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죽음은 지워지고, 어떤 사람은 지켜진다.
비가 멈추지 않았다.
짙은 안개와 함께 내리는 가느다란 비는 도로 위를 젖게 했고,
빛바랜 교차로는 마치 고장난 필름처럼 조용히 멈춰 있었다.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건 경차였다.
앞부분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찌그러져 있었고,
범퍼는 절반쯤 도로 위에 널려 있었다.
보닛은 구겨져 열려 있었고, 엔진 내부에서 희뿌연 연기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운전석 쪽 앞유리는 완전히 부서져
잔조각들이 계기판과 은주의 무릎 위, 바닥 매트 위에 흩뿌려져 있었다.
은주는 운전석에 그대로 기대 있었다.
고개는 한쪽으로 꺾여 있었고,
창문 틈으로 떨어진 빗방울이 그녀의 뺨을 흘러내리고 있었다.
눈은 감겨 있었지만, 미세한 움직임도 없었다.
이마는 터져 있었고, 말라붙은 피가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내린 듯
빗물과 섞여 뺨을 지나 턱 끝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시트 벨트는 어깨 위로 걸쳐져 있었지만, 가슴 쪽은 느슨하게 흘러내려 있었다.
조수석 바닥엔 도시락 봉투가 반쯤 찢겨져 있었고,
약봉지는 눌려서 젖어 있었다.
약의 이름이 적힌 작은 스티커가 반쯤 뜯긴 채 시트에 붙어 있었다.
차문을 여는 순간,
그 안에 남아 있던 열기와 함께
가벼운 타는 냄새, 피 냄새, 플라스틱이 녹은 냄새가 섞여 흘러나왔다.
반대편, 벤츠는
전면 유리가 거미줄처럼 갈라져 있었지만 완전히 파손되진 않았다.
충돌 직전 급브레이크가 없었는지, 타이어 자국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오히려 정면의 은주 차량을 통째로 밀어낸 듯
서로의 후드가 엇물린 채 엉켜 있었다.
태오는 에어백에 파묻힌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피범벅은 아니었지만, 이마에는 작게 긁힌 상처가 있었고
입꼬리에 핏자국이 번져 있었다.
핸들은 살짝 돌아가 있었고,
그의 손은 여전히 핸들 위에 걸쳐져 있었다.
허공을 응시하듯 떠 있는 눈동자,
피로에 절은 눈꺼풀이 자꾸 내려앉았다.
차 안 라디오에선 음악이 희미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깨진 스피커가 잡음을 섞어댔다.
탁. 찌직... 탁.
소리는 비에 젖은 밤과 맞물려 불길하게 울렸다.
도심은 여전히 조용했다.
지나가는 행인도 없었고,
단 하나의 창문도 열리지 않았다.
빛은 오직 신호등뿐.
빨간불은 교차로 위에 뿌옇게 번졌다.
빗물이 번들거리는 도로 위에
붉은색이 얼룩처럼 퍼져 있었고,
그 위로는 유리조각과 핏방울이 섞여 반사되고 있었다.
그 모든 장면이
마치 시간의 틈에 갇힌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
검은 SUV 한 대가 교차로 끝자락에 도착했다.
경광등도, 사이렌도 없었다.
엔진 소리는 낮게 깔렸고, 차창은 짙은 썬팅으로 덮여 있었다.
SUV가 정차하자
운전석과 조수석, 양옆 뒷문이 동시에 열렸다.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빠르게 내렸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지만
그들의 움직임엔 주저함이 없었다.
모두가 제 역할을 알고 있는 듯
자연스럽게 네 방향으로 흩어졌다.
한 명은 즉시 도로 가장자리에 드론을 띄웠고,
다른 한 명은 벤츠 앞을 살펴보며
범퍼 안쪽에 고정된 블랙박스를 손에 쥐었다.
또 다른 요원은 경차 쪽으로 다가가
은주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의 목소리는 무표정했다.
감정도, 놀람도 없었다.
“민간인 1명. 사망.
두부 외상 및 경추 손상 징후.
호흡, 맥박 없음.”
반대편 벤츠 쪽에선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대상자 의식은 흐림.
외상 없음.
피는 입안 점막 출혈로 추정.
상태 양호.”
그 순간,
SUV에서 마지막으로 내린 남자가 무전기를 들었다.
박준호.
경호팀장.
냉정함이 얼굴의 기본값인 사내.
그는 빗속에서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본 뒤
짧게 말했다.
“지점 확보.
프로토콜 A 발동.”
무전기 너머, 응답음이 짧게 지나갔다.
“확인.
화이트팀 호출 중.
도착 예상 11분.”
박준호는 곧바로 명령을 이어갔다.
“2조, 동쪽 골목 입구 막아.
경찰 도착 시간 몇 분?”
“신고 접수 4분 전.
출동 예상 3분 내.”
“속도 늦춰.
허위 뺑소니 신고 하나 넣고
경로 틀어.”
“확인.”
“3조, 주변 CCTV 회수.
카메라 있는 건물 리스트 바로 확인해.”
“인근 세 곳.
편의점, 커피숍, 공사장.”
“전부 확보.
블랙박스까지 포함해서 일괄 폐기.”
그는 마지막으로 무전기를 다시 들었다.
“화이트 리더 연결.
시나리오 등급 2-B 예상.
민간인 우발 사망, 심리 불안 자살 유도.”
무전기 너머로
기계음 섞인 짧은 응답이 돌아왔다.
“수락.
화이트팀 투입 후 확정 전환 가능.
현장 유지.”
박준호는 그제야 시선을 멈추었다.
붉게 번진 교차로,
피로 얼룩진 은주의 얼굴,
잔조각이 반사된 헤드라이트 아래
여전히 살아 있는 태오.
그는 낮게 말했다.
“이 사고는 자살로 처리된다.
기억해. 피해자는 살아 있어선 안 돼.
그리고 대상자는 상처받으면 안 돼.”
비는 점점 굵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도 그 말을 반박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