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는 붕~ 떠있고, 행동은 따로 노는 조직에 필요한 '가치 내재화'
저는 다양한 업종의 기업을 방문합니다. 강의와 코칭을 하는 직업의 혜택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방문하기 전에 그 회사에 관련된 자료를 보는데, 아무래도 홈페이지를 처음 보게 됩니다. 최근에 약간의 변화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홈페이지 전면에는 회사의 비전, 미션, 가치 관련된 키워드가 나와 있습니다. 주요 키워드를 보면 이렇다.
열정, 전문성, 창의성, 도전, 팀워크, 사업보국, 성실, 진심, 고객만족.
하나 같이 반박하기 힘들 정도로 필요한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키워드가 정말 조직에서 잘 반영되고 있는걸까요? 한국의 조직 대부분은 이런 키워드의 '현실화 정도'에 있어 세가지 단계를 거쳐왔다고 본다.
-단연 눈에 띄는 키워드는 '사업 보국'입니다. 그도 그럴것이 우리나라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을 통해, 배상금도 아닌 '보상금'의 형태로 일본에게서 자금을 받아 경제를 일으켰습니다. 미국의 지원도 많이 받았지요. 어렵게 마련한 자금으로 시작한 사업, 망하면 끝장이라는 절박함이 있었습니다. 창업주와 리더들의 비전과 그에 대한 선언은 비장했습니다. 리더의 호소를 들은 조직의 구성원은 함께 절박함을 나누며 '성공과 성장'에 매진했습니다. 마침 한국은 중후장대 산업, 인프라 구축 관련 산업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장기적인 비즈니스였기에 일관성이 필요했고, 따라서 오래 근무한 사람의 지식과 경험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카리스마 있는 리더가 '내가 책임진다! 밀어붙여!' 하면 구성원들이 '큰형님' 말씀을 따라갔고, 경험이 많은 '선배 형님'의 가르침을 배우며 따라갔습니다. 그 결과 개인은 보너스를 받았고, 조직은 성장했고, 나라 경제는 튼튼해졌습니다. 무리하게 야근을 해도 나라, 기업, 나의 가족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보람있는 일을 한다는 자긍심이 있었습니다. 새벽까지 회식을 해도 모두가 하나로 뭉치는 '가족같은 회사'의 에너지를 재확인 하는 유의미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침 일찍 출근을 하여 서로의 '의지력'을 재확인 하고, 기분 좋아진 부장님이 '다들 아침 해장국 먹으러 가자!' 하면 즐겁게 따라갔다. 조직에서 띠를 두르고 외치던 '사업보국, 열정, 팀워크, 하면 된다' 등은 대부분의 조직에서 상식으로 통용되었던 시대였다고 하겠습니다.
-1997년 IMF 금융위기는 많은 것을 바꿔놓았습니다. 외국자본의 금융시장 개방은 물론 '경영 효율화'를 위한 제도들이 속속 도입이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금융업계의 파산으로 인한 개인의 재산 손실, 믿었던 회사가 냉정하게 내쳐버리는 '정리 해고' 등을 경험하면서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굳게 믿어왔던 가치가 한순간에 무너져 내려 버린 것입니다. '가족같은' 회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고, '이 회사에 뼈를 묻겠습니다'는 말은 한 번 해보는 농담이 되어 버렸습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 개인이, 조직이 지금껏 믿고 있던 가치를 배신 당하는 현실은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 시점부터 서서히 '각자도생', 개인이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는 개념들이 퍼져가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혼란이 생기지요. 깔끔하게 2단계로 넘어온 것이 아니고 1,2단계가 혼재하게 된 것입니다. 그 혼재하는 상황의 가장 불편한 버전이 바로 '이상과 현실의 괴리'였습니다. 회사와 조직에서 선언하는 비전, 미션, 가치는 예전 그대로인데, 각자 개인이 경험하는 '현실'은 너무도 다르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달리 말해 회사는 '직원 여러분을 평생 가족으로 모십니다'는 개념의 연장선에 있는 비전, 미션, 가치 키워드를 표방하는데, 현실에서는 그와는 다른, 아니 상반되는 일들이 반복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람은 믿었던 것을 배신할 때 더 충격을 받습니다. 그리고 더욱더 냉소적이게 됩니다. 변화하겠다고 열심히 외치고 나서 예전과 똑같아 지면 사람들은 변화에 냉소적이게 됩니다. 그럼에도 계속 변화하자고 외쳐대니 '변화 피로도' 만 쌓입니다. 회사가 '지금은 비상경영 상황입니다'라고 하면 사람들은 '언제는 비상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회사와 경영진이 억울하게도 양치기 소년이 되어있습니다. 그러니 2단계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생겨나는 시기라 하겠습니다.
