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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 11시간전

[결혼 일기 #6] 너무 빠른 안녕

늘 '심장이 생기기 전에는 아기가 아니다. 세포다.' 또는 '조기 유산은 생리지'라고 말하고 다녔던 내가, 임신 후 심장이 생기기 전에 유산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임신을 중단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고,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유전적으로 약한 유전자가 수정이 된 거고, 세상에 태어났어도 몸이 아픈 상태로 태어날 수 있었으니 오히려 다행이다'라는 생각도 했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마음은 이상하게 아팠다. 유산. 내 안에 살아있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 


하루라도 빨리 수술을 하는 것이 좋다 하여 바로 다음날 수술을 진행했다. 모든 병원이 그런지 모르겠으나, 내가 다녔던 병원은 출산하는 장소에서 유산수술도 진행했다. 그래서 아기의 탄생을 기다리는 아빠들이 바라보고 있는 그 수술실로 내 두 발로 걸어갔다. 그리고 아기를 기다리는 다른 산모들 사이에서 대기를 했다. 부러웠다. 그리고 다음에는 아기와 함께 이 수술실을 나오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수술에 들어갔다. 수술은 금방 끝났고, 잠깐 쉰 다음 또 내 두 발로 수술실을 걸어 나왔다. 


유산 수술도 출산과 비슷하게 힘들 것이니 몸조리를 잘하라는 당부와 함께 엄마 집으로 갔다. 정말 신기하게 발목이 시렸다. 겨울 내내 발목이 시린 적이 없었는데, 몸의 변화는 참 신기하다. 엄마 집에서 푹 자고, 따뜻한 밥도 먹으며 일주일을 푹 쉬었다. 수술을 하고 나니 이상하게 슬프지 않았다. 오히려 약간 있었던 입덧이 사라지고 나니 컨디션은 더 좋아졌다. 신기했다. 


유산 후, 다시 찾은 병원에서는 수술이 잘 되었으니 아기 생각이 있으면 생리 주기가 3번 지난 뒤에 다시 시도해 보는 것이 좋다고 이야기해 주었고 나는 생리 주기가 일정하지 않으니 언제 다시 생리를 하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냥 그렇게 나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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