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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보다 먼저 퇴사하고 싶은 이유

퇴사를 결심한 건, 어느 야근의 끝이었다

by 피터팬


출근 시간 10분 전에 도착해 커피를 내린다.

내가 타는 커피지만, 옆자리 과장 것도 자연스럽게 챙긴다.

“역시 센스 있네”라는 말 한마디에 또 그날 하루를 시작한다.


메일함을 열면 어제 10시 넘어서 온 메일이 있다.

팀장은 “긴급한 건 아닌데”라면서도

답장이 없으면 슬쩍 “그 메일 봤어?” 하고 물어본다.

결국 야근까지 해가며 맞춘 보고서, 피드백은 딱 한 줄.

“이 느낌보단 좀 더 무게감 있게.”


프로젝트가 꼬이면 언제나 제일 먼저 호출되는 건 나다.

이유는 단순하다.

“넌 일 잘하잖아. 말 안 해도 알아서 하니까.”

하지만 그 ‘알아서’의 무게는 언제나 내 몫이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매뉴얼도, 기준도 없이

‘눈치’로 일하는 법을 배웠다.


회의 중에 상사가 말을 끊을 때,

조금 더 정확히 말했어야 했나 자책하고,

야근하다 혼자 편의점에서 먹는 삼각김밥이

어느새 하루의 가장 조용한 위로가 되었다.


무엇보다 힘든 건,

이 모든 걸 지켜보는 상사의 태도다.

실수엔 날카롭고, 성과엔 무관심하다.

팀의 분위기가 무거워져도

자신의 말투나 태도는 돌아보지 않는다.

그저,

“요즘 애들은 왜 이리 예민하냐”는 말로 퉁친다.


그런 사람 아래에서 나는

늘 ‘괜찮은 척’을 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다들 말한다.

“그래도 상사보다 먼저 나가면 지는 거야.”

“더 참아. 나중에 기회 올 거야.”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봤다.

왜 내가 ‘참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왜 내 한계는 고려되지 않고,

오히려 참는 것 자체가 미덕이 되어야 하지?


어느 날, 야근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고,

이건 내가 존중받는 자리도 아니구나.


그래서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다.

상사보다 먼저 퇴사하는 건

비겁하거나 조급한 게 아니다.

조직보다 나를 먼저 선택하는 일이다.


그게 내가 나를 지키는 첫 번째 방법이라면,

충분히 먼저 떠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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