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가을부터 겨울, 지하철에서 끄적인 글들
*"도리"는 당시 다니던 회사(마이크임팩트)에서 서로 닉네임을 부르던 문화라 내가 정한 내 이름이다.
내가 입사하던 날, 전 직원이 CGV피카디리로 출근해서 <도리를 찾아서>라는 영화를 봤다.
좌충우돌하지만, 위기를 극복하는 데 중요한 존재인 물고기 도리 캐릭터가 참 좋아서...
가을부터 출퇴근 길 지하철 안에서 도리 단상을 썼다.
<도리 단상 1>
세상에서 성공했다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어떤 운이 작용한 거다.
그렇다면 아직 그 운이 허락되지 않은 사람은 달리면 되는 걸까?
그러다 보면 자기 앞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지만
결승선에 가장 먼저 도착할 수도...^^
<도리 단상 2>
누군가의 인생을 듣는다는 건 내가 살아보지 못한 그 사람 전체가
내게 메시지로 오는 것이다.
내 오랜 고통의 진통제는 동시대 사람의 인생 만한 것이 없다.
완치되지 않는 아픔을 겪더라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된다면 유의미하단 걸
조금씩 알아가는 게 삶이다.
<도리 단상 3>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는 책 제목처럼
늘 흔들흔들하며 살아왔다.
막을 수 있는 사고의 대책까지 흔들흔들이거나
아예 무대책 재난 국가의 땅에서는
어른 나라가 되긴 묘연해 보인다.
<도리 단상 4>
젊은 친구들 속 세 가지 어른
묻기도 전에 가르치려는 사람 ㅡ 잘난 꼰대
물어보면 어설프게나마 알려주려는 사람 ㅡ 다정 아재
그저 옆에 있어만 주어도 힘이 되는 사람 ㅡ 공감 선배
<도리 단상 5>
미세먼지 없는 맑은 가을 날씨,
가시거리가 무려 20~30킬로미터나 뻗어 있다고 한다.
살아가는 일들로 먼지 가득 쌓인 마음,
심리적 시야는 20~30센티조차도 뿌옇기만 하다.
일교차 큰 만큼 마음의 온도도 롤러코스터다.
그래도 투정 부릴 시간도 없이 앞만 보고 가야 하는 길,
어쩌면 극복해야 한다는 이성적인 확언의 근거는
자존심 때문이 아닐까.
<도리 단상 6>
아파 보아야
건강의 고마움을 알듯이
죄의 위력을 절감하지 못하면
구원의 은혜를 알지 못한다.
<도리 단상 7>
내가 경험해 보지 않은 극심한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
이래라저래라, 이렇게 하는 게 좋다, 큰 믿음이 생길 것이다 등을
말하는 것만큼 폭력이 없다.
그저 얼마나 힘들면 그럴까, 하며 마음 아파해 주고
말보다 침묵하며 기도해 주는 게 적절하다.
뭔가 말하고 싶다면 비슷한 고통을 겪은 뒤에
아주 조심스럽게 헤아리며 말하는 게 맞다
<도리 단상 8>
내 소유들을 내 힘으로 얻은 게 아니라고 인정할 때
권력 남용을 하지 않고 겸손을 잃지 않고 감사할 수 있다.
반대로
내 소유들을 내 힘으로 얻었다고 자부할 때
가까운 사람을 업신여기고 교만하며 가짜 행복에 심취한다.
<도리 단상 9>
"힘내세요"보다
"얼마나 힘드시겠어요.
제가 힘이 되어드리고 싶어요"가 위로가 된다.
죽을힘을 다하면서 벼랑 끝에 있는 사람은
남은 힘이 없어서 신음하고 있다.
모르는 사람이 "힘내세요" 하면
내가 지금 얼마나 많은 힘을 쏟아 냈는지
더 힘쓸 힘이 없는 걸 도대체 조금이라도 아는지
무심한 외면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도리 단상 10>
윗물이 심하게 혼탁한 곳에서는
아랫물이라도 맑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
맑은 아랫물로 살려는 의지와 결단만이
모두가 썩지 않는 길이다.
- 서교동 화재 의인 고 안치범 님과
KTX 승객 300명 안전과 자기 생명을 바꾼
선로의 의인 두 분을 추모합니다.
