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입김처럼

길 위의 두 사람

by 피터팬


아직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새벽.


반지하방은 눅눅했다.

곰팡내가 공기 중에 은은히 떠돌았다.


형광등 불빛이 희미하게 깜빡인다.

은주는 이불 속에 누운 동생을 내려다봤다.


아직 초등학생인 아이는 감기로 밤새 열이 올랐고,

작은 이마엔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은주는 조심스레 손을 얹어보았다.

미열이 남아 있었다.

잠든 동생은 꿈결처럼 중얼거렸다.


“조심해서 다녀와... 언니.”


은주는 웃지도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응, 금방 다녀올게.”


냉장고에서 도시락 봉투를 꺼내고,

약봉지도 가방에 넣었다.

작은 방 안, 비닐이 스치는 소리마저 크게 울렸다.


운동화를 꿰며 은주는 잠시 고개를 들었다.


습기 찬 벽지.

검게 번진 곰팡이.

작은 창문을 밀고 들어오는 새벽 안개.


문고리를 잡았다.

떠나기 싫은 마음이 손끝에 맺혔다.

하지만 갈 수밖에 없었다.


문을 열자, 습한 공기가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골목은 안개에 잠겨 있었다.

가로등 불빛이 뿌옇게 퍼졌다.


지상으로 올라가며 비에 젖은 시멘트 냄새가 코를 찔렀다.

어디선가 개가 짖었다. 멀리, 오래도록.


은주는 걸음을 옮겼다.

물기 밴 신발 밑창이 축축한 바닥을 스쳤다.

숨을 쉴 때마다, 서늘한 냄새가 목을 긁었다.


‘오늘도 무사히...’


은주는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하지만 왼쪽 가슴 어딘가가

서늘하게 식어갔다.


주차된 낡은 경차 앞에 선 은주.

차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차 안엔 아직도 어제의 퀴퀴한 냄새가 맴돌았다.


조수석엔 도시락 가방과 동생의 약봉지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은주는 핸들 위에 손을 얹고 잠시 숨을 고른다.


시동을 걸자,

낡은 차가 숨죽인 듯 떨렸다.

헤드라이트가 짙은 안개를 억지로 비집고 나갔다.


은주는 벨트를 매고 천천히 차를 움직였다.


새벽의 골목길.

가로등 불빛은 빗물 위에 번졌고,

창문을 스치는 빗방울 소리가 차 안을 조용히 두드렸다.


도로로 나서기 전, 백미러를 흘끗 봤다.

어둠 속에 묻힌 반지하방.


그녀는 다시 돌아보지 않았다.


클럽 – 몇 시간 전


테이블 위엔 빈 술병이 수북했다.

위스키, 샴페인, 그리고 녹아내린 얼음 조각들.


VIP룸 한켠, 친구들은 웃고 떠들었다.

돈 자랑, 차 자랑, 어제 만난 여자 얘기.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흔한 이야기들.


태오는 웃지 않았다.

멍하니 잔을 바라보았다.

술도, 대화도 모두 시끄럽기만 했다.


오늘따라 더 지겨웠다.

낮에 들은 이야기 때문이었다.


형은 새 사업으로 언론에 이름을 올렸다.

집안에서는 또 “넌 언제 정신 차릴 거냐”고 했다.


“형은 이걸 했다. 넌 왜 아무것도 못 하냐.”

“맨날 사고나 치고 다니고.”


잔소리, 비교, 실망.

태오는 들을 만큼 들었다.

뼛속까지 질렸다.


위스키 한 모금을 들이켰다.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독한 액체.

머리를 맑게 하기는커녕 더 흐릿하게 만들 뿐이었다.


“야, 태오! 오늘 왜 이렇게 조용해?”


친구 하나가 태오의 어깨를 툭 쳤다.

태오는 대답 대신 입꼬리만 살짝 올렸다.


‘어차피 다 내 돈 보고 붙어 있는 놈들이잖아.’


쓸쓸한 생각.

하지만 굳이 티 낼 이유도 없었다.

여기선 웃고 떠드는 게 룰이었다.


술병을 집어 들고, 병째 입에 가져갔다.

목구멍이 타들어가는 느낌조차 무뎌졌다.


오늘은, 그냥

모든 걸 끊어버리고 싶었다.


클럽 뒷골목 – 새벽


태오는 비틀거리며 뒷문을 나섰다.

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젖은 골목 위로 네온사인이 퍼졌다.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차 키를 꺼냈다.

덜덜 떨리는 손끝. 깊은 한숨.


검은 벤츠가 깜빡이며 반응했다.


운전석에 몸을 밀어 넣고 고개를 뒤로 젖혔다.

머리가 핑 돌았다.

눈앞이 흐릿했다.


‘어차피 집에 가봤자 똑같아.’


기어를 넣고, 가속페달을 밟았다.

시동이 걸리고, 엔진이 깨어났다.

은은한 진동이 몸을 타고 퍼졌다.


앞을 똑바로 노려봤다.

젖은 도로.

흐릿한 시야.


손끝에 힘이 빠지지 않았다.

가속은 멈추지 않았다.


검은 벤츠가 비 내리는 도심을 향해,

어둠 속을 가르며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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