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에서 손 한번 잡아주면 되는데
아버지 바로 아래 동생인 삼촌이 간암 수술을 받게 됐다는 소식에 수술 전에 문안하려고 오늘 퇴근 후 서둘러 고대안암병원에 왔다. 간에 좋은 음식을 딱히 찾을 수 없어 병원 내 빵집에서 부드러운 롤케이크를 사서 병실을 검색했는데..
세 가지 난처한 사실에 직면했다.
내가 알고 있는 삼촌의 이름이 아닌 주민등록상 본명이 따로 있다는 것과 오늘 오후 4시쯤 임시 퇴원해서 일요일에 재입원하실 예정으로 오늘 난 허탕을 친 데다, 삼촌 전화번호가 011로 저장되어 있고 전화드리니 없는 번호로 뜬 점. 미리 전화를 드리지 않았던 것은 너무나 오래 왕래가 없어 서프라이즈 방문이 좋겠다고 생각해 달려왔는데.
멀지 않은 거리에 사는 친척인데도 크게 아프거나 돌아가시지 않으면 만나기가 어렵다. 명절이어도 생신이어도 그렇게 됐다. 어머니가 오랜 세월 편찮으시니 친가 외가 모두 내게 가까이 오지 못한다. 가끔씩이라도 교류해야 하는데 내 쪽에서도 그쪽에서도 쉽지 않다.
많은 분이 내게 왜 혼자서 짐 지고 견디냐고, 형제와 친척이 없냐고 궁금해하시지만 시간과 돈이 드는 어머니 간호의 책임감은 내가 오롯이 해결할 문제라고 여기고 살아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순간부터 하나뿐인 연년생 여동생과 전화하는 것도 쉽지 않게 되었다. 그 미묘한 서먹함에 섭섭함 따위 없이 견뎠다. 수도권에 살고 있는 가족, 친척들에게 조금도 의지하지 않았고 모두 저마다의 사정이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 먹고살기 힘든 세상이지 않은가. 내가 가난해도 스스로 풀어가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겼다.
그러다 오늘 깨달았다.
무심한 건 나도 마찬가지고, 냉정함에 있어서 더하면 더했지 덜한 건 없다고. 어머니 위해 기도해 주시고 후원해 주시며 관심 가져주시는 분들이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외로움과 재정적 어려움을 감내했다. 그러나 혈육은 어찌할 수 없는 진짜 가족이 아닌가.
중병에 걸리면 걱정해 주게 되고 그 아픔을 나누고 회복을 염원하는 건 당연한다. 진짜 가족은 내가 지고 있는 짐에 무관심하다기보다 마음은 답이 안 나오는 문제 앞에 쩔쩔매는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는 거다. 잊고 사는 것, 연락을 하지 못하는 것이 그분들만의 치유법일 수 있다.
고대병원에서 쓸쓸히 귀가하며 커뮤니케이션 잘하는 편이라는 내 모습이 허당임을 생각해 보았다. 가족과 친척과의 소통에는 무지막지한 허당이다. 누군가 어머니 간호하느라 무겁게 처진 내 어깨가 걱정돼 다가왔다가 로봇 같은 내 표정에 돌아서 가시기도 했을 것이다.
헬퍼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막막하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 아니라, 내가 소통 창구를 막고 있기 때문에 괴로운 것일 수 있다. 너무 힘든 문제여서 도무지 해결해 줄 능력이 없어도 곁에서 손 한번 잡아주면 되는데 그게 그리도 어렵던가? 나에게 묻고 우리에게 묻는다.
2016.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