가 너무 아파 더 이상은 절대로 그 무엇에게도 뛰어들고 싶지 않은 마음. 그 무언가는 남자친구가 되었다가, 취업이 되기도 하고, 친구와의 우정이 되기도 했다. 

다행히도 언제부턴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정확한 계기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이제는 안다. 내가 무언가에 부딪혀 깨져도 끝이 아니다. 정호승 시인의 시 구절을 빌려 말하면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다.’ 연애가 깨지면 행복했던 추억이 남는다. 취업하고 싶었던 간절한 마음이 깨져도 면접 경험과 열심히 쓴 포트폴리오가 남는다. 

그리고 또 하나. 내 모습이 스스로 엉망진창 같아도, 이런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무언가들이 내 옆에 있다는 것이다. 꼭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다. 따뜻한 날, 스스로 몸을 일으켜 나간 산책이, 감정을 적어내는 일기가, 주인과 산책하는 동네 강아지의 모습이… 나를 위로해 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사랑은]의 가사와 [내가 말하고 있잖아]가 나를 울린 이유는 결국 이것이었다. 결핍에 시달리며 외로웠던 내가 생각났고, 또 그 시절 나를 위로해줬던 따스한 것들이 기억났다. 그래서 참 애틋하고, 좋았다.

사랑이란 건 남녀간에만 하는 줄 알았던 시절이 있었다. 특히 ‘겨울연가’나 ‘천국의 계단’ 같은 드라마에 나오는 극적인 관계. 그것만 진짜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보다 더 많이 큰 지금은 주저없이 말한다. 난 세상 모든 강아지를, 벚꽃 필 때 쯤의 날씨를, 남편과의 농담을, 영화 라라랜드를, 한번 보고 말 친절한 사람을, 글쓰기를… 또 그 외에 사소한 것들을 아주 많이 사랑한다고.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고맙게도 나를 꽤 다정한 어른으로 키워줬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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