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의 시작

존재하지 않았던 구조

by 피터팬


2017년 6월 2일, 오전 7시 18분.


경북 밀산시 외곽, 제3산업단지 진입로.


박연수는 자전거를 타고 굽은 허리로 출근 중이었다.

도로는 축축하게 젖어 있었고, 전날 내린 비에 바닥은 미끄러웠다.


횡단보도를 지나려는 순간, 오른쪽에서 경유 트럭이 빠르게 달려왔다.

브레이크 소리가 짧게 울렸고, 연수는 핸들을 급히 꺾어 간신히 멈췄다.


트럭 운전자는 창밖으로 손을 휘저으며 소리쳤다.


“미쳤어요, 아저씨?”


연수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자전거를 밀고 인도 쪽으로 빠졌다.

헬멧도 없이 달리는 뒷모습에 짧은 한숨이 섞였다.


오늘, 뭔가 이상하다.


경북 밀산시 외곽, 제3산업단지 내 C동 창고.


박연수는 늘 그렇듯이 피곤한 얼굴로 출근했다.

어제 야간 근무가 끝난 건 오전 3시였지만, 그의 출근 시간은 다시 7시였다.

창고 사무실 안엔 벌써 커피 냄새가 퍼져 있었고, 박스 쌓인 틈에서 직원 몇 명이 가볍게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한 명이 연수를 보며 말했다.


“아침부터 사고 날 뻔했잖아요. 자전거로 왜 그리 빨리 달려요?”


“내가 뭐 빠르다고. 차가 덤비더라고.”


“오늘 일진 안 좋은 거 아냐?”


그 말에 누군가가 웃으며 덧붙였다.


“그러게. 아침부터 인상은 더 안 좋더라. 꿈자리 뒤숭숭했음 조퇴해요.”


연수는 말없이 사무실 구석으로 향했다. 오늘도 하루가 길게 느껴졌다.


“연수 씨, 오늘도 야근이래?”


“응. 이번 주는 계속 야간 이어서.”


“하... 사람 갈아넣는단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야.”


그는 웃지 않았다. 그저 서류 가방을 내려놓고 작업복 상의를 걸쳐 입었다. 손등엔 아직도 화상 자국이 완전히 아물지 않은 선이 남아 있었다.


“김반장은?”


“조기 퇴근했대. 어제 밤에 뭐 터졌나봐. 공장 쪽 정리하면서 욕 엄청 하고 갔어.”


무심한 대화들이 오가는 틈에서, 박연수는 창고 깊숙한 구역으로 들어갔다.

그가 맡은 구역은 폐기물과 분류되지 않은 물류가 뒤섞여 있는 곳이었다.


그날 오전 내내, 그는 리프트를 돌리고, 포장지 분류표를 정리하고, 형광등을 교체했다.


점심 무렵, 박연수는 창고 외벽에 기대어 혼자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습관처럼 담배 연기를 내뿜던 그의 눈에 익숙한 검은 밴 한 대가 들어왔다.

로고도 없고, 차량 등록 스티커도 없는 낡은 밴.


그 차는 창고 옆 B동 쪽에 잠시 섰다가 곧 다시 움직였다. 운전석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이 공장에 들어오는 사람 같지는 않았다.


연수는 담배를 반쯤 남긴 채 재떨이에 비벼 끄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무언가 메모할까 고민하다가 말고, 커피를 한 잔 뽑아 들었다.


사무실 안엔 여전히 시시한 농담과 지루한 바람소리만 맴돌았다.


그때, 창고 출입구 쪽에서 누군가 말했다.


"야, 아까 김반장 왔다가 뭐라 하고 갔대."


"오늘? 휴무 아니었어?"


"새벽에 잠깐 들렀다더라. 물건 배치 바뀐 거 보고 욕만 퍼붓고 갔대. 정리도 안 된 상태에서 왜 들였냐고."


박연수는 말없이 리프트를 멈췄다. 그는 그 새로 바뀐 배치의 첫 줄에 있는 군용 박스를 알고 있었다.

그 위에 붙은 분류표는 원래 없던 것이었다. 어제 새벽, 누군가 조용히 붙인 흔적.


그는 말하지 않았다. 단지 작업 일지를 한 장 더 찢어 따로 접었다.


“연수 씨, 저거 원래 우리 창고 물건 맞아?”


“글쎄요. 외부 반입이겠죠.”


“폐기라더니 왜 숫자가 안 줄어? 박스만 계속 쌓이고 있잖아.”


그는 아무 말 없이 스티커가 어긋난 상자를 본드로 다시 눌렀다.


오후 3시 40분.

창고 입구의 관리자실에선 누군가 서류봉투를 놓고 나갔다.

작업일지 수정 요청서.

작성자 서명 없음. 담당자 칸 비워짐.


박연수는 그것을 보고도 열어보지 않았다. 누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4시 20분, 연수는 짧은 통화를 했다.


“어. 오늘도 늦어. 그냥... 하루 이틀 더 야근이면 끝날 것 같아.”


