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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어르신들과의 족욕 타임

by 배홍정화 Feb 16. 2025

온천을 지극히도 좋아하는 나.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나를 짓누르고 있는 걱정들이 사라지는 것만 같다. 이번 여행도 온천을 위한 루트가 꽤 많았다. 하지만, 이놈의 생리. 온천을 가겠다고 수영복과 수건을 챙겨 왔는데 생리하면 못 가지 뭐. 약 먹어서 조절하면 되는 거 아니냐 하지만, 규칙적이지 않기 때문에 약을 먹기도 애매하고. 온천 즐기겠다고 굳이 나오겠다는 애들을 억지로 기다리라고 하는 것도 내 몸에 좋진 않을 터. 하지만 우후후, 진정 원하는 것이라면 길은 다 있는 법. 



12/16월-12/20금, 타이베이 ; 12/18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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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도 어김없이 마스터 오브 주먹밥에 가서 주먹밥을 하나 산다. 분명 아침을 먹으러 가는 길이지만, 이 주먹밥은 포기할 수 없지. 지난밤의 꿉꿉했던 잠자리를 다 잊게 해주는 재밌는 맛이다. 식감도, 맛도, 향도 여러모로 재밌는 맛.


'일갑자손음'에 찐-아침을 먹으러 간다. 오픈런을 해야 하는 곳이라지만, 오픈런은 체력상 힘들고 성격상 어렵고. 와, 도착하니 줄이 꽤나 길다. (물론 역시 사진은 없지만... 왜 다 지웠니, 나야...) 하지만 만드는 속도와 먹는 속도를 보니 제법 빨리 나의 차례가 올 것 같아 줄을 서본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뒤를 돌아봤는데, 와 이렇게나 많이 기다린다고? 끝에 있는 사람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다. 중국어도 많이 들리는 걸 보니 현지인 사이에서도 유명한 집이 맞구나 생각이 들었다. 역시, 주먹밥을 먹길 잘했다! 


치아가 필요 없을 정도로 부드러운 동파육, 느끼한 맛을 잡아준 오이, 간 같지만 두부, 그리고 맛을 더해준 잘게 썬 고기.치아가 필요 없을 정도로 부드러운 동파육, 느끼한 맛을 잡아준 오이, 간 같지만 두부, 그리고 맛을 더해준 잘게 썬 고기.


동파육 덮밥과 동파육 버거를 주문했다. 그리고, 6인 가족에게 다가가 합석하고 싶다 말하고 옆에 앉았다. 혼자 여행의 장점 중 하나는 합석이다. 자리가 넉넉치 않아도 씨에씨에 하며 방해하지 않고 앉을 수 있으니까! 와, 지금 봐도 윤기가 반지르르. 숟가락만 주길래 나 포크 줬으면 좋겠는데 했지만 다 이유가 있었다. 숟가락만 갖다 댔는데도 바스러지는, 입안에 넣자마자 이거야말로 녹아내리는. 잇몸으로도 먹을 수 있다는 걸 이런 걸 말하는 건가 싶었다. 맛은 또 얼마나 짭조름하고 달큰한지. 저 오이가 신의 한 수다. 정말, 너무, 맛있었다. 다 먹고 나서 접시 바닥의 기름을 보고 흠칫했지만 그런 들 어떠하리. 이렇게 즐거운 미식을 경험했는걸. 작은 배를 가진 나는, 동파육 버거는 입에 대지도 못하고 봉지에 담아 가방에 넣었다. 흠, 이 기름이 내가 배고플 때까지 굳지 않고 버텨줄 수 있을까...


一甲子餐飲, 일갑자손음. 다 먹고 나서야 본 미슐랭 스티커들. 아, 이래서 줄이 코너를 돌고 돌아 길었구나.一甲子餐飲, 일갑자손음. 다 먹고 나서야 본 미슐랭 스티커들. 아, 이래서 줄이 코너를 돌고 돌아 길었구나.


