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스페이스 현장 이야기.
"조직문화, 6개월만에 바뀔 수 있습니다."
"정말? 에이~ 한국에서는요?"
그렇습니다. 그럴만 합니다. 조직 문화라는게 얼마나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되는 것인데 6개월만에 바뀐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OpenSpace Beta 번역서를 준비하고, 주위에 관심있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얻게 되는 피드백이 있습니다. 약간의 정도 차이는 있지만 "정말 6개월만에 변화가 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OpenSpace Beta 번역서는 미국, 유럽에서 저자들이 효과성을 검증한 내용들을 사례와 함께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방법론 자체에 대한 의구심보다는 '우리 나라에, 우리 조직에 맞겠는가?' 하는 의구심이 더 크리라 생각합니다. 외국에서는 성공했는데 한국에서는 제대로 되지 않은 경우, 그리고 저 업종에서는 성공했는데 우리 업종에서는 성공하지 못할거라는 생각이 그 의구심의 원인일 것입니다. 그러나 누군가의 의구심을 구태여 해소해 주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변화는 다른데서 성공한 방법을 가져왔다고 무조건 성공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조직 차원의 변화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변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절박함입니다. 이 절박함에 관련한 메시지를 줄 수는 있지만, 정작 피부로 느끼고 변화를 해야겠다는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조직의 리더입니다. 리더를 설득해서 변화를 하도록 한다는 접근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실제로도 그렇게 해서 변화가 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변화를 결심했다면 'HOW'의 차원에서 우선 검토해 볼 수 있는 검증된 방법이 있습니다. 과연 그러한지, 저는 이 글에서 사례를 통해 말해보겠습니다.
우선, OpenSpace Beta라는 방법은 6개월로 기간을 한정해 놓고 변화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관련된 전체 설명은 이전글을 참고. https://brunch.co.kr/@peterhan365/6)
이 개념을 정립하여 책을 펴낸 Silke Hermann, Niels Pflaeging, 그리고 이 개념의 원천이 되어준 OpenSpace Agility의 Daniel Mezick 은 이미 유럽, 미국에서 십수년에 걸쳐 현장에서 검증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오픈스페이스라는 워크샵의 형태는 1980년대에 Harrison Owen 이 만들어 낸 이래로 40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검증을 거쳐온 접근방식입니다. 한국에서는 '6개월의 과정인 OpenSpace Beta'의 형식으로는 실행된 적은 아직 없습니다. 그 대신 저는 조직문화에 관련된 주제로 1Day OpenSpace Workshop을 했던 경험들을 나누고자 합니다. 저 말고도 이미 한국에서 OpenSpace Workshop을 진행한 전문가는 여럿이 계신 것을 알고 있으며, 그에 대해 제가 들었던 피드백, 장단점은 뒤에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조직문화가 주제이기 때문에 회사이름을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겠습니다. 이 회사는 제조업, 보수적, 근속연수가 길다는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한국 기업인데 포춘 500대 글로벌 기업에 M&A 되었습니다. 기존 조직문화는 매우 보수적 성격인 반면, M&A를 한 글로벌 회사는 많은 변화를 추구하는 성격이어 이에 충돌이 적지 않았습니다. 다만 해당 조직의 리더가 매우 적극적으로 조직 문화의 변화를 지지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해당 조직의 리더가 강한 변화 의지를 갖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단지 '변화가 중요하지' 라고 말하는 수준이 아니라 수많은 경영상의 고려사항 중 '조직문화'를 우선순위에 두는 것입니다. 사실 이는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당장의 매출, 순익이 떨어지면 안되기 때문에 이에 직접 연관되는 항목들부터 챙기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조직문화는 물론 가장 근원이 되는 중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긴급도가 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늬만 변화'로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행히 이 조직에서는 리더가 변화의 중요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프로젝트를 의뢰한 한국 본사의 담당자분도 적극적으로 돕고자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3년간의 중장기적이고 포괄적인 플랜이 있었고, 각 연차별로 중심이 되는 변화의 컨셉도 있었습니다. 실행상의 접근 방식 자체는 어쩌면 단순했습니다. 간단히 말해 CA (Change Agent) 를 선정하고, 워크샵을 통해 조직 내의 이슈를 논의하고, 해당 연차의 변화 컨셉에 맞춘 교육도 별도로 진행했습니다. 여러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1년차 CA들이 교육받은 내용을 현장에 적용하는 노력을 지속하면서 소기의 성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2년차에도 유사한 형식으로 워크샵과 2년차 컨셉에 맞는 교육을 진행했습니다. 2년차에는 다시 새로운 CA를 선발하여 진행을 했습니다.
