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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 제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세요.

by 배홍정화 Jan 20. 2025



12/16월-12/20금, 타이베이 ; 12/17 화요일

龍山寺, Longshan Temple.


불교와 도교가 주를 이루는 대만. 길거리 곳곳에 사찰이 꽤 많다. 찾아간 곳은 용산사. 항상 애매할 시간에 방문해서 그런 건지 내가 갔을 시점에 모든 곳에서 사람이 북적이지 않았다. 나올 즈음엔 항상 북적북적했고... 이것 또한 운이다.


유일하게 길을 가다 루트를 틀지 않은 곳이고, 오랜 시간 머물렀던 곳이 바로 이곳이다. 가기 전에 고민했지만, 가면서는 직진만 한 곳. 도착해서 들어서기 전, 판넬처럼 세워진 안내표지판을 잠시 읽고 들어간다. 입구를 지나 들어서서 오른쪽의 작은 호수의 엄청 큰 붕-잉어들을 한참 쳐다보다 진짜 내부로 들어갔다. 바로 팸플릿을 집어 들어 정독한다. 제대로 알아보고 온 곳이 아니었기에 정보도 없고, 그리고 팸플릿 읽는 걸 좋아한다. 여기저기 인터넷에 퍼져있는 잘못된 정보를 신뢰하는 것보다는 여기를 운영하는 곳에서 배포한 자료들을 믿는 편이다.


읽다 보니 정독하기엔 모시는 신이 참 많아 벅찼다. 네 번째 신을 읽다 보면 첫 번째 신의 업무가 헷갈리고, 열 번째의 것을 읽다 보면 앞의 것들을 다 잊어버렸다. 신 옆에 서브해 주는 꼬마신들도 있다. 대략 20분 정도 인포메이션에서 가만히 서서 읽어보았다. 그러니 우연히 보이더라, '대부분 팸플릿을 안 보는구나...?' 나는 이번 여행의 다른 스폿들에서도 팸플릿이나 설명글이 있으면 무조건 한 번씩 훑었다. 이건 내 성향이다.


무튼, 용산사라고 알고 찾아간 곳에서 한글 팸플릿에는 '룽산사'라고 적혀있었다. 현지 발음으로는 이렇게 말하는가 보다. 한자 그대로 龍을 읽어 용산사라고 한국에서는 표기되는 건가. 팸플릿을 보지 않았다면 여기 룽산사를 다 둘러보지 않았을 것 같다. 이곳을 잘 모르니까. 메인 신을 모시는 신당(?) 뒤에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한 바퀴 돌면 꽤 많은 신의 형상들이 있다. 친절한 탬플릿 덕에, 다 잘 보고 나왔다.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 여기 지역 주민들을 지켜준 신도 있고, 재물, 부부, 출산, 학업 등등에 대한 많은 신들이 있다. 신 한 명(?)이 하나를 주관하기보다는 여러 개의 것들을 주관하여 서로 업무가 겹치기도 했다. 뭐, 나도 일할 때 하나만 하진 않고 여러 분야를 다 해야만 했으니 신도 일할 때는 인간과 다를 바 없는가 보다.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가톨릭 신자...지만, 누군가 묻는다면 과거형으로 말한다. 성당을 다녔을 때도 독실하지 않았고 습관처럼 갔던 것 같다. 토요일 낮에는 어린이 미사, 저녁에는 청소년 미사가 있었고, 성탄미사와 특별한 날의 심야미사는 응당 가서 미사를 드렸고, 고해성사도 하고, 내 잘못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만 성체를 모시기 위해 고해성사를 하는 것이 대부분이었고. 학교 가는 것과 같이 성당을 가는 것 또한 일상이었다. 아마 내가 청소년이었을 때 무한도전이 재밌었을 시기였다면 우리 청소년 미사는 사라지지 않았을까? 토요일 그 시간대였으니까 말이다. 무튼 허허.