원래는 A → B의 루트로 움직이려는 계획이었다. 나름 지난밤에 고민하며 동선을 짰지만, 발바닥이 아파오는 상태였기에 A는 포기하고 바로 B.베이터우 온천마을로 향했다. 이날 처음으로 지하철을 탔다. 베이터우까지는 지하철을 타고서도 꽤 가야 했다. 신베이터우 역에서 내린 뒤의 길은 쉬웠다. 언덕이 있고 그곳까지 가는 길은 길었지만 앞에 관광객들만 따라가면 되었기에 지도앱을 끄고 주변을 살펴보며 걸었다. 중간중간 샛길도 많았다. 큰길을 제쳐둔다, 큰길은 내려올 때 걸으면 되니까. 작은 길들로 요리조리 올라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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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길로 걸어간 덕분에, 다양한 풍경을 볼 수 있어 좋았다!


마을 위로 올라가면서 옷을 하나둘씩 벗었다. 온 마을에서 열기가 느껴졌다. 길을 걷다 고개를 들어 둘러보면 어디든 냇물이 있는데, 냇물에서 수증기가 올라왔다. 진짜 신기했다. 뜨거운 물이 이렇게 한가득이라니. 


중간에 한 템포 쉴 요량으로 선택한 곳은 온천박물관. 안에서 동선을 안내해 주시는 분들은 모두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들이었다. 마을 주민이신 걸까? 마을 정책 중 하나인 어르신 일자리 만들기 같은 것일까? 아니면 자원봉사자분들일까? 어떤 것이든 좋다. 어르신들이 반겨주니 더 포근하게 느껴졌고, 실제로 그들의 미소가 따뜻하게 느껴졌다. 편협한 생각이겠지만 목욕탕의 분위기와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北投溫泉博物館, Beitou Hot springs Museum, 베이터우온천박물관. 입장료는 무료.北投溫泉博物館, Beitou Hot springs Museum, 베이터우온천박물관. 입장료는 무료.


1층은 목욕탕, 2층은 다다미방과 기념품샵으로 볼거리가 구성되어 있다. 목욕탕의 공간을 살리면서도, 그 안에서 체험할 거리들을 야무지게 만들어놓았다. 베이터우 온천마을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도 적혀있었다. 영어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라 신나게 읽어봤던 기억이 있다. 새로 알게 된 단어도 있고.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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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욕탕 의자에 앉아서,  ② 다다미방에서,  ③ 2층 테라스에서.


그리고 여기서 정말 사진을 많이 찍었다. 홀로그램(?)을 이용한 사진 스폿이 꽤 많았다. 욕탕 의자에 앉으면 내가 보이고, 큰 욕탕 안에 들어가면 내가 목욕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방문객이 많이 없었다면, 옆에 바구니와 타월을 들고 진짜 목욕하는 것처럼 찍었을 거다. 내가 사진 찍는 걸 지켜보고 웃으면서 따라 하는 분들도 있었다. 모르는 사이지만 서로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박물관에서는 한 시간 넘게 있었다. 박물관 같은 공간을 좋아하는 건 맞지만, 여기 규모에 비해 꽤 오래 머물렀다. 그만큼 재미있었나 보다.


지열곡 입구에 있는 인공 우물(?). 모두가 여기서 손을 씻고 있었다. 물이 미끌미끌했다.지열곡 입구에 있는 인공 우물(?). 모두가 여기서 손을 씻고 있었다. 물이 미끌미끌했다.


걷다 보니 지열곡에 도착했다. 기분 나쁘지 않은 유황 냄새와 자욱한 연기.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아이들은 코를 막고 꺄르르 뛰어다니던데 귀여움을 표현하고 싶었던 걸까? 베이터우 온천마을은 라듐 유황이 가득한 곳이라고 들었다. 그만큼 달걀노른자 냄새가 정말 가득했다. 바람이 부니, 수증기가 함께 따라왔다. 유황 냄새가 코 끝을 매캐하게 자극했다. 지열곡을 보고 있으니 갑자기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가 생각났다. 선녀들이 있던 선녀탕에서 이렇게 수증기가 올라왔던가? 왜 그렇게 기억이 나지? 무튼, 그래, 보통의 연못은 이렇게 연기가 자욱하지 못할 거야. 선녀들은 100도가 넘다 못해 펄펄 끓는 물에 몸을 담그고 있었나? 대단한걸? 선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 누가 지열곡에서 이런 엉뚱한 생각들을 할까.


地熱谷, 지열곡.地熱谷, 지열곡.