4차 산업의 키워드는 '연결'입니다. 모든 인간, 사물, 시스템이 연결됩니다. 여기에는 아주 많은 의미가 들어있는데, 그 중 눈에 띄는 것은 '정보의 유통'입니다. 여기 두가지 상황을 보겠습니다.
하나, 권력자의 일탈이 쉽게 알려지는 세상으로 가고 있습니다. (물론 중국은 좀 더 두고 볼일이지만요.) 예전 같으면 언론, 기업 홍보팀 등에서 힘을 쓰면 웬만한 정보는 숨기거나 감출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형식의 '통제'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둘, 기존의 지식과 경험이 불필요해지는 경우가 생깁니다. 빠른 변화 때문에 기존의 지식과 경험이 낡은 것이 되어 버리는 것이죠. 이런 상황에서는 기존의 지식과 경험이 오히려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이 두가지를 합쳐서 기업 조직에 적용해 보겠습니다. '윗사람'의 권위와 통제가 이제 잘 작동하지 않습니다. '윗사람'의 지식과 경험이 현실과 안맞는 경우가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대부분이 피부로 느끼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지식과 경험을 가진 '윗사람'이 명령과 통제를 하는 시대가 저물고 있습니다.
그럼 당연히 생겨나는 질문이 있습니다. "회사는 굴러가야 하고 누군가는 이끌어야 하는데 어떻게 하라는거냐?" 단적으로 말하면 '명령과 통제'를 대신하는 키워드 '진정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저는 바로 이 지점이 윤정구 교수님의 '진성 리더십'이 말하는 핵심이라고 봅니다.
진정성 있는 가치 체계가 아니면 대체 무엇으로 조직을 움직이겠다는 것인가?
진정성이라는 것이 뭔가 도덕적 가치를 말하는 것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시점에서의 '진정성'이라는 키워드가 너무도 현실적인 단어로 느껴집니다. 물론 여전히 강력한 보상만 있으면 돌아가는 조직도 많습니다. 애자일을 말하지만 수직적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조직이 더 많은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인정합니다. 하지만 앞으로의 시대 변화를 생각해 보면, 적어도 '진정성'이라는 것을 경영상의 주요 키워드 목록에 넣어야 합니다. 이것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는 생각으로 말입니다.
실제로는 많은 조직에서 가치의 수립과 그에 기반한 행동향식을 체화 시키는데 많은 고민과 노력을 합니다. 그런데 그 노력의 방식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여기서 언급할 '알파'(Alpha) 방식은 위에서 아래로 (Top Down) 접근하는 것이고, '베타'(Beta)방식은 아래에서 위로 (Bottom up) 접근하는 것이라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각 방식에 장단점이 있으므로 내가 속한 조직에 어느쪽이 맞을지 생각하며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흔히 말하는 '회장님 말씀'이 작동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군대에서는 '사단장님 방문' 이후 사단장님의 지나가는 말씀 하나하나가 그대로 규정이 되기도 합니다. 회장님, 사단장님의 말씀에 토를 달아서는 안됩니다. 당연히 그 '지엄하신' 말씀을 지키느냐 아니냐에 따라 응분의 '상벌'이 따릅니다. 장점으로는 명확함과 일사불란함입니다. 회장님, 사단장님의 말씀이 있으면, 관련 부서에서 문서화를 한 후 다양한 경로를 통해 조직 전체에 알려줍니다. 제대로 알려지고 지켜지지 않으면 그 관련 부서가 먼저 문책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리더가 통찰, 혜안, 인격이 훌륭한 경우 조직이 매우 크게 성장합니다. 단점은 앞의 조건이 반대일 때입니다. 리더가 통찰, 혜안, 인격이 없는 경우이지요.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 또는 가치에 기반한 행동 양식에 대해 구성원들이 회의를 합니다. (물론 저는 그 회의에 최적회된 방법이 '오픈스페이스'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이미 회사의 가치가 있으므로, 그것이 각자의 현업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논의한 후 그에 따른 '행동 양식' (원칙) 을 구체화하는 작업을 합니다. 조직의 현업에 있는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여 결정한 행동 양식 (원칙) 은 두가지 이유에서 지켜질 확률이 높습니다. 첫째는 사람들이 각자의 업무 현장을 고려해서 낸 현실적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이 적다.) 둘째는 구성원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제안한 과정을 거쳤기 때문입니다. 원칙이 구체화 되고나면 문서화를 하고 전체에게 배포합니다. 확정이 된 이후로도 구성원들이 제안을 지속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코칭제도를 보완해주면 더 좋습니다.
