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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행복

세월이 흐를수록 더 깊어지는 마음

by 행복수집가

남편은 올해 마흔이 되었다. 20대 초반, 푸릇푸릇하던 시절에 만났는데, 어느새 이렇게 많은 세월이 흘렀다.


세월이 이만큼 흘렀지만, 지금도 내 눈에는 남편이 멋있다. 대학생 시절 반짝이던 그 모습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는 듯하다.


하지만 아무리 멋진 중년이 되었어도 세월의 흔적은 어쩔 수 없이 남는다. 나이가 들면서 남편의 새치도 하나둘 늘어났다.


남편은 그동안 꼬박꼬박 염색을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흰머리를 있는 그대로 두기로 했다. 그런데도 내가 옆에서 "염색해야 되는 거 아니야? 흰머리가 너무 많이 났는데?" 하고 괜히 들쑤시면, 남편은 오히려 태연하게 "요즘은 흰머리 있는 게 더 멋진 거야." 라며 웃어넘겼다.


남편의 그런 모습을 보며 나도 더 이상 옆에서 잔소리하지 않기로 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게 오히려 더 멋지고, 건강해 보였다.


그래서 한동안 염색을 하지 않고 흰머리를 그대로 두었더니, 어느새 눈에 띄게 많아졌다. 남편도 스스로 너무 많다고 느꼈는지, 며칠 전엔 갑자기 염색을 하겠다며 도구를 주섬주섬 챙겼다. 그리고 나에게 도와달라고 했다.


나는 오랜만에 남편 머리를 염색해 주었다. 한 올 한 올 정성껏, 특히 흰머리가 많이 난 부분에는 염색약을 듬뿍 발라주었다.


그래, 마흔이면 아직 한창 젊은 나이다. 만 나이로는 아직 30대인데, 벌써 흰머리로 살기엔 조금 아깝다. (헤헤)


염색은 꽤 성공적이었다. 머리색이 짙어진 남편은 훨씬 젊어져 있었다.


남편은 "둥이 덕분에 젊어졌네." 라며 나에게 고마워했다. 나는 "내 덕분이지?!" 라며 어깨를 으쓱였다.


흰머리도 멋있다며 염색을 안 하겠다고 하던 남편이, 막상 염색된 머리를 보고 만족스러워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남편 머리를 염색하며, 한창 젊을 때 만난 우리 부부가 어느새 중년이 되었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세월이 흘러가는 동안 우리는 늘 함께였고, 서로 서서히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이렇게 함께 나이 들어가는 남편이 옆에 있다는 사실이 외롭지 않고 참 든든하게 느껴졌다.


우리 부부가 나이 들어가면서 서로 챙겨주는 것도 더 많아졌다. 건강과 체력, 피부, 그리고 마음도.


내가 나 자신을 먼저 챙기는 게 가장 중요하지만, 그래도 내 곁에서 나를 살피고 챙겨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은 큰 힘이 된다.


남편은 가까이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를 작은 부분까지도 세심하게 챙겨준다. 그런 남편의 세심한 관심을 받으면서, 나에게 이렇게 마음을 써주는 사람과 함께 있다는 행복감이 마음에 깊숙이 스며든다.




며칠 전에는 남편이 피부에 바르는 비싼 앰플을 샀다. 이 앰플은 효과가 워낙 좋아서 이걸 쓰면 피부과에 안 가도 될 정도라, 피부과에서 싫어하는 앰플로 유명하다고 하던데 남편이 큰 맘먹고 샀다.


남편은 나에게도 써보라고 했다. 혹시 안 맞으면 피부가 뒤집어지거나 화끈거릴 수 있다고 하면서, 그런 반응이 나오면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며 조심스럽게 권했다.


나는 피부가 그리 민감한 편도 아니고, 피부 트러블도 잘 나지 않아 크게 걱정하진 않았는데, 남편이 더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이 오히려 조금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내가 앰플을 바른 날, 별다른 느낌도 없었고 피부 트러블도 나지 않았다. 남편은 나에게 몇 번이나 안 아프냐고 물어봤다. 난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봐도 피부가 좀 더 좋아진 것 같았다. 남편도 나를 보며 확실히 피부가 더 생기 있고 좋아 보인다며 감탄을 했다.


사실 한번 바른다고 큰 변화가 있겠나 싶지만, 좋은 걸 바르니 더 좋아진 것 같다며 서로 칭찬하며 감탄하는 순간이 그저 즐겁고 좋았다.


내 피부가 더 좋아 보였던 건, 아마 남편의 세심한 관심과 챙김, 그리고 감사와 편안함이 담긴 마음 덕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피부에 좋은 것, 건강에 좋은 것을 서로 챙겨주게 된다. 이렇게 챙겨주다 보니 나이 들어가는 게 싫지만은 않다.


우리가 함께한 세월이 늘어나는 만큼, 서로를 챙기는 마음도 더욱 깊어지는 것 같다. 어렸을 때는 피부와 체력이 더 좋았다면, 지금은 마음의 탄력이 더 건강해져서 오히려 빛이 나는 것 같다. 마음에서 빛이 나니, 인상도 한결 밝고 편안해 보이는 게 아닐까.


외모를 더 어려 보이게 하고 싶은 집착보다는, 내 마음이 지금 평안한지, 감사한지, 다정한지, 여유로운지를 더 중요하게 여기고 챙기게 된다. 이 마음은 나를 사랑해 주는 남편과 함께 하면서 더 커져가는 것 같다.


사랑이 깃든 마음에는 자연스러운 빛이 난다. 남편에게 사랑받는 나, 그리고 내 사랑을 받고 있는 남편에게서도 사라지지 않는 빛이 있다. 그 빛은 어려서 반짝이던 생기 있는 얼굴빛과는 또 다른, 깊고 따뜻한 빛을 뿜어낸다.


우리 부부의 마음에 은은히 반짝이는 이 빛을 오래 간직하고 싶다. 잠깐 반짝이다 사라지는 빛이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더 은은하게 빛나는 마음으로 서로를 챙기고 아껴주며 함께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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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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