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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케 Sep 07. 2022

내가 유바비를 죽이고 싶었던 이유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고

유바비가 누군지 아시나요. 네이버 웹툰 '유미의 세포들'의 등장인물 중 하나입니다. 이 웹툰의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유미'라는 여자 주인공의 인생+연애 이야기인데요. 바비는 유미의 구남친 중 한명이에요. 잘생기고, 다정하고, 센스있고 다 갖춘 왕자님인 듯 했지요. 

그러다 결정적인 순간에 다른 여자(다은)에게 흔들려요. 그걸 안 유미는 먼저 이별을 고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환승은 아니지만... 유미가 찼는데 차인 느낌. 해당 회차 댓글엔 비슷한 내용의 댓글이 도배됐어요. 당연히 저도 동참했어요. "유바비 진짜 죽여버려..." 

제가 바비를 죽이고 싶었던 이유는, 웹툰이 너무 공감됐던 나머지 유미가 꼭 제 진짜 친구같고, 또 제 모습 같았기 때문이에요. 내가 다 배신당한 느낌이랄까요. 다른 이유도 아니고 여자 문제라뇨. 게다가 본인보다 한참은 어린 나이인 다은이랑. 말이 돼? 이런 놈이였어?라며 혼자 속으로 열변을 토했죠. (저 진짜 과몰입 심하죠....드라마나 웹툰에 에너지 많이 쓰는 편..)

하지만 한참 뒤 현 여친과 다시 등장한 바비의 모습을 보고, 전 그를 용서했습니다. 구여친인 유미를 스쳐지나가며 봤지만 더 이상 유미에게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현 여자친구인 다은이에게 프로포즈를 하더라고요. 유미에게 다정한 사람이었듯, 현 여친인 다은이에게도 참 다정한 한결같은 바비. 이 정도면 관계에 솔직하고 담백하잖아? 라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그냥 제가 유미 인생의 남자주인공이 바비로 정해진 양, 설레발을 떨었을 뿐이었던 거에요. 마치 연애할 때 지금 남자친구랑 당연히 결혼할 거라고 생각하듯. 하지만 유미와 바비는 인생에서 스쳐가는 인연이었고, 보는 제가 서운할 만큼 각자의 선택을 담담히 존중해 줬어요. 그리고 각자의 해피엔딩에 도달했지요. 그래서 이 이야기가 더 좋았습니다. 현실적이잖아요. 

'유미의 세포들'과 비슷한 이유로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참 좋아합니다. 마치 제 얘기 같았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부분이. 

[너는 나를 사랑해야 한다. 너한테 삐치거나 질투심을 일으켜서 나를 사랑하도록 만들겠다. ... 내 강요 때문에 네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면, 나는 이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다. 이 사랑은 자발적으로 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낭만적 테러리즘은 자신의 요구를 해소하는 과정에서 그 요구를 부정해버린다. 테러리스트는 결국 불편한 현실, 사랑의 죽음은 막을 수 없다는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중

이별 직전의 발버둥을 '낭만적 테러리즘'으로 명명한 부분은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도 지난 날 누군가에게 테러리스트였던 적이 있었습니다. 눈 앞에 보이는 '사랑의 죽음'으로부터 회피하고 싶었기 때문이었겠지요. 어떻게 생각하면 부끄러운 과거에요. 막 남자한테 인기 많은 척 해서 질투심 일으키려고 하고. (진짜 진상이었죠... 구남친아 고생했다..) 

하지만 먼 나라 프랑스에 사는 (아주아주 유명한 작가인) 스물 몇 살 청년도 이별의 끝에서 같은 감정을 느꼈고, 이 이야기에 세계의 많은 사람이 공감했다는 데에서 큰 위안을 얻었습니다. 연애사업이 엉망일 때,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멍청한 사람이 나인것 같은 순간.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굉장히 위로되곤 하잖아요. 

[내가 클로이를 바라보는 방식은 유명한 뮐러-리어의 착시와 비교될 수 있다. 이 착시에서는 길이가 똑같은 두 선이 끝에 다른 화살표가 붙었다는 것만으로 길이가 다르게 보인다. 내가 클로이를 바라보는 애정 어린 눈길은 밖으로 열린 화살표와 같은 역할을 했다.] 

-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중

사랑의 콩깍지를 '뮐러-리어의 착시'에 비유한 부분도 참 좋았어요. tmi 주의하고 시작하자면, 제가 사랑하는 사람은 앞니가 살짝 어긋났거든요. 다른 치아들은 모두 가지런한데, 마치 앞니 두개가 다리 꼰 것처럼 아주 살짝만. 본인은 그게 컴플렉스라서 사진에 앞니 나오는 걸 싫어해요. 

근데 저는 그게 너무 귀여워요. 얜 앞니도 어쩜 이렇게 귀엽게 생겼나 싶어요. 가지런하게 살지만 사실 제 앞에선 엉뚱하고 재치있는 그 사람의 모습을 투영한 것 같아요. (비유 오바인 것 미리 인정합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인 엄마한테 조심스레 솔직히 너무 귀엽지 않냐고 얘기했더니, 너 참 주접도 가지가지 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이게 바로 콩깍지이자 뮐러-리어의 착시 현상이라는 것을 명백히 증명해 주신 거죠.

되게 꼴값 같으면서도 엄청 흔한 얘기잖아요. 콩깍지. 삐지기. 이별. 첫 눈에 반하기. 그런 거. 사랑 이야기는 다 비슷하죠. 하지만 또 모두 다르고 새로워요. 사랑은 어떤 의미로 개개인의 종교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사회에서 만든 복잡한 덧붙임이 없는, 순수한 종교 그 자체. 사랑만이 우릴 이상하게 만들잖아요. 계산 없이 이성 없이 뭔가를 하게 하고요. 그래서 그 이상한 사랑만이 세상을 굴러가게 하는게 아닐까요? 그럼, 당신의 이상한 사랑은 무엇일지 여쭈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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