굉장히 넓은 사원이었고, 사찰? 사원?. 기도를 올리는 대만 현지인들이 굉장히 많았다. 관광객도 물론 많았고. 기도를 하는 방식이 무언가 달라 보였다. 어떤 이는 음식을 바치고, 어떤 이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어떤 이들은 블록 같은 것들을 계속해서 던졌다. 또 어떤 이는 기다란 막대기를 뽑아 종이를 찾아 점괘를 보기도 했다. 향초를 크게 피워놓은 중앙에서는 무언가를 향초의 연기에 돌려 소원을 빌기도 했다. 소원을 비는 위치도 제각각 달랐다. 처음엔 그냥 나도 기도의 형식을 취했다. 그리고 막대기를 뽑아 종이를 확인했다. 현재의 내 상태와 엇비슷하게 나와 헛헛한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메인 신에게 다가가 인사했다. 그리고... 왜인지 모르겠다. 좀 더 진정성이 있고 싶었나? 다시 처음의 위치로 돌아가 구석에 서서 핸드폰으로 열심히 찾았다. 용산사에서 기도하는 방법, 점괘를 치는 방법, 왜 블록을 던지는지, 어떤 이는 끊임없이 던지고 어떤 이는 던지고 나서 끝내고. 내가 빌고자 하는 소원이 언제 정해졌을까 기억이 나진 않는다.


블록을 던졌다. 신(들)은 내 소원을 한 번에 들어주기로 했다. 머나먼 길을 찾아와, 관광객처럼 둘러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신 한 명 한 명을 읽어보려 하고, 이 사찰 전체를 돌아보고, 기도하는 방법을 찾아보는 내가 기특했을까? 수박 모양의 블록이, 그들의 응답 yes 표시를 보여주자마자 나는 정말 기뻤고, 이어 점괘의 숫자를 찾아야 할 막대기를 뽑아 들었다. 아까와는 다른 번호가 나왔다. 그리고 난, 이게 진짜라고 생각하며 점괘표를 서랍에서 꺼냈다. 구글번역기, 파파고를 돌리고 -옆에 비치되어 있는- 점괘 내용이 좀 더 깊게 설명되어 있는 노트도 살펴보았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서 당장 이뤄지지 않을 테지만, 모르겠다. 그냥 믿음이 갔다. 아니 믿고 싶었다. 나는 절박했고, 그 절박함이 이곳에서 터졌던 것이다. 기도를 마치고 안심을 하고 감사를 표한 뒤 좌측문으로 나오는데, 기념품샵이 있다. 이런 건 절대 사지 말아야지, 다 장삿속이야 했지만 내 마음이 여기선 또 달랐다. 기념품 각각의 번호와 내가 진득하게 고민한 소원 세 가지와 맞는 부적들을 하나하나 대입해 찾아봤다. 와중에 또 내 마음에 드는 디자인들을 속속들이 찾아 총 3개를 구매한다. 여느 기념품이 그렇듯, 값이 싸진 않다. 하지만 여기 신들은 내 손을 잡아주었고, 나에겐 이 부적이 그들의 내밀어준 손에 내미는 또 다른 나의 손이었다.


나는 기념품을 들고, 큰 향로가 있는 곳으로 갔다. 내 소원부적들에 그들의 향을 입히며 기도했다. 눈물이 나왔다. 힘들구나, 나 지금 많이 힘들구나. 남들의 시선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여긴 드라이브 이슈가 아닌 사진이 그냥 없다. 절 입구 사진만 찍고 내부는 찍지 않았다. 절 내부에서 사진을 찍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기분이다. 그리고 기도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들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사진 찍을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나는 이 시간 동안 정말 진심이었으니까.





용산사 혹은 룽산사에서의 기도 덕분에

백수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조급하거나 불안한 마음이 덜한 것 같다.

이것 또한 그들이 준 선물이겠지.

쎼쎼, 씨에씨에. 이뤄지면 감사인사하러 또 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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