<도리 단상 11>
가을 하늘 에메랄드빛 햇살을 머금은 아침 한강을 지나는 순간,
지하철에서 스마트폰 향해 고개 숙이고 있는 사람은
태양과 촛불을 구분할 수 없고
바다와 호수를 구분할 수 없는 인생을 사는 셈이다.
<도리 단상 12>
걱정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다.
가혹한 고통을 견디는 사람도 있고
작은 고통에도 무너지는 사람이 있다.
누구에겐 무시무시한 고통도 감당할 만한 것일 수 있고,
누구에겐 스쳐 지나가도 될 만한 고통에 뼛속까지 아플 수 있다.
타인의 걱정을 사소하게 여기거나
대단한 멘탈로 추켜세우는 것이 모두 무의미하다.
내 고통으로 들어올 때 걱정은 내 포용력과
그릇의 크기가 얼마쯤인지 알려 준다.
그래서 걱정하는 내게 주는 위로의 선물로
괜찮다는 말과 누구라도 그렇다는 인정이 가장 좋다.
<도리 단상 13>
피로 때문에 쌀쌀맞게 대하는 가족
생존 때문에 친절하게 대하는 사회
사랑하면서 쉽게 대하는 집안
살아가려고 조심히 대하는 집 밖
쌀쌀해진 저녁에 집에 들어가면서
친절하게 사랑하지 못한 가족이 떠올라
내 애정의 온도를 집 밖보다 올리는 예열로
회개기도를 한다.
<도리 단상 14>
추석 때 회사에서 받은 백화점 상품권에
조금 보태어 아들 신발을 샀다.
퇴근길 아빠의 가슴이 뿌듯해진다.
행복의 핵심은 거액의 연봉이 아니라
관계의 기쁨에서 오는 누림이다.
그래서 지금 아빠로서 나는 세상 누구보다 행복하다.
<도리 단상 15>
간증 중에 일반적인 것은
병원에서 희망이 없다고 한 병이었는데
기도하고 믿으니 몸이 나았다는 간증이다.
더 깊은 간증은
병이 낫지 않고 악화되고 있어도
상황에 상관없이 온전히 주 되심을 인정하며
마음이 변했다는 간증이다.
가장 울림이 큰 간증은
삶과 죽음의 아픔에 상관없이
새 하늘 새 땅을 그리며 천국의 기쁨을 누리고
영혼이 산다는 간증이다.
<도리 단상 16>
내가 지을 가능성이 조금도 없는 죄에는
엄격한 적대감을 가지고,
내가 지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죄에는
자애로운 포용력을 가진다.
인간은 마음의 추악함을 심판할 수 없다.
<도리 단상 17>
학부모에게 당신 자녀가 어느 과목 성적이 부족한지 알려주는 선생님보다
성품의 좋은 점이 무엇인지 칭찬하며 알려주는 선생님이
초등학교에 계셨으면 좋겠다.
녹색어머니 봉사하러 나와 있는 아내에게 아이 연산능력 많이 떨어지니
집에서 신경 쓰시라는 말을 대뜸 해주고 가시다니!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인 아이의 연산 능력이 인생을 좌우하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좋은 선생님 많이 계시지만 성적과 비교는 빼기해 주시길.
그게 진짜 인생 연산이다.
<도리 단상 18>
퇴근하고 종각역에서 부천역으로
어머니 간호해 드리러 지하철 타고 가는 중에
아주 오랜만에 신혼집 동네인 오류동역을 지났다.
소꿉놀이하듯 시작한 결혼생활의 처음 추억들이 스치면서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일렁였다.
부부는 새롭게 사랑 고백을 하며
사랑을 더해가는 것이라기보다
남편이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을 잃지 않는 것으로
사랑이 더해지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도리 단상 19>
동방박사 세 명이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한 것이 아니고
동방박사들이 세 가지 선물로 축하한 것이다.
몇 명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베드로가 십자가를 지시는 예수를 배반할 때
닭이 세 번 운 게 아니라
닭 울기 전에 세 번 부인한 것이다.
잘못 알고 있는 것은 배워야 하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정확히 아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성경에 정치에 관심 갖지 말라 했다고 고집하며
사회 참여적 글을 단박에 무시하는 꽉 막힌 분의 글을 읽고
성경은 제대로 알고 있는지 묻고 싶었다.
