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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준수 Jul 10. 2021

‘살맛 난다’와 자유의지

당신에게 들려드릴 '오늘의 맛' #7

‘죽을 맛이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죽지 않는 것처럼 ‘살맛 난다’고 하는 이들은 살만한 걸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목구멍이 꽉 막힌 느낌이 들 때 시원한 사이다가 필요하지만 요즘은 사이다를 마셔도 답답함이 해소되지 않는 기분이다. 소화제가 필요한 걸까.   

  

무언가가 지독하게 풀리지 않거나 안 좋은 일만 이어질 때 ‘죽을 맛’이 느껴진다. 입맛도 뚝 떨어지고 재미도 없다. 단어는 맛을 표현하고 있지만 정작 내 몸에선 기운이 빠진다. 죽고 싶진 않지만 죽을 생각은 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각을 해야 하지만 답이 없으니 생각하고 싶지 않은 그런 상황에 맞닿뜨린다. 살아서 움직이지만 죽은 거나 다름없는 좀비처럼 말이다.     


우리는 내 마음대로, 스스로 바라는 대로 일이나 삶이 흘러가지 않을 때 두려워한다. 철학에서 말하는 ‘자유의지’를 침범받는 느낌에 불안해하는 것일 수도 있고 자신의 무능력을 탓하며 자괴감에 빠진 것 일수도 있다. 이유야 어찌 됐든 손아귀에서 돌아가는 판세를 읽지 못해 조급 해지는 마음인 건 분명하다.     


그렇다면 ‘살맛’은 무엇일까? 난 항상 그래 왔던 대로 국어사전을 펼쳤고 ‘세상을 살아가는 재미나 의욕’이라고 풀이되어 있는 부분을 확인했다. 사전을 보고 한동안 웃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먹는 걸 좋아한다. 안부 인사를 할 때도 “밥 먹었니”, “나중에 밥 한 번 먹자”라고 하니 삶도 ‘맛’으로 표현하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하게 느껴진다. 삶에서도 맛이 느껴져야 하는데 숟가락을 들 힘도, 의지도 없어진 의욕 제로의 상태에서 삶 대신 죽음을 떠올리는 건 자연스러운 이치일 것이다.      


의욕과 재미를 앞세워 ‘살맛’을 추구하는 이들은 자신감에 차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들은 계획한 바를 이어가는 모습에 만족하기도 하고 착착 진행되는 일을 보며 자신의 능력에 감탄할 수도 있다. 내 삶의 주인공이 온전히 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밥맛도 좋게 느껴진다. 더 열심히 일하고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눈앞에 있는 밥 한 공기를 뚝딱하고 해치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맛’은 우리가 생각하는 자유의지가 아닐 수도 있다. 완벽하게 제어한다고 여기지만 결국 내 기분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타인의 휘둘림에 흔들리는 나약한 감정 상태일 수도 있다.  

    

영화 <매트릭스>에 나오는 예언자이자 인간의 감정을 분석하는 프로그램 ‘오라클’은 주인공 네오에게 쿠키를 선물한다. “쿠키는 너무 좋아. 참 맛있거든”. 그의 권유에 네오는 쿠키를 집어 들지만 시리즈가 거듭할수록 쿠키에 회의적인 모습을 보인다.     

 

‘내가 모든 걸 움직인다고 여겼던 자유의지마저 프로그래밍된 변수에 지나지 않다면 쿠키 역시 내가 느끼는 맛이 아닐 테니까’     


그리고 그는 눈앞에 펼쳐진 답안지를 치우고 전혀 다른 선택지를 고른다. ‘맛’에 흔들리지 않고 맛 너머의 무언가를 찾은 셈이다.      


‘그래서 자유의지를 버리라는 건가요? 살맛 난다는 얘기 하면서 뭐 이리 복잡한 부분까지 얘기하는 거죠?’라고 묻는 분들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흠... ‘죽을 맛이다’고 말하는 사람이 자살하지 않고 ‘살맛 난다’라고 하면서도 우울할 수 있는 게 우리의 삶이라면 굳이 자유의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무방하지 않을까. 스스로 만들어 놓은 감정의 체스판이나 주변 환경에 의해서 좌우되는 OMR카드를 자유의지로 생각할 바에야 차라리 마음속 나침반 하나를 들고 안갯속을 헤쳐나가는 게 더 살맛 나는 일일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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