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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주 Jun 23. 2020

일상의 범위

[시시한 어른도 괜찮아 ⑥]


일상(日常,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


일상이란 말은 어찌보면 따분하지만, 한편으론 평온하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똑같은 하루. 설렐 일도 없지만, 맘졸일 일 역시 없는 날.


일상이 반복되면 지겹겠지만, 매일이 일상이 아닌 것 또한 고달프다.

늘 신경쓸 일이 생기고, 다이나믹한 나머지 마음 툭 풀어놓고 쉴 여백이 없는 삶은 누구에게나 피곤하니까.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일상이 누구에게나 똑같이 찾아오는 것 같지는 않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평온한' 일상이지만, 다른 이에게는 일상 밖의 일이기도 하다 .



내게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 지나치게 많지만
사사코씨에게는 아무래도 좋지 않은 일이 지나치게 많다.
사람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 십수 년 전에는 내게 랩 크기랑 자르는 방법,
랩상자 뚜껑 닫는 방법을 지적했다. 알게 뭐람.
- <사는 게 뭐라고>, 사노요코



어디까지가 일상이고, 어디부터는 일상이 아닐까?


나는 '일상'의 범위가 좁은 사람이다. 풀어서 얘기하면, 작은 일에도 마음의 평온이 깨진다. 30대 중반을 넘어서고 보니 나는 긴장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작은 일에 특히 대범하지 못하다.


차기 노조위원장 후보로 (내 의사와 상관없이) 오른 일이 많았지만, 내 심장은 자주 두근반 세근반이다. 전화를 할 때도, 건강검진을 받을 때도, 병원에 갈 때도 '쓸 데 없이' 심장이 쿵쾅거린다. 처음엔 병원공포증인가 싶었는데,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병원이 아니어도 심장이 나대는 걸 보면.


내 일상의 폭은 보폭으로 세 걸음 정도 될까.

그 밖에 일들이 일어나면 나는 신경쓰고, 때론 기분이 상한다. '오늘 이런 일을 처리하다니, 부서 옮기고 나서 정말 요즘 힘드네', '무리한 것 같지 않은데 왜 아프지', '오늘도 운동 못 가겠네', '내가 이제 이런 것까지 신경써야해' 등등...


어제와 같은 안정감을 누릴 수 없다는 분노가 오늘을 망친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것도 일상이었다. '살면서 생길 수밖에 없는 일'. 물론 내 맘에는 안 들 수 있지만, 모두가 다른 모양으로 조금씩 지고 가는 봇짐같은 일들 말이다. 이게 저 사람에게는 저런 모양으로, 나에게는 이런 모양으로 다가왔을 뿐이다.


그래서 내 일상의 범위를 한 뼘 늘리기로 했다.

일상을 청정구역으로 만들어서는 티끌 하나에도 그 행복이 깨질테니까.

'그래 오늘은 이런 일이 일어났네, 그럴 수도 있지 뭐'라는 의연함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싶다.


나의 일상은, 안전하다.



지상에서 천국을 찾지 못한 자는 하늘에서도 천국을 찾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어디로 가든, 천사들이 우리 옆집을 빌리기 때문이다.
- 에밀리 디킨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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