살아갈수록 모르는 게 너무 많아 조금도 안다는 말 꺼내지 못하겠다.
<도리 단상 20>
내가 다루기 편하고 내 성향과 잘 맞는 사람과만 일하려 한다면
업무 능력은 평생 제자리다.
나를 칭찬하고 인정만 해주는 아내와 산다면
모난 남자 인격은 평생 깎이지 않는다.
불편한 사람들과 마주하는 환경에
답답한 문제투성이를 경험해야만 철이 든다.
내가 아직 철이 들지 않았다면
대충 안락한 시간만 보냈기 때문이다.
<도리 단상 21>
비가 촉촉이 내리는 밤, 퇴근길에 고대안암병원 장례식장에 조문을 다녀왔다.
오늘 아침 암투병을 마치고 천국으로 가신 아버님에 대한 슬픔에 잠긴 사모님께서
오랜 병간호를 이어가며 사는 내가 와주어 큰 위로가 된다고 말씀하셨다.
땅에 있는 무너질 장막집에 사는 우리 인생들, 그렇게 많이 아픈 사람들끼리의 위로가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에 사는 그림자를 보는 기쁨이란 생각이 든다.
<도리 단상 22>
내일 너무나 부담스러운 일을 홀로 감당해야 해도
오늘 담담하게 버틸 수 있는 힘이 믿음이고,
내일 너무나 어두운 사회 현실이 반복되지 않도록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도 믿음이다.
세상이 어두워도 잘 먹고 잘 사는 데만 관심 있으면
예수를 믿는 게 아니고 잘먹고사니즘을 믿는 것이다.
<도리 단상 23>
깔끔한 정장에 최신 핸드폰으로 다운로드한 드라마를 보는 승객이 옆에 앉았다.
그런데 그의 몸에 노숙자와 다름없는 악취가 나서 코가 급피곤해졌다.
몸을 긁어대며 드라마 보기에 열중하기보다
옷을 드라이하고 목욕을 제대로 하는 게 깔끔하지,
겉보기에 말쑥한 머리 손질과 정장만 차려입는다고 신사일 수 없다.
향기 없는 그리스도인을 넘어 모르는 남에게 악취를 풍기는
말쑥한 차림의 그리스도인이 넘쳐나는 시대에 나는
얼마나 심한 영적 노숙자인지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냄새 심한 옆사람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은 만큼
은연중에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고 있는 내 모습에 대해 심히 회개하게 된 아침.
몸과 옷에 더러움이 발견된다면 갈아입고 씻듯이 내 영혼도 정결하게 간수하며 사는지...
<도리 단상 24>
자신이 아버지면 아버지 명예가 떨어지는 글에 유감을 표한다.
그런데 그 글은 아버지를 비난한 글이 아니고
아버지에게 상처받으며 자란 딸이 사랑에 대해 쓴 글이었다.
자신이 우울증을 앓고 있으면 우울증을 이기는 사람을 격려하는 글에 유감을 표한다.
그 글은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을 폄하한 글이 아니고
견디는 사람을 대견하게 여기는 글이었다.
자신이 지쳐 있으면 게으르지 말자는 글에 유감을 표한다.
그 글은 게으른 자를 정죄한 글이 아니고 주님께 더욱 충성하자는 글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향한 글이 아닌데도
자기체면, 명예, 인격, 상처, 밥그릇에 연관시켜 오독한다.
읽고 싶은 대로 읽고, 듣고 싶은 대로 듣고,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한다.
소통을 잘하려면 본말전도를 하지 않는 국어 실력과
건강한 자존감과
기꺼이 손해 보는 너그러움이 필요하다.
<도리 단상 25>
월급 많지만 동의 안 되는 일에 시달리고
온갖 모욕과 굴욕을 참아야 하는 회사보다
월급 적어도 스스로 생각하며 일하고
인격적이고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회사가 좋은 일터다.
월급 많지만 임계점 이상의 업무 강도에
억압된 감정이 쌓여 잠꼬대로 욕이 튀어나오는 회사보다
월급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 업무로 인한 즐거움과 자족함이 쌓여
잠꼬대로 웃음이 나오는 회사가 좋은 일터다.
<도리 단상 26>
부모 자식 간의 진심, 스승 제자 간의 진심이 의심받는 세상에서
남을 돕고 공동체를 생각하며 이웃의 고통을 의식하며 살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예수는 영생을 묻는 부자 청년에게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하는 삶을 말씀하셨고
부자 청년은 근심하며 돌아갔다.
