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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가 물어다 준 택배상자

까치가 된 택배기사

by 피터팬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대화는 안부와 걱정으로 채워진다.

가끔은, 함께 있을 땐 미처 챙기지 못했던 말들이

멀리 떨어져 있으니 오히려 더 자주 오간다.


같이 있을 땐

별것 아닌 농담이나 투닥거림으로

하루가 흘러가곤 했다.


이제는 통화를 시작하면

제일 먼저 안부부터 묻는다.


“오빠, 어디 아픈 데는 없지?”

“밥은 잘 챙겨 먹고 다녀?”

“날씨 추운데, 감기 걸린 건 아니고?”


생각해보면,

한국 사람에게 “밥은 잘 먹고 다니냐”는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자주, 더 쉽게 나오는

진심 어린 인사이자 걱정 같다.

이 질문을 한 번도 안 받아본 사람은

아마 드물지 않을까.


가끔

“그냥 대충 먹었어.”

툭 내뱉으면

며칠 뒤, 어김없이 집 앞엔 택배상자가 놓여 있다.


이럴 때면

아마 많은 사람이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요즘은 택배가 가족의 마음을 대신하는 시대니까.


“이게 뭐야?”

전화기를 들면 아내가 말한다.

“오빠, 그거 먹고 싶다고 했잖아. 그래서 보냈어.”

“반찬 걱정하지 말고, 든든하게 챙겨 먹어.”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볶음밥, 닭다리, 사과, 과일음료,

때로는 해동해서 바로 먹을 수 있는 국까지

택배 상자에 알차게 담겨 도착한다.


가끔은

“오빠, 청소는 제대로 하고 있어?

진공청소기 너무 오래된 거 아니야?”

며칠 뒤, 또 하나의 커다란 택배 상자.

진공청소기가 조용히 집 한구석에 자리 잡는다.


겨울이 오면,

아내의 걱정은 더 길어진다.

“올 겨울엔 많이 추울 거래. 혼자 있으면 더 춥지 않나?”

“오빠, 추운데 보일러는 잘 틀고 있어?

보일러비 걱정해서 안 트는 건 아니지?

애들도 있으니까 걱정 말고 따뜻하게 틀어.”


이런 걱정이 오고 나면

며칠 뒤,

현관 앞에는 큼직한 라디에이터 박스가 도착해 있다.


이렇게

집 앞에는 아내의 걱정이

택배 상자마다 차곡차곡 쌓여간다.


가장 자주 오는 건

역시 식품 택배다.

밥, 국, 다이어트식, 간식.


가끔은 내가 주문하지도 않았는데

집 앞에 박스가 또 하나 쌓인다.


“이게 또 뭐야?”

“오빠, 네가 뭐 먹고 싶다 그랬던 거,

그냥 한 번 더 보냈어.”


아내와 떨어져 살아보니

나는 이제 택배로 사랑을 받고,

걱정이라는 이름의 소포로 하루를 채운다.


이런 일상은

아마 많은 이들에게도

익숙할지 모른다.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잘 먹었어?”

“아프진 않아?”

라고 물어볼 수 없으니,


택배 상자에 담아

오늘도 또 한 번

아내의 마음이 도착한다.


서로의 곁을 오래 지키는 방식은

어쩌면 이렇게 평범한 하루에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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