행동양식이 구체화 되었어도 내재화 즉, 실제적 적용이 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행동양식을 내재화하는 방식에서도 알파, 베타의 방식이 서로 다릅니다.
일단은 아침 조회, 사내 방송, 인트라넷, 별도 교육 등 많은 채널을 통해 지속적으로 교육합니다. 역시 이 방법의 장점은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정보 전달이 이뤄진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많은 조직에서 경험한 단점이 있습니다. 주로 정보 전달자가 '회사'이고 수신자가 '구성원'인 구조를 갖게 되어 내재화에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중간에 흐지부지 된다는 것입니다. 관련 부서의 인원은 피곤해지고, 회사의 예산 배분에 있어 점점 우선순위가 밀리게 됩니다.
자발적인 참여 과정을 통해 원칙 수립을 했기 때문에 적절한 후속 조치만 이루어 진다면 빠르게 내재화 될 수 있습니다. 행동 양식 (원칙)을 정하는 미팅 이후에도 '과연 우리는 그 원칙에 맞게 행동하고 있는지를 스스로 점검'하는 자리를 갖습니다. 그 형태는 애자일 조직에서 시행하는 '데일리 스크럼' 등과 같을 수 있습니다. 아침에 15분 내외의 짧은 미팅을 통해 우리가 가치에 걸맞는 행동을 하는지를 서로에게 묻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코치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코치는 행동 양식을 감시하고 교육하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돌아볼 수 있게 질문하고 상기시켜주는 존재로 활동합니다.
위에 설명한 '1.가치 확립 - 2.가치 기반의 행동 양식 (원칙) 확립 - 3.내재화' 의 3단계를 베타 방식으로 하고 싶다면, 검증된 방식이 있습니다. 오픈스페이스 베타가 이 모든 일련의 과정, 연관되는 시행착오와 해결책을 담고 있는데요 오픈스페이스 베타에서 말하는 '베타'는 '베타코덱스'라는 행동 양식 (원칙)입니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이해하셨겠지만, 베타코덱스는 얼마든지 우리 조직의 '행동양식'(원칙)으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굳이 명칭을 붙이자면 '오픈스페이스 + 우리조직 가치'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변화를 하고자 할 때 '벤치마킹'을 먼저 떠올립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혁신과 선도,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를 강조합니다. 명백한 모순이지요. 조직문화의 변화를 말할 때 '벤치마킹'을 떠올리는 것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불안하니까요. 그리고 한번 잘못되면 돌이키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구요. 그 불안감에 벤치마킹을 하려 시도합니다. 하지만 정작 다른 회사 사례를 보면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죠.
저기는 외국이니까, 저기는 업종이 그러니까, 저기는 직원들이 똘똘하니까, 저기는 창업주의 철학이 훌륭하니까 ...
오픈스페이스를 활용하여 조직을 바꾼다는 것은 외부의 어떤 사례를 믿는 것이 아닌, 우리 조직에 있는 구성원들을 믿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 없는데 오픈스페이스를 한다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글을 마치며 저는 오픈스페이스 워크샵의 사전 준비와 사후 평가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을 나누고자 합니다.
사전 준비할 때
"아~ 좋긴 한데, 그게 통제가 될까요? 말들을 안하면 어떡하죠? 회사에 대한 성토대회가 될까봐서요..."
워크샵을 마칠 때
"사람들이 평소와 다르네요. 그런 생각까지 하고 있는 줄은 몰랐어요. 그건 좋은 제안이네요"
조직의 구성원들이 카페에서, 포장마차에서, 담배 한대 피우며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의외로 그들도 많은 고민을 하고, 많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꺼내어 조직에 반영하는가의 문제이지 그들의 문제가 아닐 수 있습니다.
한창훈 (Peter Han) 피터의 커뮤니케이션
필자의 홈페이지
관련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1QObCMZx36M&t=7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