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중년 우울 09화

자부심은 무너져야 한다

병간호의 숱한 경험들이 준 교훈들

by 황교진



밤새 무거운 꿈에 시달렸다.
꿈 속의 어떤 상황에 놓여 있었는데 주변의 모든 사람으로부터 소외받는 괴로움에서 이겨내려고 발버둥 치는 악몽이었다. 새벽에 작은 방 보일러가 꺼져(아내에게 말하고 작은 방에서 혼자 잤다) 피로가 풀리지 않은 으슬으슬한 몸으로 곰곰이 생각했다.

욕창 없이 엄마를 17년을 돌봐왔다는 건 내게 은근한 자부심이자 자기 의로 심기어 있었다. 그것이 무너지고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에서 내가 스스로 무시당하고 소외받는 기분에 휩싸인 것이 꿈속에 발현된 것 같다.

집에서 간호하던 8년, 나는 스스로 싱글 백수 청년으로 자신을 놓아두고 매일 두어 시간만 자면서 어머니 몸에 작은 냄새 하나 허용하지 않았다. 아침마다 밤을 지새운 몸에 신경이 모두 부서지는 고통을 참고 일어나 어머니 호흡을 편하게 해드리는 석션을 시작으로 팔다리 관절 운동 후 조심스레 침상 목욕을 3시간씩 해드렸다. 단 하루도 이 오전 일정에 게으름을 피우거나 변화를 준 적이 없다. 그리고 하루 6번의 식단대로 정확한 시간에 영양죽과 주스, 약을 타드리고 표정에 따라 필요한 최적의 자세 변경을 해드리느라 인간으로서 필요한 내 욕구는 모두 포기한 청년기였다. 잠시 큐티하고 기도하는 시간 외에는 잠도 식사도 포기하고 식물인간 어머니 병간호에 집중한 8년은 고통과 은혜 두 가지 얼굴로 추억돼 있다. <어머니는 소풍중>에 소개돼 있다.

8년 후부터 집을 내놓게 되면서 어머니를 적절한 병원을 찾아 모시고, 1년에 한 번은 병원의 어떤 문제로 인해 더 나은 병원으로 옮겨 다녀야 했다. 그 과정에서 어머닌 결핵에 세 번이나 걸려 대학병원으로 급히 옮겨 격리치료를 받는 설상가상의 아픔도 지나왔다.
매월 지불하는 병원비도 편집자 월급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지출이었지만, 결혼하고 두 아들 낳고 양육해 온 지난 8년은 그야말로 은혜 아니면 살 수 없는 세월이다.

그런 훈련을 받았지만 돈 문제는 항상 심각한 숙제다. 또한 내가 가난하기 때문에 주님이 주신 복음의 가치, 성경의 컨텍스트를 무시하고 타협해야 하는 직장에서 얻는 스트레스 또한 무시무시한 낯선 고통이었다. 차라리 가난한 광야로 갈지언정 타협은 못하겠다.

이제 아무것도 정해진 바 없는 광야의 추운 벌판으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동안 내게 뭔가 위로를 받으려고 다가온 사람 중에 내가 바쁘다고 혹은 그 사람 캐릭터가 마음에 안 든다고 외면했거나 응답을 피한 몇몇 사람이 떠올라 미안해진다.
어젯밤 고통과 고독감 중에 꾼 꿈이 이를 반영한 것 같다. 나를 의사로 생각하고 다가온 환자들의 입장에 들어가 스스로 처해 본 꿈이었다.
수년 동안 뒤에서 나를 모함하고 수군거리며 괴롭힌 어느 형제도 떠오르고, 정말 죽도록 미운 아버지도 떠오른다. 대표적으로 그 두 분께 미안한 마음이다. 어쨌든 내게 기대하고 의지한 사람이고 나는 밀어낸 못된 사람이니...ㅠ
마음이 밑바닥으로 내려가 가난해지니 오늘 교회에서 알게 된 실직한 가장들, 얼마 전에 아기를 입양한 가족, 갑자기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하늘로 보낸 후배 등의 소식에 콧날이 시큰해진다. 오랫동안 백수로 지내는 청년 모습도 더 절실히 눈에 들어온다. 내가 더 나은 것도 없고 도울 힘도 없지만 마음은 그분들을 위한 중보기도의 관심과 가난함이 더 커졌다.

다들 성공을 말하고, 사회적 위치를 말하고, 안위를 말할 때 성도의 책임을 추구하고 끝까지 변함없는 사랑을 선택하기란 무척 어렵다. 신학으로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고 독지가의 거액의 지원으로도 내일의 해는 뜨지 않는다. 그건 하나님의 영역이다.

몇 년 전부터 어머니의 인격을 위해 하나님 품에 안기시는 게 모두를 위한 최선이란 조언을 들어왔다. 나를 진심으로 위해 주는 분들이라 듣는 데 어려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머님이 하늘로 가시는 그 과정에 반드시 개입되는 것이 욕창과 폐렴이다. 나는 욕창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방지해 왔다. 지금은 두 가지 얼굴이 덮쳐온다. 아들로서 끝까지 이 지식과 실천을 적용해야 하는 것과 그 숱한 경험들을 덜어내고 주님께 맡기고 받아들이고 기도만 하는 것.

분명히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을 못할 것이다. 그래서 더욱 기도하며 분별하려 한다. 정신적 고통, 영혼의 어둠, 깊은 소외감 속에서 기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지금의 내 현실은 지옥이 따로 없는 절망 자체다.

그동안 열심히 일했고 내게도 휴식이 필요하다. 정리해야 할 짐들은 정리하고 가벼운 몸으로 이 과정을 통과할 지혜를 구하련다. 나로 인해 도움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뀐 분들께 다시 한번 죄송한 마음 전한다.
주님은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길 것이라고 하신다. 공평하신 하나님은 어려움만 계속 되도록 두지 않으시고 같이 아파하신다. 유일한 도움 되시는 하나님을 더 바라보게 하는 것은 내 자부심을 완전히 내려놓는 순간부터다.

2013.11.24

keyword
이전 08화세 번 재발한 결핵 치료를 마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