지열곡은 꽤 컸다. 한 바퀴를 크게 돌았다.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을 보며, 뭔가 말할 수 없는 신비로움이 느껴졌다. 이렇게 큰 연못에서 끊임없이 수증기를 내뿜고 있으니 현실 세계가 아닌 것 같이도 느껴졌다. 그리고 마을에 몸을 담글 수 있을 관광용(?) 온천이 있다고 했지만, 생리 중인 나는 온천에 몸을 푹 담글 수 없기에 그 방향으론 걷지 않고 아까 선택하지 않은 큰길들을 따라 내려왔다. 


地熱谷, 지열곡.地熱谷, 지열곡.


사진에 남아있진 않지만, 베이터우 공립도서관도 보았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몇 위에 올라있다고 한다. 안에 들어가서 휴식을 취하며 가져온 노트를 보고 싶었는데, 여기저기 살펴봐도 도저히 출입구를 찾을 수 없어 포기했다. 그리고 내려오면서 아까 가방에 잘 챙겨둔 동파육 버거를 꺼냈다. ...와, 이 요물 같은 것! 빵이 되게 달콤했다, 그리고 기름은 다행히 굳지 않았다. 아마 빵이 다 흡수하지 않았을까 싶다. 버거 안의 동파육은 역시 입 안에서 으스러졌다. 너무 맛있었다! 동파육 덮밥보다 더 맛있었다! 식어서 느끼하지 않을까, No. 비계가 따로 놀진 않을까, Nope! 오히려 식어서 단맛이 잘 느껴진 것 같다. 식었기 때문에 기름이 뚝뚝 떨어지지 않았던 것 같다. 와, 이 글을 쓰면서도 특유의 단맛이 생각난다. 또 먹고 싶다!!


구매한 지 4시간이 지난 일갑자손음 동파육 버거. 환상의 단맛과 질감!구매한 지 4시간이 지난 일갑자손음 동파육 버거. 환상의 단맛과 질감!


길거리에서 즐거운 미식을 하면서 신베이터우 역을 지나 조금 내려간다. 나의 목적지는 푸싱공원 족욕탕. 여기는 시민들에게 무료로 개방되고 있는 족욕탕이다. 생리하면서도 온천을 즐길 있는 방법은 족욕이다. 공원에 들어가니 시끌시끌하다, 도착했구나. 하지만 순간 당황했는데, 온도가 다른 3개의 족욕탕이 운영된다고 알고 있었는데 하나만 운영되고 있었다. 하나의 족욕탕에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 있으니 내가 들어갈 자리가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주변에서 어슬렁어슬렁 살피고 있으니, 어르신이 저기에 자리 있다고 손짓으로 알려주었다. 나는 감사의 눈빛을 보내고, 오픈된 사물함에 가방을 넣고, 바지를 허벅지까지 걷은 발을 씻고 나서 족욕탕에 들어갔다. 족욕탕치고는 꽤 깊다. 온천수가 170cm의 키에도 거진 허벅지 이상을 덮을 정도의 깊이였으니. 


자리 잡고 앉았다. 허벅지가 뻘겋다. 저만큼이나 물이 깊어, 키가 작은 분들은 엉덩이 끝까지 물이 닿았다.자리 잡고 앉았다. 허벅지가 뻘겋다. 저만큼이나 물이 깊어, 키가 작은 분들은 엉덩이 끝까지 물이 닿았다.


다리를 담그고 있으니 스멀스멀 열이 올라온다. 경량패딩 조끼를 벗었다. 다행히 가운데 섬(?) 같은 곳에 자리를 잡아 섬 위에 옷을 올려둘 수 있었다. 니트도 벗어 몸에 걸쳤다. 몸이 노곤노곤해지니 살 것만 같았다. 족욕탕 안에는 다 검은 머리였지만, 모두 현지 사람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제일 영-했다. 젊은이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수영복 바지를 입은 분들도 많았다. 그들은 짐이 별로 없었다. 동네주민들인 것 같았다. 물에 누군가 들어오면 반갑게 인사하고 이야기를 주고받는 걸 보니. 여긴 복덕방 같은 역할도 함께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가운데 섬이 제법 크다. 덕분에 각종 짐을 올려둘 수 있다. 무료 족욕탕이 있는 이 동네가 너무 부럽다!가운데 섬이 제법 크다. 덕분에 각종 짐을 올려둘 수 있다. 무료 족욕탕이 있는 이 동네가 너무 부럽다!