어느덧 2년의 시간이 흐르고 3년차가 되었습니다. 사전 미팅을 하는데 담당자분의 말을 들으니 1,2년차 대비 크게 달라진 것이 있었습니다. CA의 70%이상이 자발적으로 신청을 했습니다는 것이었습니다. 더 의미가 있었던 것은 그분들이 자발적으로 신청한 이유중 하나가 1,2년차 CA들의 노력, 시행착오, 성과를 보아왔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CA를 기꺼이 자발적으로 3년 연임한 분의 피드백은 그런 변화를 대표한다고 생각되었습니다.
"CA를 하면서 나 스스로가 변화하고 발전했습니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변화가 지속되려면 그 주체가 지치지 않아야 합니다. 그 주체가 지치지 않으려면 속도조절, 업무량조절, 환경조성 등이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 볼 때 '변화와 성장의 즐거움'이 있다면 변화가 지속될 수 있지 않을까요? 원래 하는 업무에 CA활동이 더해지는 것인데 '보람과 즐거움'이 없다면 결코 쉽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이렇게 좋은 환경이 갖춰져 있는데 OpenSpace Workshop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즉시 담당자분에게 이야기를 했고 흔쾌히 동의를 얻었습니다.
애초에 이 조직에서 우려했던 것은 전형적인 상명하복의 문화였습니다. 문화라는 것은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되며, 보이지 않지만 모든 구성원의 행동양식에 영향을 줍니다. 보수적이지 않으려 노력해도 마음처럼 쉽게 바뀌지 않을 수 있는 것이 문화입니다. 이번 3년차 변화 과정에 새로 함께하게 된 CA (Change Agent) 들은 어떨까요? 과연 '스스로 이슈를 제기하고, 스스로 논의하며, 심지어 스스로 실행을 책임지는' 이 방식이 통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퍼실리테이션을 했던 제가 부끄러웠던 사례를 하나 고백하겠습니다. 각자가 이슈를 제기하고 자유롭게 토의하는 중이었습니다. 세 명의 인원이 담배를 가지고 바깥으로 나갔습니다. 10분이 넘어도 (강사로서의 습관으로 10분은 민감합니다.) 안오는 듯 하여 바깥으로 나가 보았습니다. 나갈 때의 솔직한 생각에는 '딴짓하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조금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가보니 그 세분은 열띤 토론을 하는 중이었습니다. 게다가 나중에 들어와서는 회의 내용을 잘 정리했을 뿐 아니라 자발적 실행계획까지 세웠습니다. 철학과 믿음이 있어야 하는 퍼실리테이터 스스로에게는 부끄러운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매우 감사한 순간이었습니다.
OpenSpace Workshop은 주제의 적정성, 전체 진행 시간 준수, 토의의 밀도, 자발성, 실행과의 연계라는 측면에서 모두 만족스러웠습니다. 물론 중간중간에 막히는 부분은 HR담당자 분과 퍼실리테이터 (필자)가 다니면서 '민원 해결사'와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가끔 경험이나 지식을 필요로 하는 형식의 질문에 대해 의견을 제공하기는 했지만 거의 모든 내용을 참가자들이 이끌어 갔습니다. 전체 종료전 1시간동안 진행된 각 부문의 최고 책임자들로 구성된 운영 위원회 (Steering Committee) 멤버들과의 미팅에서도 참가자들은 적극적으로 의견 개진을 했습니다. 물론 이 미팅 후에는 매우 중요한 숙제가 남아있습니다. 1년간의 실행과 성과 검증이 되어야합니다. 이 부분까지 잘 완결이 되어야 이 워크샵이 의미있는 것이 될 것입니다.
