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순간, 마음에 금이라도 간 듯 빈틈이 생겨버리고 그 틈으로 원하지 않는 것들이 들어온다. 익숙하지만 반갑지 않고, 마음에 생채기를 냄과 동시에 가슴과 심장, 목과 어깨에도 화끈하고 묵직한 화상의 흔적을 남기는 거북하고 부대끼는 느낌이다. 나는 그 느낌을 ‘곁가지 증후군’이라고 이름 붙인다.
중요한 존재로 대접받고 인정받고 존중받고 싶은 욕구가 채워지지 않을 때 이런 느낌이 든다. 이 욕구가 채워지지 않을 때 나는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곁가지로 살고 있다는 자괴감에 빠져든다. 중하게 쓰이지 못하고, 중하게 대접받지 못해서 안달이 나는 것이다.
나뭇잎과 꽃은 중심 몸통이 아닌 잔가지 끝에서 피어난다. 언젠가 곁가지 타령을 하는 엄마를 보며 딸이 시를 써서 알려준 사실이다. 그 사실을 떠올리니 비로소 따스한 물에라도 들어온 듯 몸과 마음이 스르르 풀어진다. 또 잊어버리고 있었다.
"이제 남들에게서 받는 인정보다는 스스로를 인정하는데 더 집중해 보세요."
상담 선생님이 해주신 말이다. 남들의 인정과 존중을 계속 바라고 있는 상태는 내 힘과 자존을 남들의 손에 지속적으로 맡겨놓은 것과 같다. 내게는 천금 같은 나의 자존이 그들 손에 있으면 후딱 버리고 싶은 쓰레기 덩어리와 무엇이 다를까? 내게 던져주는 것 밖에는 아무 쓸모가 없는데.
그러면, 세상이 나를 인정하지 않을 때 내가 나를 어떻게 인정할 것인가? 내 마음 속에 나를 인정하게 만드는 기준은 무엇일까? 남들의 시선에 영향 받지 않고 스스로가 기뻐할 수 있는 진짜 나를 찾는 길을 걸어가고 있을 때 나는 나를 인정할 수 있을 것 같다.
'가디언즈'라는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이 있다. 주인공 ‘잭 프로스트’는 연못에서 얼음이 깨지기 전 동생을 살리고 자신을 희생하여 아이들을 수호하는 '가디언'으로 다시 태어난다. 가디언으로서 그가 가진 힘의 핵심인 '센터(본질)'는 바로 위기 상황에서 동생을 안심시키고 살리기 위해 발휘된 명랑한 기지, 'fun'의 정신이었다. 잭 프로스트는 삼백년이 넘는 기나긴 세월 동안 자신의 정체성을 잊고 있었다. 정체성을 잃고 방황하다가 결국 자신의 힘의 근원, 자신의 본질인 센터를 기억하고 기지를 발휘해서 부기맨을 물리쳤다.
나의 본질은 무엇일까? 본질은 ‘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사물 자체의 성질이나 모습’으로 박웅현이 쓴 ‘여덟 단어’ 책에 따르면 ‘변하고 있는 것들 사이에서 변하지 않는 그 무엇’이다. 박웅현은 책에서 ‘나라는 자아가 곧게 서려면, 본질을 발견하려는 노력과, 본질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포기할 줄 아는 용기, 그리고 자기를 믿는 고집’이 필요하다고 한다. 오늘 나는 내 본질을 발견하고 본질이 아닌 것은 포기하려는 어떤 노력을 기울였던가?
책에 소개된 사학자 강판권 씨는 오랜 헤맴 끝에 자기 자신의 본질을 촌놈이라고 생각해서 농업사를 연구하고 나무에 대해서도 공부해서 나무에 관한 책들을 썼다고 한다. 그는 ‘자기 자존을 놓지 않고,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들여다보고, 그렇기에 자신의 길을 무시하지 않는 인생을 살아, 의미 없어 보이던 점들을 연결해서 별을 만들었다’고 한다.
좋은 소식은 매일 아주 조금씩, 아주 약간씩만 더 내 자신이 되는 삶을 살아도 된다는 것이다.
선천성 조로증을 앓다가 17세에 죽은 샘 번스가 ‘매일 5% 더 내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말한 행복의 비결 네 가지를 기억해본다.
첫째, 자신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 자신이 하지 못하는 것들을 받아들이고,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라.
둘째, 좋아하고 신뢰하는 사람들과 많이 어울리고 자신에게 나쁜 것들에 에너지를 쓰지 말라.
셋째, 계속 앞으로 나아가라. 자신의 일상에서 자그마한 소망과 기쁨을 주는 기대를 계속 만들어내라.
넷째,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모임에는 결코 빠지지 말라.
오늘 아침 일어나 이렇게 나를 표현하는 좋아하는 글을 쓰고 있고, 오늘 점심에는 좋아하고 신뢰하는, 배울 것이 많은 대학 동창 친구들을 만난다. 오늘 아주 조금만 더 나 자신을 믿기로 했다.
나뭇잎
굵은 가지에 가지런히 붙어있는 잔가지.
그 잔가지에 약한 줄기로 떨어질 듯 말 듯
애타게 붙어있는 나뭇잎들.
바람이 불면 날아가겠지,
비가 오면 젖어버리겠지,
겨울이면 힘없이 떨어져 버리겠지.
그래도 세상에 한 부분인걸,
사명을 갖고 태어난걸.
봄이 되면 연둣빛 새싹들이 마알간 얼굴을 수줍게 내밀겠지,
여름이 되면 햇빛에 아름답게 비쳐 별처럼 반짝 빛나겠지.
가을이 되면 빨간 빛 노란 빛 예쁘게 단풍 들어 봄비처럼 사르르 내리겠지.
그리고 아이들은 엄마 손을 붙잡고
"와, 저것 좀 봐!" 하겠지.
- 하늬의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