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비밀번호는 하나뿐

《들리지 않는 사람들의 말》 당신도 나를 지나쳤다

by 엘리킴


열쇠를 꺼내려다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멈췄다
어제 넣은 동전 두 개,
구겨진 영수증,
무언가를 잊어버린 것 같은 촉감


현관 앞 비밀번호 창은
오늘도 숫자를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 말 건네줄 일도 없는데
나는 늘 이 집에 조심히 들어선다


벽에 기대 앉은 조그만 의자,
전화기 옆에 붙은 약 복용 시간표
식탁 위엔 덜 식은 국 한 그릇,
수저는 나란히 놓여 있다


누군가 온다면
따뜻했을 이야기를 식지 않게
혼잣말로 데우는 저녁


뉴스 소리가 텅 빈 집안에서
벽을 두드리고
그 침묵에 묻힌 하루의 길이만
계속 길어진다


내가 아는 비밀번호는
이 집밖에 없다
외워둘 누군가의 생일도
기념일도 없으니


때로는
도둑이라도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조용히 물 한 잔 건네며
이야기라도 나눌 수 있다면


삐-삐-삐-삐
혼자만이 아는 번호
다시 열리는 문
문을 닫을 때마다
나는 조금 더 무거워진다










from. 독거 어르신

ChatGPT Image 2025년 7월 24일 오전 08_22_27.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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