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숨겨졌을 뿐이다
17:28 / 민간 레이더 부지 J‑S4 인근 도로
핑이 경계하며 운전하는 낡은 밴이 움찔했다.
밤하늘 아래 어스름한 빛만 희미하게 남은 공터.
정리조 외부지원 팀의 SUV가 뒤를 바짝 좁혀 오고 있었다.
루카는 핸드폰 화면을 내려다보며 속삭였다.
“17시 22분, 그 좌표 맞지?”
“응. 곧 진입로 등장할 거야.”
바로 그때, 산허리 경계 쪽에서 희미한 검은 실루엣이 나타났다.
진입로로 보인다.
핀은 브레이크를 천천히 밟았다.
아이도 고개를 돌려 뒤를 살폈다.
뒤늦은 추격은 아니다. 여기엔 이미 오래된 감시망이 있었다.
“계속 가면 위험해.”
루카의 목소리는 조심스러웠다.
“우회 경로로 돌아가. 넓은 틈 사이로 숨겨진 사인 길이 있어.”
밴의 사이드 라이트가 꺼졌다.
고요 속을 채우는 건 작은 바람 소리와 나뭇가지 흔들림.
그들은 그렇게 탁 트인 평지 대신, 숲속 숨겨진 길을 선택했다.
17:32 / SC‑0 정밀 감시 서버실
B3의 눈은 피로로 반쯤 감겨 있었다.
그는 여전히 로그를 추적하며, 내부 라우팅의 이상 징후를 분석 중이었다.
"17:22 경, J‑S4 접속신호 발견."
그 메시지는 로그 창 맨 위에 깔끔하게 남아 있었다.
하지만 오류로 처리된 뒤, 자동으로 삭제됐고 절반은 암호화되었었다.
B3는 누군가의 흔적을 찾기 위해 증거 복구 도구를 켰다.
프로그램은 그의 손가락이 움직임에 따라 번쩍였다.
그 순간, 파일 하나가 눈에 띄었다.
INTERNAL_SUBROUTINE_LINE_003
그 항목은 어떤 공식 문서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심장이 올라앉았다.
“내부가 복제됐다.”
그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무전이 잡혔다.
“서브룸 A‑3, 이상 경고. 내부 인증 계정에서 인증 루프 발생.”
B3는 스크린을 강하게 닫았다.
17:36 / 폐 창고 지하계단 아래
핀은 아이를 끌고 계단을 내려왔다.
바닥엔 먼지가 덮였고, 희미한 전자장치 조합음만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아이의 눈은 이미 푸른 LED 조각에 익숙해졌고, 손은 떨렸다.
그럴 때였다. 벽면 지하도 전면에 깨진 기계 부품이 보였다.
순간 무언가 떠올랐다.
천천히 아이는 입을 열었다.
“거기... 불이 파란 빛이었어.”
“방 안에 기계들 있었고 창문 같은 게 있었어...”
목소리가 작지만, 단단했다.
“그 사람이 총을 겨눴던 사람이었어.”
그 문장 하나가 공기를 변화시켰다.
핀은 아이의 어깨를 살짝 잡았다.
그 위기 속에서, 아이는 분명히 보고 있었다.
17:40 / SC‑0 통제실, C1의 독단 명령 라인
C1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그는 대형 스크린 위로 새로 뜬 파일을 바라보았다.
'Frame002' 두 번째 증거의 존재를 거의 확신하게 만들었다.
그는 B3에게 직접 무전 신호를 보냈다.
“레벨 Z‑04.
L과 P 실종 기록 삭제.
서브룸 로그 전면 초기화.
4번 창고 서버 폭파 준비.”
B3는 짧게 대답했다.
“예. 그러나 내부 라인 인증 무결성은 불가능할 수 있습니다.”
C1은 한숨 없이 대답했다.
“그 정도는 상관없다.
중요한 건, 그들이 사라지는 것.”
17:45 / J‑S4 내부, 숨은 통로 한가운데
숲속 터널 같은 조명이 없는 좁은 통로.
오직 기체 바닥 문양과 같은 패턴이 희미하게 벽 위에 연장되어 있었다.
루카는 천천히 손전등을 꺼내 아이에게 내밀었다.
“여기, 내려와. 조심히.”
아이의 눈동자가 또렷해졌다.
그 순간, 조준선처럼 보이는 금속 트랙이 눈에 들어왔다.
“이 길이 그날 내가 화살을 보던 곳이야.”
기억이 흐릿하지만 맞닿았다.
그녀는 바닥에 손을 댔다.
핀과 루카는 동시에 숨을 죽였다.
공간 안, 바람 하나 없고,
단 하나의 진실만이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