푸싱공원에 노란 머리의 외국인 세 명이 들어왔다. 사람들로 꽉 차 있는 족욕탕에 그들은 구경만 하다 떠났다. 완전 나, 럭키걸이었잖아?! 40분 정도 지났을까, 나가고 싶진 않았지만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어 족욕탕을 나왔다. 내가 나간 자리에는 금세 다른 사람이 앉았다. 


정말 야무지게 익은 다리. 그러고 보니 물은 몇 도였을까?정말 야무지게 익은 다리. 그러고 보니 물은 몇 도였을까?


이때가 오후 3시 정도 되었던 것 같다. 어두컴컴한 길을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아주 딱 맞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슬슬, 또 다른 야시장으로 갔다. 오늘은 스린 야시장. 야시장에 도착하니 4시가 조금 넘었다. 아직 전부 개점하지 않아 야시장은 조용했고, 빛이 없어 어두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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士林夜市, 스린 야시장에서 즐긴 세 가지의 먹거리.


역을 나오자마자 보이는 지파이 판매점. 지파이를 튀기고, 숯불에 구운 뒤 양념을 발라줬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금방 구매할 수 있었다. 이 지파이는 짭짤하면서도 바삭했다. 하지만 양념 때문에 겉을 감싸준 종이가 금방 눅눅해져 먹기가 힘들었다. 지파이를 먹으며 야시장에 도착했는데, 또 다른 지파이 가게가 보였다. 내가 구매한 곳보다 NT$10이 더 저렴했고, 크기도 더 컸다. 그리고 따로 양념을 바르지 않아 먹기에도 편해 보였다. 아쉽다, 혼자가 아니라면 저것도 샀을 텐데! 


야시장을 쓱 돌아본 뒤에 먹어보고 싶던 핫도그를 샀다. 샹창(香腸)이라 불리는 대만식 소시지. 찾아보니, 향기로운 창자 혹은 향기가 나는 창자라고 직역된다. 허허. 나는 찹쌀밥에 샹창을 감싸주는 핫도그 형식의 것을 구매했다. 밀가루가 아닌 찹쌀이 소시지를 감싸고 있었고, 후춧가루를 추가로 뿌렸다. 샹창은 씹는 순간 톡하고 터지는 식감과 특유의 향신료 향, 많이 달지도 짜지도 않은 맛이 조화를 이뤘다. 거기에 찹쌀밥은 쫀득한 식감을 더해 먹는 재미를 더해주었다. 순삭 할만한 맛, 하지만 딱 하나로 만족했다. 먹고 싶은 것이 하나 더 있었고, 내 손에는 아직 양념 지파이가 있었으니까.


야시장을 나와 역으로 가는 길에 있는 곳. 왕자치즈감자라고 알려진 곳이다. 이것저것 다 넣은 No.1 메뉴를 골랐다. 삶은 감자를 반으로 쪼개 콘옥수수, 참치, 파인애플, 삶은 달걀, 파프리카, 베이컨 등을 모두 넣은 뒤 녹은 치즈를 가득 얹어줬다. 치즈를 얹기 전까지는 건강한 음식으로 생각했는데, 치즈를 넣는 양을 보니 전혀 그리 보이지 않았다. 남는 장사일까 생각이 들 정도로. 그리고 한 입 먹는 순간 알았다. 아, 치즈가 묽구나? 물을 타서 녹인 치즈의 맛이 났다. 더 느끼했고 밸런스가 맞지 않았다. 치즈는 국물처럼 가득했고, 치즈 속을 헤집어 건더기(?)들만 골라먹었다. 그래도 그 느끼함에 다 먹질 못했다. 유명세만큼 이 따라와 주질 못해 아쉬운 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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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음식이 혈당스파이크로 변하는 순간.





포기한 A는 단수이. 

자전거도 타고, 카스텔라도 먹어보고 싶었지만. 

자전거를 타려면 요트를 타고 섬으로 들어가야만 했기에.

그렇다고 카스텔라 먹자고 단수이까지 갈 정돈 아니었으므로.

대만 영화에 대한 무엇이 없기에 포기하긴 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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