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주는 선물
제주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날은 아침 비행기여서 우리는 일어나자마자 공항으로 떠날 채비를 했다. 숙소와 공항이 가까워 적당히, 여유롭게 공항으로 출발했다.
꽤 여유롭게 공항에 도착했다고 생각했는데,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엄청난 사람들로 붐비는 모습에 조금 당황했다. 제주 여행을 오랜만에 해서 제주공항에는 국내선, 국제선 다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잠시 잊었던 것 같다.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당황했지만, 그래도 '시간 안엔 갈 수 있을 거야' 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우리도 긴 줄에 합류했다. 다행히 앞에 줄은 금방 빠졌고, 우리는 늦지 않게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아이는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도 헤드폰을 끼고,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왔다. 수지가 비행기 안에서 얌전히 잘 있어줘서 비행기 타는 게 그리 힘들진 않은가 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비행기가 김해공항에 착륙하고 나서 수지에게 비행기 탄 거 어땠냐고 물어보니 힘들었다고 했다. 예상밖의 말이라 조금 놀랐다.
수지가 헤드셋을 쓰고 있던 게 힘들었다고 했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비행기 안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지루하고 힘들까 봐 수지가 보는 영상을 오프라인 저장 하고, 헤드셋도 이번에 장만한 건데 헤드셋을 쓰고 있는 게 힘들 줄은 생각도 못했다.
처음 써보는 헤드셋이 어색했던 걸까, 무거웠던 걸까. 여하튼 불편했나 보다. 그런데 비행기를 타고 있는 동안엔 내색도 안 하고 얌전히 잘 있어준 게, 아무 문제 없이 괜찮아서가 아니라 아이가 불편해도 참고 견딘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을 하니 아이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착륙할 때는 얼른 헤드셋을 벗겨주었다. 그리고 수지는 몸에 긴장이 풀린 건지 내 무릎에 털썩 엎드렸다. 그 모습을 보는데 짠했다. 즐거운 여행이었지만, 그래도 아이에겐 비행기로 이동하고 오랜 시간 차를 타고 다닌 게 많이 고단했던 것 같다. 지친 아이를 보니 얼른 집에 가고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고 김해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제주도에 겨우 3일 있다가 온 건데, 육지가 왜 이렇게 반가운지. 제주도도 좋았지만 내 집으로 간다는 게 왠지 더 좋았다. 김해에 도착한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했다.
여행지를 여기저기 다니고, 내 집이 아닌 곳에 머무르다 보니 나도 모르게 긴장을 하고 피로가 쌓였나 보다. 집에 간다는 생각만으로 이렇게 마음이 편해지는 걸 보니. 집의 편안함이 그리웠던 것 같기도 하다.
여행을 다녀오면 내가 있던 곳의 소중함을 더 절실히 알게 된다. 내가 사는 곳, 내가 사는 집이 얼마나 편안하고 아늑한지 알게 된다. 늘 이곳에 머무르며 당연하게 여기던 소중함에 대한 감각이 살아난다. 여행은 이래서 좋다. 여행을 가서 느끼고 보는 새로움도 좋지만 여행을 다녀오면 내 일상, 내 집, 내가 사는 곳에 대한 소중함과 고마움을 더 크게 느끼게 된다.
비행기에서 조금 치쳐 보였던 아이도 김해공항에 도착하고 나서부터는 계속 기분이 좋았다. 아이도 집에 가는 게 좋았나 보다.
우리는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매우 즐거웠다. 3일내내 조금 낯설고 어딘가 불편한 렌트카를 타고 다니다가 익숙한 향이 나는 우리 차를 타니 우리 차에 탄것만으로도 꼭 집에 온것 처럼 편안했다.
그렇게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려 드디어 집에 도착했다. 집에 오니 익숙한 우리 집 세간살이들이 ‘너희가 오길 기다렸어’ 하고 조용히 말해주는 듯했다. 묵묵히 가만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던 우리 집이 왠지 더 고맙고 반가웠다.
장시간 운전하느라 고단했던 남편은 욕조에 몸을 담그고 쉬었다. 그동안 나는 짐정리를 했다. 그리고 수지도 평소에 잘 가지고 놀던 익숙한 장난감들을 꺼내서 혼자 잘 놀았다.
우리 가족이 원래 있던 곳에서 다시 일상이 시작되었다. 잠시 떠났다 오니 내 집이, 내 일상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원래도 소중했고, 소중하지 않은 적이 없는데 여행은 이 소중함을 더 일깨워준다. 당연함에 묻혀있던 소중함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준다.
여행을 다녀와서 일상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는 이 마음이 좋다. 이 마음이 여행이 주는 선물 같다.
이번 제주 여행에서는 선물을 가득 받았다.
감동이 파도처럼 밀려오던 아름다운 풍경, 그 속에서 우리 가족이 웃으며 보낸 시간, 제주의 평화롭고 아름다운 시골 동네에서 하루 숙박하며 보낸 잊을 수 없는 시간, 그리고 일상에 대한 감사까지. 이 모든 게 소중한 선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