이 시대는 목회자를 비롯 선생들이 일하기 힘든 시대다.
정치가 약자를 무시하고 진심마저 무너트리니 뭘 말한다는 게 죄스럽고,
질문도 없이 자기 멋에 살아가는 부자 청년들에게 살기 좋은 땅이 되고 있다.
희망은, 질문하고 근심하되 행동하는 움직임에서 나올 것이다.
<도리 단상 27>
피할 수 없는 극한 고통을 오래 견디다 보면
다른 이의 오랜 고통에 대해 작은 말도 할 수가 없다.
누구의 고통은 크고 누구의 고통은 작고
누구는 무심했고 누구는 비인간적이었다는 말을
한다는 게 무의미하다.
내가 그의 고통을 모르고
그도 나의 고통을 모르니 그저 이해해 보려는
끄떡임이 적절하다.
<도리 단상 28>
직장을 옮긴 뒤에는 이전 직장에 대한 얘기는 안 하는 게 좋다.
결국 현재의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부정적인 평을 하게 마련이고 이는 대부분 주관적이다.
자신의 연약함이 견딜 만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며
고만고만한 직장들에서 자신이 일하게 된 현재 자리의 감사한 것에 집중하는 것이 능력이다.
<도리 단상 29>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직장의 강점이 합치되는 곳보다
자신의 연약함이 감당할 수 있는 직장의 약점을
헤아리는 것이 지속 가능한 일터를 찾는 길이다.
<도리 단상 30>
심야시간에 하는 <불타는 청춘>을 봤다.
나와 엇비슷한 나이의 싱글들이 나오는 불청이 재밌어 가끔 본다.
금주 방송분은 출연자들에게 집도 화장실도 없는 벌판에서
처음으로 텐트 치고 캠핑을 하도록 했다.
구본승만 밤낚시 즐기며 야영을 해본 정도여서 다들 얼굴이 흙빛이었다.
캠핑장까지 카누 타고 비포장도로 달리며 오느라 지친 얼굴이었고
텐트 치는 법을 아는 사람도 없다.
그런데 유일하게 김완선만 재밌겠다며 해맑은 얼굴로 웃는다.
거기서 인사이트를 얻었다.
모두가 절망하고 걱정할 때 한 명이 재밌겠다며 환하게 웃을 때
다들 해보자며 도전력, 인내력 급상승한다는 것을!
상황 파악 안 되고 뭘 몰라서 재밌겠다고 할지라도
그런 마음이면 실제로 좀 불편하더라도 재밌게 팀작업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다들 어렵고 힘들다고 할 때 "우와! 재밌겠는걸!" 하며 되받아칠 수 있는 멘탈을 갖자.
<도리 단상 31>
찬바람 불어 옷장 정리를 했다.
버릴 옷들을 분류하다 보니 추억이 가슴에 들어온다.
그 옷을 입고 일하고 아내와 데이트하고 아기를 안았던 기억들.
오래된 옷은 버려도 오래된 기억은 늘 입고 살아간다.
헌 옷은 있어도 헌 기억은 없다.
헌 것이 될수록 소중한 내 인생, 버릴 수 없는 소중한 시간들.
가을밤이 깊어가는데 잠이 오지 않네.
<도리 단상 32>
아직 치열한 삶의 현장을 경험해 보지 못한 청춘들에게 창업하라고 쉽게 말하지 말자.
그들이 안정적으로 일할 자리를 만들어 주는 게 우선이다.
자신도 해본 적 없는 창업을 대안으로 내모는 건 무책임한 조언이다.
더군다나 불안정한 사회에서 창업으로 성공할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실패해 본 선배는 쉽게 말하지 않는다.
실패하고 낙심한 청춘들 책임져 줄 것 아니라면 공감해 주고 지켜봐 주는 게 진심 어린 응원이다.
창업해서 성공했으면 자본권력에 팔지 말고 일자리 창출로
청춘들에게 안정적인 고용의 기회를 제공하는 마인드 좀 가졌으면 좋겠다.
자원 배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청년실업도 중년 파산도 해답이 없을 것이다.
