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재 Mar 21. 2022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 클라우드 마니아 ] 스토리가 있는 구름 느낌

[스토리가 있는 구름 느낌]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https://youtu.be/8hj946MLecA

구름 영상 제목: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촬영 장소: 포르투갈 알가브


나의 구름 느낌: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살면서 힘들 때가 있다. 코로나 상황처럼, 주위 사람들이, 나라 전체가, 세상 사람들이 모두 어렵다고 야단이면, '나만 그런 것이 아니구나'라며 참고 견딜만하다. 나는 헤쳐나갈 방법이 없이 앞 일이 캄캄한데, 다른 사람들은 너무 잘 살고 행복해 보이면, 나의 어둠은 더 깊고 짙어진다. 


살다 보니, 걱정의 종류와 크기만 다를 뿐 걱정이 없었던 때가 없었다. 살면서 보니, 잘 살고 행복해 보이던 사람들도 나름대로 걱정을 안고 살았다. 서로가 몰랐을 뿐이다. 살아보니, 걱정 없는 사람은 없었다.


죽을 만큼 힘든 시간


죽고 싶을 만큼 힘든 시간도 있었다. 죽지 않고, 견디니 견뎌졌다. 지나고 나서보니, 죽을 만큼 힘들었지만, 도저히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갈 수 없을 것 같았지만, 시간이 지나니 지나갔고, 기쁘고 행복한 순간들이 다시 왔다. 그래서, 죽지 않고 견디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죽는시늉


나는 죽을 만큼 힘든 시간에, 상황에 맞게 죽을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살았다. 상황과 나의 태도는 일치했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진실되게 사는 것이라 생각했다. 


"상황이 이런데, 그런 모습으로 살면 다른 사람들이 욕하지 않겠어."


죽는시늉을 하고 살았던 나는, 지나고 나서야, 죽는시늉을 하지 않고 살아도 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첫째, 죽는시늉을 하고 살아도 죽을 만큼 힘든 시간을 빠져나오는 것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죽는시늉을 할수록 죽을 만큼 힘들 뿐이었다. 둘째, 내가 죽을 것 같다고 죽는시늉을 하였을 때, 사람들은 모두 자기의 고민과 고통을 처리하느라 나의 상황을 같이 할 여유가 없었다. 잠시 공감하고, 또는, 잠시 욕할 뿐, 오랫동안 진지하게 관심을 가지고 공감하거나 비난하지 못했다. 결론은, 죽을 만큼 힘든 시간과는 상관없이 내가 살고 싶은 모습대로 살아도 되었다.


웃어도 될까?


죽을 만큼 힘든 시간의 터널을 지나고 나서야, 뒤돌아 보면 그때도 웃을 일이 있었다. 그러나, 웃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이래도 되나 싶어서. 그런데, 웃어야 했다. 웃는 것이 더 나았다. 사실, 웃으나 웃지 않으나 상황의 변화에는 차이는 없었다. 다만, 웃을 기회를 영원히 잃어버린 것을 제외하고는. 지금에서야 나는 다짐한다. 웃을 수 있을 때는 웃을 거라고. 이런 상황에서 내가 이래도 되나 이런 생각 하지 않을 거라고.


웃어라


웃자. 상황이 어떠하든지. 온갖 일이 일어나는 세상은 정말 흥미진진한 곳이라며 웃자. 그리고, 일어서자. 그리고, 우리 앞에 늘 놓여있는 고민과 문제와 어려움과 난관을 하나씩 정리해 나가자. 시간이 걸릴 것이고, 쉽지 않겠지만, 포기하지 말자. 견뎌낸 뒤에, 우리 생을 휩쓸고 간 문제들에게 돌아서서 메롱을 날리자. 사는 거 별거 아니다. 메롱.




https://brunch.co.kr/@algarve/115

(이미지 출처:Pixabay)

이전 03화 레퀴엠, 진혼곡: 영혼들의 안식을 위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