전화기 너머로 아이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 오늘은 안 와?”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통화는 18초 만에 끊겼다.


오후 내내 그는 더 말이 없었다.

분류된 박스를 옮기고, 숫자를 세고, 무전기를 새로 충전했다.

가끔 창고 안쪽에서 들려오는 미세한 진동 같은 소음에도 그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누군가는 알고 있었고,

누군가는 알면서 말하지 않았다.

점심은 편의점 샌드위치 하나, 식탁 대신 박스 위에 앉아 허겁지겁 씹었다.


그리고 오후 4시.


“연수 씨, 오늘 야간까지 채우는 거 맞지?”


“네. 어제 정리 못 한 게 있어서.”


“진짜 사람 좋긴 해.”


연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이 창고의 어두운 구역에서 무엇이 묻히고, 무엇이 남는지를 너무 많이 알고 있었다.

그래서 늘 말이 없었다.


저녁 7시 15분.


창고 뒷편에는 평소와는 다르게 미세한 진동이 반복되고 있었다.

마치 환풍구 뒤에서 무언가가 작동하는 듯한 소음, 묘하게 일정한 주기.


박연수는 철제 선반을 정리하던 손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그 진동은 공기의 울림을 타고 바닥까지 전해졌지만, 다른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는 사무실로 돌아가 수첩을 꺼냈다.

'B-14, 공기 진동 7회. 외부 차량 확인 - 검정 밴. PM 1:17'

연필로 짧게 메모한 뒤, 책상 서랍 깊숙한 곳에 다시 넣었다.


8시가 가까워질 무렵, 다른 직원들은 하나둘 퇴근 준비를 했다.


“연수 씨, 진짜 안 가요?”


“응. 내일까지 밀릴 것 같아서.”


“가끔은 그냥 모른 척하고 퇴근 좀 해요. 우리가 눈치 보인다니까.”


연수는 아무 말 없이 웃기만 했다. 짧고 지친 웃음.


9시, 창고는 반쯤 어두워졌다.

작업등 몇 개만 남아 깜빡였고, 천장에서 물이 새는 자국에서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리듬처럼 반복됐다.


박연수는 무전기를 점검하고, 오래된 선풍기 교체 작업에 들어갔다.

전선은 오래전부터 타 들어간 흔적이 있었고, 스위치는 녹이 올라 있었다.


10시 25분, 그는 손등에 붕대를 감았다.

까진 자국이 벌어져 있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책상 위엔 식지 않은 캔커피 하나와 뜯지 않은 껌 봉지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밤 11시 48분.


창고 안은 다시 적막에 잠겼다.

마지막 직원이 퇴근하면서 불이 꺼졌고, 연수는 손전등을 들고 내부 점검을 시작했다.


그의 손에는 낡은 연장 가방과 수첩, 그리고 늘 그렇듯 선풍기 교체용 전선이 들려 있었다.


그날, 전선에서 불꽃이 튀었다.


시계를 보니 자정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시간이 갈수록 숨이 짧아지는 기분이었다.

똑같이 야근을 해도, 오늘은 유난히 기운이 빠졌다. 몸이 무거운 게 아니라, 마음이 내려앉는 듯한 기분.


손에 든 전선을 바라보며 그는 한참을 멈춰 있었다. 고작 선풍기 하나. 고작 교체작업.

하지만 그날은 어쩐지, 그 고작이라는 말에 걸렸다. 이상했다. 손끝이 떨렸다.


전선의 피복은 다른 날보다 더 말라 있었고, 구리선은 조금만 비틀어도 금방 끊어질 것처럼 보였다. 고개를 들자 천장의 전등이 희미하게 깜빡였다.


누군가 지켜보는 듯한 감각. 아니, 어쩌면 무언가가 지금을 기다리는 느낌.


‘이상하다. 불안하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이 끝이 될 수도 있다는. 그리고 그 끝이 너무 조용할 거라는.


그는 한 손으로 선풍기의 뒷면을 열며, 다른 손으로 절연테이프를 쥐었다.

이상하게 테이프가 찢어지지 않았다. 단순한 부품 하나, 단순한 정리 작업. 그런데도 마음 한 켠에서 알 수 없는 조급함이 올라왔다.


뭔가가 잘못됐다.


그 순간, 스위치가 눌렸다.


원래 그 선풍기는 몇 주 전부터 삐걱대고 있었다.

모터는 열이 올라가면 멈췄고, 전선 피복은 몇 년 전 정리 작업 중 한 번 찢어졌던 흔적이 있었다.


그러나 보고는 올라가지 않았다. 정기 점검 기록은 늘 '이상 없음'으로 통일되었고, 부품 교체는 '예산 없음'으로 보류되었다.


연수는 몇 번이고 본드와 절연테이프로 땜질해가며 이걸 살려놨다. 관리직 누구도 그걸 문제 삼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있으니 잘 굴러가는 거라고 말했다.


그날도 그는 전선의 열기를 느끼며 고개를 갸웃했지만, 손에 들린 건 절연테이프 하나였다. 이미 익숙한 일이었기에, 그 또한 무심하게 넘기려 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스위치를 켜자마자 ‘지직’하는 소리가 날카롭게 튀었다.

