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중년 우울 19화

고독 시민

피로 사회의 고독 시민이 내가 선 자리임을 알면 넘어질 때 덜 아프다

by 황교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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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합정 교보에서 필요한 자료들을 찾고 에세이 신간들을 살펴보았다. 오늘은 강남 교보에서 책들 속에서 힐링하고 있다. 서점은 나의 힐링 공간이고 이곳에서 보낸 시간은 한 가지 이상 메시지를 안겨준다.

출판사 월급을 받지 않으니 책을 볼 때 편하다. 그래도 못 버리는 습관이 있다. 일단 내가 편집자일 때 서점에서 눈에 띄는 책을 접하면 출판사명, 제목을 왜 이렇게 지었을까, 부제는 왜 이걸로 했을까, 띠지 문구, 표지 디자인, 본문 내지의 특징, 가격, 판권, 분량, 저자 소개 문구, 뒤표지 문안, CIP를 신청한 책인지(이걸 무시하는 출판사가 많다. 왠지 따르는 곳과 무시하는 곳이 궁금하다) 등등 여러 가지를 살펴본다.

그 편집자 세계에서 나오고 나서는 마음 편하게 신간을 본다.
제목과 저자 그리고 내용에 집중한다.
한 가지 더 살핀다면 지금 내게 호기심이 생기는가 아닌가이다. 요즘 나의 호기심은 혼자 고민하는 마음 통증 해결이다. 그래서 제목에 나답게, 혼자, 내가 하고 싶은 삶, 자유를 얻기 등이 나와 있으면 일단 만져 본다.

그런데...


지금 에세이 코너의 신간 대부분이 이런 책이다.
다들 고독하고, 다들 조직에서 지쳐서 나오고 싶고(물론 저자는 이미 탈출했고, 주류에서 이탈했어도 자신은 행복하다는 메시지를 책 곳곳에서 말한다), 가족관계에 경계선을 긋고 싶고, 규격화한 삶이 이제 난 싫다고 외치고 있다. 에세이들에서 공통의 아우성이 들린다.


에세이 신간 매대의 제목만 읽으면 지금 사람들이 무슨 고통을 참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가르침 받기보다는 느끼고 싶어 하고, 돈을 못 버는 것이 두렵지만 적게 벌거나 백수여도 나 자신을 찾고 싶어 한다. 벼랑 끝에서 일하다가 나를 찾고 싶어서 뛰어내린다. 그런데 죽지 않고 안전망을 발견했다는 식의 이야기다.


40대 이하의 50% 이상이 1인 가구인 시대라고 한다. 2015년 통계이니 아마 지금은 훨씬 많을 것이다. 독거노인이 아니라 고독 시민이 살아가는 때에 나는 중년 파산의 시대에 중년 고독 시민이다. 혼밥, 혼술, 관계 피로감의 사람들이 늘어서 편의점은 부흥하고 교회는 비어 간다. 간단한 도시락의 디지털은 맛있어지고, 차려 놓고 대화하는 밥상 공동체의 아날로그는 멀어져 간다.


이런 시대에 고독한 혼자들은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아픔을 위로받고 싶다.
내가 못난 사람이 아냐.
성공을 위해 자신을 무시하는 세상이 나쁜 거야.
내 인내심이 약한 게 아니고 그들과 난 다른 거야.
난 맞으면 아픈 사람이니 아프다고 말해.
정 못 참겠으면 견디지 마.
그리고 비슷한 고통으로 먼저 아파 본 저자가 들려주는 따뜻한 위로 한 마디에 마음을 녹인다.

고독 시민을 선택하고 살아가면서 누군가 나를 위로해 주기를 갈망하고, 고독해지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을 조용히 부분적으로 허용한다.


그런 자아 사랑과 세상에서의 멈춤을 말하는 에세이들을 읽다 보면 내 마음에 공간이 생긴다. 누군가가 들어오지 않아도 누군가가 함께 있는 것 같다. 그 누군가는 내가 결박해 놓고 물리치고 싶어 한 나 자신이다. 또 다른 나의 포박을 풀고 인정해 주는 시간을 얻게 된다. 바람 불고 괴롭고 내일을 모르겠어도 인정이 필요한 나에게 인정의 선물을 준다. 어제보다 나아지라고 채찍질하는 세상에게 내가 노예냐고 저항하는 결기를 선물해 준다.


서점이 내 힐링의 장소인 것은, 못나 보이는 나에게 용기 한주먹 안겨 주기 때문이다. 어떤 것은 맞고 어떤 것은 좀 아닌 텍스트를 여행하며 내가 아니라고 한 것에 대해 틈을 열어 받아들여 본다. 그래야 세상이 보이고 그 속을 살아가는 사람을 이해하고 나의 무례함을 한 꺼풀 벗겨낼 수 있다. 피로사회의 고독 시민이 내가 선 자리임을 알면 넘어질 때 조금 덜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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