실행과 성과 검증이 필요하겠지만, 워크샵 자체만 놓고 보았을 때 제가 퍼실리테이터로서 느끼고 생각한 부분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1. 이슈 자체를 참가자가 낸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 이전에는 이슈가 주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슈 자체를 참가자가 낸다는 것은 말그대로 참가자를 진짜 '어른 대접' 해준다는 것입니다.
2. 사람들은 누구나 '잘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 XY이론에도 해당되는 것이지만 사람들 마음은 그렇습니다. 다만 시도가 실패해서 상처나 좌절이 있는 경우, 다른 개인적인 이슈가 있는 경우는 안그렇게 보일 뿐입니다.
3. 역시 주최자의 진심은 중요합니다. - 워크샵 동안에는 리더가 함께하지 않도록 배려했습니다. 혹시 발언의 자유도가 제한될까 우려되어 설정했던 것입니다. 리더가 그 자리에 있지 않았지만 '우리 조직의 리더가 진짜 변화를 원하는구나' 하는 확신은 참가자의 태도에 매우 큰 영향을 줍니다.
4. 논의가 유의미하면 실행 책임도 기꺼이 지려 합니다. - 물론 참가자의 성향이나 환경도 영향을 주겠지만, 논의 자체가 유의미하면 자발성이 훨씬 높아집니다.
5. 참가자들의 이동은 조금 더 격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 한국인은 이 무리에 있다가 저쪽 무리로 이동하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배신?'이라 느끼는 경우가 있습니다. 따라서 강제는 아니지만 공지하는 식으로 '이동해 달라'는 요청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6. 진행하다보면 통합되는 이슈들이 참가자 스스로의 눈에 보인다. - 리더, 담당자, 진행자의 눈이 아닌 '참가자의 눈'에 전체 이슈의 흐름과 통합성이 보인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자신이 해결하고 있는 일이 전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게 되면 실행 의지가 높아지게 됩니다.
이 한번의 성공적 워크샵이 모든 것을 대변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변화 과정의 결과를 모니터링하고 피드백을 받아가면서 정리를 해볼 계획이며, 이를 정리하여 나누고자 합니다. OpenSpace Beta의 저자인 Niels Pflaeging은 책과 강연에서 '문화적 차이는 큰 영향을 주지 않더라'는 언급을 했습니다. 사람들의 본질적인 자발성은 리더의 변화의지, 적절한 환경이 있다면 예외없이 보여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저도 그 관점에 동의합니다. 다만 앞으로 그것을 현장에서 지속 경험하고 증명하고 나눌 필요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오픈스페이스 워크샵은 대부분의 경우 진행 과정과 결과물에 대한 만족도가 높습니다. 참가자들이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니까요. 다만 과정에서의 열의와 좋은 결과물에 걸맞는 실행이 따르지 못한다는 단점이 종종 지적됩니다. 워크샵 이후에 자발적 실천에만 맡겨서는 '바쁜 일상 업무'에 치여 우선순위가 밀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조직차원의 제도와 시스템이 뒷받침을 해줄 필요가 생깁니다. 이 뒷받침 해주는 시스템을 6개월이라는 명확한 기간을 설정하고 각 단계별로 매뉴얼을 제공하는 것이 오픈스페이스 베타라고 보면 됩니다.
다음 편에서는 '조직 문제해결과 리더십'을 주제로 러닝 퍼실리테이션 형식으로 진행한 오픈스페이스 사례를 나눠 보고자 합니다.
한창훈 커뮤니케이션 코치.
“이 저작물은 CC-BY-SA-4.0으로 출간된 오픈소스 문화 기술인 OpenSpace Beta에서 응용되었으며, www.OpenSpaceBeta.com 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픈스페이베타의 원저자는 Silke Hermann , Niels Pflaeging 입니다.
This work is derived from OpenSpace Beta, and open source culture technology published under the CC-BY-SA-4.0 licensed and found here www.OpenSpaceBeta.com. Original authors of OpenSpace Beta is Silke Hermann and Niels Pflaeg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