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돌보듯 나 자신을 돌본다
이번 일요일 오전에 아이와 둘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남편은 저녁근무를 하고 와서 자고 있는 중이었다. 평소 보내는 주말과 별 다를 것 없는 날이었는데, 이 날은 "아 잠시라도 혼자 시간 가지고 싶다, 좀 쉬고 싶다"는 마음이 계속 올라왔다.
아주 가끔 이런 마음들이 꺼지지 않고 멈추지 않고 타오르듯이 올라올 때가 있다. 그러면 난 내 마음의 신호로 받아들인다. '아, 나 정말 지금 조금 쉬어야 되나 보다. 내 몸과 마음에 휴식이 필요한가 보다.' 하고 생각한다. 스쳐 지나가는, 그냥 불쑥 왔다가 물러가는 생각이 아니라 내 마음에서 강하게 휴식을 요구할 때가 있다.
평일에는 직장 다니면서 아이 하원하고, 육아하고, 회사 안 가는 주말엔 하루종일 육아하며 보내다 보니, 내가 온전히 혼자 쉬는 시간은 육퇴하고 나서의 밤 시간뿐이다. 나의 연차도 수지를 위해 아껴두고 있어서(아이가 갑자기 입원하거나 병원을 가는 일이 꼭 생겨서 수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급할 때 쓰려고 아끼고 있는데, 하반기에 남은 연차가 얼마 없다..) 나를 위해 연차를 쓰기엔 너무 빠듯하다.
이렇게 지내다 보니, 회사일과 육아에 메이지 않는 그냥 오롯이 혼자 보내는 시간이 너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남편에게 부탁이 있다고 말을 시작하며 얘기를 꺼냈다. 나 11시 반부터 2시까지 친정에서 좀 쉬다 오겠다고. (남편이 오후에 출근 해야 해서 그 전까지만 시간을 쓰기로 했다) 혼자 카페에서 쉬다 와도 되지만, 카페에서 쉬는 그런 휴식 말고, 그냥 누워서 널브러져 있고 싶은 휴식이 필요했다.
그럴 수 있는 곳은 내 친정집뿐이다.
남편은 나에게 다녀오라고 했다.
그래도 친정이 가까우니, 가고 싶을 때 언제든 갈 수 있어서 좋다. 이렇게 갑자기 친정에서 쉬다 오기로 혼자 정하고, 가족 단톡방에 나 오늘 혼자 간다고 연락하고, 바로 출발했다. 친정 식구들은 외출하고 집에 없었다. 그래서 쉬는 시간 동안 나 혼자 있을 수 있었다.
친정집은 지금 거의 15년째 같은 집이다. 너무 익숙하고 편한 집. 그 15년 동안 바뀐 적 없는 도어록 비번을 익숙하게 누르고 집에 들어가니, 친정집 냄새가 바로 내 코끝에 느껴진다. 집마다 그 집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가 있는데, 친정집에 들어서자마자 집 냄새를 맡으니 그냥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리고 냉장고에 있던 수육을 꺼내 데워서 김치와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고요한 집에서는 시계에서 ’탁탁‘ 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오랜만에 시곗바늘이 움직이는 소리를 크게 들은 것 같다. 그 정도로 고요했다. 그 고요가 주는 평안함이 좋았다.
점심을 먹고 나서 잠시 앉아서 글도 읽었다가, 누워서 눈감고 음악감상도 하고, 관심분야 강의도 듣고, 오디오 책도 듣고, 명상도 했다. 정말 온전히 쉬는 느낌이었다. 2시간 반 동안 오로지 나만 생각하고 나에게 집중하며 나를 위한 시간으로 꽉 채워 보냈다. 힐링되고 충전되었다.
그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고, 다른 어떤 것도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 속에 들어가는 것도 나를 위해 꼭 필요한 것 같다. 집에 있으면 육아에, 집안일에 내 생각과 마음이 한 곳에 머무를 수 없는 환경이기도 하다. 이것저것 신경 써야 하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 중에도 수지가 여러 번 날 찾고 부른다. 내 밥을 먹으면서도 아이를 계속 보며 챙겨줘야 한다. 뭘 해도 지금은 아이에게 더 집중해야 하고,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다.
이런 환경이라서, 더더욱 내 마음을 챙기고 들여다보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잠시의 시간이라도 혼자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면, 그 시간에 내가 원하는 것들을 하고, 내 마음 챙김에 신경을 쓴다. 나를 돌보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한참 어린아이를 키우고 있는 지금, 나를 돌보는 것에 소홀해지고 그냥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나를 잊은 채 지나갈 수도 있다. 그런데 나를 잊고 시간에 끌려가는 것처럼 살고 싶지 않아서, 더 나에게 신경을 쓴다.
아이에게 신경 쓰는 것처럼,
나 자신을 신경 쓰고 돌본다.
친정에서 잠시 보낸 휴식시간은 정말 나에게 힘이 되고 쉼이 된 시간이었다. 나를 챙기고 돌보는 시간, 잠시 숨을 고르고 쉬었던 멈춤의 시간. 이렇게 잠시 쉬었다가, 오후에 집에 가서 아이를 만나니 내 마음이 좋은 에너지로 충전이 되어 아이를 대하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르는 휴식은 삶에서 꼭 필요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 휴식의 시간에 나를 챙기고 돌보며, 제대로 잘 쉬었을 때 분명히 마음엔 힘을 얻고 삶을 좀 더 여유롭게 대하는 마음이 생긴다.
아이를 돌보듯, 나 자신을 돌보는 것도 절대 소홀히 하지 말고 내 안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나를 잘 챙겨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