<도리 단상 33>
덜 중요한 것들은 지키면서 본질적인 중요한 것은 쉽게 버리는
우매한 위선에 익숙해져 있다면,
내적인 의가 외적인 의식보다 중요하고
고백은 쉽지만 삶은 어렵다는 각성을 해야 한다.
<도리 단상 34>
가난한 중에 아름다운 것을 보면
나를 위로하는 온기까지 느껴져
더 아름답게 보인다.
부유한 중에 아름다운 것을 보면
나를 교만하게 하는 영혼의 발암에 무뎌져
곁에 있는 줄도 모를 것이다.
<도리 단상 35>
가을은 사랑하기 좋은 계절이라는 걸
엄마 간호하면서 느낀다.
화사한 햇살 뒤에 오는 이른 어둠으로
그렇게 화사하게 나를 돌봐주셨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늦은 밤 집에 돌아가는
땀투성이 가슴이 환해지고
길어진 어둠을 견디고 살아갈 힘이 생긴다.
<도리 단상 36>
오늘 행복한 결혼식에 참석한 후
지난 십 년의 결혼생활을 돌아보니
아내에게 넘 미안한 마음이 든다.
행복한 미소를 짓는 신부에서
야단칠 일 많은 두 아들 엄마가 된 아내에게
인생의 오후에는 행복한 시간을 선물하고 싶다.
일찍 찾아오는 가을 저녁처럼
깊은 성장도 있지만
아쉬움도 많은 결혼생활에 온기만 있지 않다.
그 가운데 더 이해하고 사는 것이 믿음의 가정이다.
<도리 단상 37>
나는 기도할 게 많은 직장이 좋다.
어려운 마음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직장이 좋다.
전략을 짜고 마음을 모아야 하는 곳에서 일하는 게 좋다.
기도가 불필요한 곳보다
안정됐지만 속마음은 소통하기 어려운 곳보다
전략이 없어도 쭉 가는 데 지장이 없는 곳보다...
<도리 단상 38>
세상에서 높아져 있을 때
겸손하자고 마음먹기보다
한없이 낮아져 갈 때
더 겸손하자고 마음먹는 게 어렵다.
내 삶에서 또 바닥을 본다. 그래서
더 겸손하자고 더 낮아지자고 다짐한다.
<도리 단상 39>
간만에 주말 출근
마감에 성공하면 푸근
편집자에 원고 기근
매출에 블랙홀 부근
가정에 아빠 결근
국가에 나라님 화근
국민에 고통 상근
어디든 조심할 측근
<도리 단상 40>
부드러운 이야기를 들으니
내 안의 거칠거칠한 면들이 부드러워진다.
끝없는 인내만이 요구되는 삶의 연속에서
부드러운 품에 안기고 싶었나 보다.
거친 상남자 마음에 부드러운 눈물이 흐른다.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지역에 있어야 행복한 게 아니고
부드러운 사람과의 관계에서 행복이 온다.
잠시였지만 부드러운 시간을 얻어서 행복했다.
- 조정민 이지선 콜라보 <답답답> 참석 후.
<도리 단상 41>
출근길에 새로 세워진 세련된 건물을 보았다.
사회복지관인 것을 오늘 알았다.
사회복지는 세련되지 않았는데
사회복지관은 세련된 사회이다.
대학 교육은 글로벌급이 아닌데
대학 건물은 글로벌급이다.
존엄사 문제는 선진국처럼 다루려 하면서
사회 약자의 존엄성을 위한 편견 탈피와
사회복지 제도는 후진국 수준을 면치 못한다.
<도리 단상 42>
퇴사 직원과 대화할 때 아쉬움이 쌓인다.
사람은 이별할 때 진심과 후회가 어우러지는 법.
곁에 계속 있는 사람에게 더 잘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어렵고,
앞으로 가까이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정을 듬뿍 표하면서 아쉬움을 남긴다.
진실한 관계로 지속 가능하게 산다는 건 이래서 참 어렵다.
- 퇴사 직원과 회식한 불금에
<도리 단상 43>
아픔을 많이 겪고
그 아픔을 티 내지 않고 사는 사람이
가장 깊이가 있는 사람이다.
그런 깊이 있는 사람의 품은
누구라도 따뜻하게 안을 수 있다.
<도리 단상 44>
모바일 앱 페북에 좋아요 눌러주신 분들을
쉽게 태깅해서 답글 달 수 있는 <언급> 버튼이 생겼다.
