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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덤 오브 헤븐(감독판), 얼려 보기

인간의 이성적인 대결의 역사를 다시 재조명하여 미래에 대한 희망을 던지다

by Roman Mar 0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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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출처: Revealed in Time)


이 위대한 작품을 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또한 20여 년간 띄엄띄엄 들어왔었다. 그때마다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 작품이 만들어진 2005년에 대하사극 같은 장르를 주름잡던 "리들리 스콧"의 작품을 본다는 것은 체력과 더불어 경건한 마음의 자세가 있어야만 하는 게 아닐까란 압박을 줬었다.


2018년부터 수년간 "넷플릭스"에서도 떠 있었으나 그저 눈대중으로 보고 지났을 뿐이었지만 갑자기 어제 이 작품을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즈니 플러스"에 올려져 있는 작품은 2시간 25분의 상영시간을 갖고 있었는데, 이 작품이 개봉 당시에 평작이라고 혹평을 당하고 파묻힌 버전이었다.


그래서 여러 경로를 찾아 결국에는 "감독판"을 기어이 볼 수 있게 되었다. 장장 3시간의 작품이었지만 배속을 2배로 올려서 보다가 주요한 전쟁 장면 등에서는 1배속으로 돌아가 빠르게 흐르는 장면의 디테일만 좀 더 확인하는 식으로 봤다. 그렇게 속도를 높여서 본 탓인지, 2005년작의 느낌은 없었다. 시대를 뛰어넘는 명작인 이유도 있지만 세련됨에 있어 떨어질게 없다.


주인공 "발리앙"을 연기하는 "올랜드 블롬"과 그의 연인인 "시빌라"역의 "에바 그린"간의 로맨스는 역사적인 고증과는 영 딴판인 스토리에다 라이벌이자 내부 빌런인 "기 드 뤼지냥"역의 "마튼 초카스"의 대결 구도는 전형적인 흥분도를 높이는 구조로 편성되어 있다.


이 작품의 완성도가 높아지고 감독판의 스토리가 어필하는 요소는 오히려 "기사"의 정의를 "약자를 돕고 진실을 지키는 존재"로서 다시 조명하면서 "발리앙"의 아버지인 "고드프리"를 연기한 "리암 니슨"이 전달한 가족사와 서양 문명사를 관통하는 윤리적으로 정의로운 "서양"의 합리적인 이성과 "예루살렘"을 "이슬람"의 성지로 회복코자 쳐들어온 "살라딘"을 연기한 "가산 마수드"의 관대함과 마찬가지의 합리적 이성의 모습이 영화 전체를 걸쳐서 "인간의 위대한 이성"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다.


감동이 느껴지고 동시에 뿌듯한 마음에 빠져들게 되는 것은 이 같은 위대한 인간 이성의 역사가 시대가 지나서도 다시 조명될 수 있다면, 후대에도 영향을 미쳐서 인간사에 대해서 우리가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단서를 경험해서다. 종교적인 성지로서의 "예루살렘"을 뺏기 위한 "십자군"의 역사와 "이슬람"과의 대결에 대한 단편적인 할리우드식 해석이 이 감독판에서는 상대적인 깊이를 획득했다.


심지어 같은 하나의 신을 섬기면서도 각기 다른 해석을 적용한 구약성서이자 쿠란에 대한 교리의 차이로 인해 반목하고, 수많은 이를 죽이는 "성전"이자 "지하드"를 반복하는 명분을 그 교리의 차이에 입각한 "신앙"이란 명분으로 포장했지만, 사실 그 과정에서 벌어진 수많은 전쟁을 통해서 권력과 물질적인 이득을 탐했던 것이 훨씬 큰 역사가 바로 이 "십자군 전쟁이자 지하드"의 본질이었다.


수많은 광신도와 종교적 신념에 입각해서 상황을 보는 인류의 적지 않은 이는 종교적 해석의 차이로 인간을 죽이고 차별하고 등급을 나누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사는 것이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일상의 모습이지만, 이 작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 서로가 마음 열고 대화할 수 있는 관대함과 여유가 있다면 희망을 가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예루살렘"은 신앙과 신념이 각각의 다른 종교적 관점과 해석을 지닌 이의 머리와 가슴속에 있음을 받아들인다면 종교적 대결에 있어서 아무것도 아닌 것(Nothing) 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솔직히 기독교와 이슬람교, 유대교란 종교를 가진 많은 이에게 끼치는 상징적인 면에서 모든 것(Everything) 일 수도 있다.


이 종교적인 해석의 차이를 부각하면서 대결을 부추기며 이익을 보는 "개싸움꾼"들에게 끌려다니며 "투견"을 하기를 이제 우리가 그만둔다면 그때부터 보게 될 삶의 진정한 평화로움은 아직도 이 세상에 제대로 와 있지 않다. 20년 전의 작품을 보면서 마음이 뜨거워지면서도 한 군데 비어 있는 허전함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이 작품을 스펙타클한 전쟁씬 하나의 장면으로 그려서 얼려본다면 아마도 아래와 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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