연수는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섰지만, 이미 피복이 완전히 녹아있던 회로선이 접촉되어 있었다.


스파크는 모터 뒷면 철제 케이스를 타고 옆의 멀티탭으로 튀었고,

거기엔 아직 정리되지 않은 접지선과, 포장 비닐 더미가 함께 놓여 있었다.


그는 눈으로 보며 깨달았다.


‘이번엔 안 꺼진다.’

너무 익숙한 장면이었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려던 순간, 불씨는 바닥에 쌓인 포장재에 옮겨붙었다.

연수는 무전기를 들려다 말았다.


“...씨X.”


불은 순식간에 번졌다. 종이를 삼키고, 곧바로 탄두 박스에 닿았다.


00:44:31 – 첫 번째 폭발.


불꽃은 선풍기 뒤편 전선에서부터 시작됐다.

치익, 하고 튄 불씨는 바닥에 쌓인 종이 포장지에 바로 옮겨붙었다.

처음에는 작은 점 하나였다. 박연수는 익숙하다는 듯 고개를 돌리려다, 그 점이 퍼지는 걸 봤다.


'틀렸다.'


생각보다 너무 빨랐다. 종이는 마치 불을 기다렸다는 듯, 타올랐다.

불씨는 빠르게 연결된 탄포장에 옮겨붙었고, 그 위엔 묻은 기름과 먼지, 고무 찌꺼기들이 붙어 있었다.


창고 내부의 공기는 이미 건조했고, 천장에 매달린 낡은 전등 하나가 '파지직' 하고 터졌다.

그와 동시에


콰앙!


금속이 찢어지는 소리, 콘크리트가 흔들렸다.

연수는 날아든 파편에 등을 맞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폐를 찌르는 연기 속에서 그는 기어갔다.

아직 문까지는 열 걸음쯤 남아 있었다. 아니, 스물 걸음일 수도 있었다.

두 번째 폭발이 일어나며 문 앞의 철제 기둥이 무너졌다.


그는 폭압에 등을 강하게 부딪힌 채, 철제 선반 옆으로 튕겨졌다.

몸이 반쯤 접힌 상태에서 기절하지 않은 것이 기적이었다.

허파 안에 탄 냄새가 가득 찼고, 귀에서는 이명이 계속 울렸다.


‘살아 있는 건가?’


숨을 들이쉴 때마다 갈라진 옆구리에서 통증이 튀어올랐고,

눈앞에 보이는 불빛은 이제 하나의 색으로만 보였다. 붉은색.


그는 기적처럼 살아남았다고 생각했다.


창고 안은 불길로 무너지고 있었고, 매캐한 연기 속에서 눈물과 콧물이 한데 섞여 얼굴을 타고 흘렀다.


박연수는 기어가듯 벽을 붙잡고 앉아, 무전기의 끊긴 송신 불빛을 바라봤다.


'탄두... 진짜 무기들이 있어요... B-14... 사람들 몰라요... 이거 그냥 넘기면 안 됩니다...'


기록된 마지막 음성이었다.


그는 그것이 송신되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무전기는 이미 녹은 듯 타들어가고 있었고, 본체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했다.


그는 안다. 그 어떤 진실도, 이 창고 안에 묻히면 더는 바깥으로 나가지 않는다는 걸.

그럼에도 그는 마지막으로 벽에 몸을 기댄 채,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번엔 진짜 말해야 했는데.”


누구에게? 어디에? 그도 몰랐다.

다만 오늘은, 그냥 모른 척 넘기지 않으려고 했다.


그때였다. 먼지와 연기 사이로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렸다.

그는 시선을 들었고, 어렴풋이 그 형체를 보았다.


검은 장화, 방염복, 그리고 말이 없는 사람.


그제야 박연수는 알아차렸다.


이 진실은 말해질 수 없는 것이라는 걸.


그리고, 그는 느꼈다.

자신이 말하지 못하면, 아무도 말하지 않는 구조 안에 있다는 걸.

그 순간 창고 바깥에서 또 다른 폭발음이 일었다. 아니, 그건 폭발이 아니라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였다.


떨림이 바닥을 타고 전해졌고, 불빛은 더 거세졌다. 불길이 창고 외벽을 타고 넘고 있다는 사실을, 연수는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어진 건, 외부의 소리였다.

무전음. 짧고 끊기는 잡음. 그리고 귓속을 울리는 낮은 진동.


멀지 않은 거리에서 수신기가 작동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소리 위로, 건물 외벽 너머 어둠 속에서 검은 형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조용했다. 너무 조용해서, 그 조용함이 불길했다.


연수는 마지막 힘으로 몸을 일으켜보려 했다. 하지만 이제 팔도 다리에 힘도 남지 않았다.


그는 마치, 무언가 결정이 내려지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멈춰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무언가, 아주 정밀하게 훈련된 동작으로 창고 안으로 들어왔다.


화이트팀이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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