날마다 편의성 연구하고 업그레이드시켜 가는 페북 개발팀 보면 부끄러워진다.
나는 얼마나 개선해 가며 사는 존재일까,
페북보다 못하다.
언급하라, 소멸해 가는 나의 열심과 순수여.
<도리 단상 45>
우울감 권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어떻게 기뻐할 수 있을까?
사랑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사명이 있어야 사랑이 떨어질 때
뚜벅뚜벅 갈 수 있다.
내 사명이 무엇인지 떠올리며 견딘 하루.
<도리 단상 46>
사람은 권위를 갖는 존재가 아니라 위로받는 존재이다.
권위를 가졌다면 다른 이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과 위치로
생명을 불어넣는 책무를 받았음을 뜻한다.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있는 위치에 있다면
내가 권위를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나와 그 사람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흐르기 때문이다.
<도리 단상 47>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어디일까?
분명히 지금 어떤 자리에 있음에도
있어야 할 자리를 생각한다며 겸양일까, 실망일까?
아빠로서의 자리를 위해 직장에서의 자리가 필요하고,
그곳에서 어떤 낯선 문제들에 부딪히더라도 풀어낼 각오로 살아야 한다.
중년 가장에게 인내는 수치가 아니다.
가장은 가족에게 필요한 돈을 마련해 오는 것이 선이고 거룩이다.
때로는 처절한 마음으로 해결해 가야 한다.
<도리 단상 48>
기도하게 해주세요.
기도하면 되지.
사랑하게 해주세요.
사랑하면 되지.
한심한 투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살다 보니 한심한 기도가 아니라
한심하게 봤던 내가 뭘 모르는 거였다.
그렇게라도 기도하지 않고는 기도하기 어려운 상황에 계속 처한다면,
받아들이기 힘든 사람들 속에서 더 지치지 않으려고 분투하며 이해하려고 온 힘을 다한다면
그런 한심한 기도가 절로 나온다.
<도리 단상 49>
근무시간 외에도 일 생각만 하다가
가정과 건강을 놓칠 수 있다.
구원투수로 삼진 생각만 하다가
어깨와 마음을 다칠 수 있다.
단기성과의 결실만 생각하다가
과정의 정직함을 잃을 수 있다.
긴 호흡과 균형을 위해 나는
어디에 중심을 둬야 할지를 먼저 정해야 한다.
<도리 단상 50>
뚫고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머물러 있다면
멈춰 서고 싶거나 이미 절반은 포기한 것이다.
뚫고 가야 한다는 의지를 곧추세울 때
스트라이커가 보이고 그에게 패스해 주면 승리 포인트를 얻는다.
수비만 하지 말고 리베로로 뛰어야 한다.
오늘 하루 시작부터 마음이 무겁다면
자유인을 뜻하는 '리베로'의 의지와 집중력으로 다시 시작하자.
<도리 단상 51>
마흔여덟이어도 철은 들지 않을 게다.
어쩌면 철이라는 건 십 년쯤 전에 이 나이쯤이면 들 거라 생각한 신기루 같은 거.
오십이 넘고 환갑이 되어가며 누군가 내게 철든 것 같다고 할지 몰라도 나는 안다.
영원히 철들지 않고 살다가 가는 게 삶임을.
<도리 단상 52>
괜찮냐, 묻는 사람의
나의 안 괜찮음을 이해해 주는 정도에 따라
괜찮다고 웃으며 위장하기도 하고
안 괜찮다고 울며 속을 드러내기도 한다.
살면서 속상함을 드러낼 대상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 가장 안.괜.찮.다.
<도리 단상 53>
내가 선택했기 때문에
견디려고 하지 말고
계속 불행을 선택하지 않도록
여유를 가지고 당당하게
재선택할 줄 알아야 한다.
<도리 단상 51>
아이는 주님이 잠시 맡겨주신
선물이라고 하지만
부모의 경제력이 키우는 게 아니고
주님이 키우시는 거라 하지만
자식들 가만히 보고 있으면
내 역량의 모자람 때문에 늘 눈물겹다.
각자도생 양육의 현실에서
불안과 불편을 해소할 길은 기도밖에는.
<도리 단상 55>
고통이 있기 때문에 생각이 있고,
생각의 깊이는 고통의 깊이와 비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