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패션을 좋아하지 않는다. 패션을 오래 공부하고 일을 했지만 패션이라는 속성에 흥미를 잃은지는 꽤 오래되었다. 대신, 패션을 브랜드로, 비지니스로, 인문학적인 측면의 대상으로 좋아한다.
옷 자체에 열광하지 않게 된지는 10년도 훨씬 넘었다. 컬렉션에서 패션쇼를 보고 더 이상 가슴이 뛰지 않을때, 유럽에 출장가서 쇼룸 행거에 걸려있는 옷들이 팔아야 하는 재고로 보일때 부터 였던 것 같다.
10대 중반부터 15년쯤 옷에 열광한 결말을 예상하지 못했던터라 적잖게 당황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군더더기 없이 만듦새가 좋은 옷을 좋아하고, 잘 맞는 바지 핏을 만나면 흥분하기도 한다. 하지만 딱 그정도다. 럭셔리 브랜드를 편애하지도 그렇다고 사치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만원 짜리 에코백과 3-4백만원의 가방에 대한 나의 마음에는 큰 차이가 없다. 필요하면 살 수도 있고, 필요하지 않으면 사지 않는 상품, 즉 프로덕트 일 뿐이다.
패션에 열광하지 않는 마음상태라는 것이, 감각적이지 않아도 괜찮다는 건 아니다. 정작 교복같이 비슷한 스타일의 옷을 돌려입으면서도 패션에 대한 나름의 기준은 있기 때문에.
얼마 전, 패션업계에 취업하고 싶어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모임을 주최한 적이 있다. 소수의 인원이 내추럴 와인을 앞에 두고 두런두런 취업에 대한 고민들을 서로 나눴다. 그 중 한 명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저는 패션에 열정적이지 않아서 고민이에요."
패션에 미쳐있는 친구들을 보면 내가 과연 이 분야에 재능이 있는 걸까 하는 회의감이 든다고 했다. 몇몇이 본인도 비슷한 고민을 한다고 했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 열정이 있어야 한다는 말은 때로는 정교한 해석이 필요한건 아닐까. 우리는 한 가지 기준을 정해놓고 그 기준에 못미치는 자신을 채찍질 하곤 한다. 식품업계에서 일한다고 누구나 미쉐린급의 쉐프가 되어야 하는 건 아니다.
마찬가지, 패션업계에서 일 하기 위해서 매 시즌 기절할만큼 파격적이 컬렉션을 선보이는 디자이너가 될 필요가 없다. 일의 감각은 업계를 뛰어넘어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감각이 필요한 영역이다. 패션상품을 기획하다가, 사람, 공간, 생활 전반 라이프스타일을 다루는 일을 했다.
신기한건 패션이 싫어진 덕분에 업계에 매몰되거나 구분짓지 않고 일을 하는 감각을 익힐 수 있었다. 패션을 상품으로 보지 않고 비지니스로, 브랜드로, 고객으로, 문화로, 사회적 현상으로 바라보다보면 사람, 공간, 라이프스타일과 모두 연결되는 지점이 어렴풋이 보였다. 다시 즐거움을 되찾을 수 있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열정이 예전만 못하다는 생각에 빠질 때가 있다. 이정도로 좋아하지 않는다면 이 일을 해야 하는 것 맞을까? 하고. 조금 각도를 바꾸어 생각해보는건 어떨까. 고개를 옆으로 갸우뚱 하고 원래 바라보던 사물의 다른 면을 보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일하고자 하는 분야에 나의 감각이 필요한 영역이 분명 있을 것이다. 요리는 잘 하지 못하더라도, 사람들이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잘 아는 감각, 신선하고 특이한 재료를 어디서 공수해오면 좋은지 아는 능력, 음식을 담을 그릇과 플레이팅 감각이 좋은 사람, 요식업 비지니스의 손익구조를 잘 짜서 체인화를 잘 시키는 경영감각, 요리에 대한 설명과 친절함으로 고객의 기분을 좋게 해주는 서비스 감각까지. 모든 것을 다 잘하는 사람은 없다.
패션도, 어느 업계든 마찬가지다. 상품 디자인 능력이 뛰어난 사람, 마케팅을 잘 하는 사람, 잘 만든것을 필요한 곳에 잘 홍보해주는 능력, 온라인으로 고객에게 잘 전달 될 수 있도록 스토리를 잘 풀어서 표현할 줄 아는 감각, 작게 모든 것을 혼자 힘으로 해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큰 조직에서 조직관리를 잘하고 커뮤니케이션 감각이 좋은 사람.
그러니 주변의 타인의 감각을 보면서 작아질 필요가 없다. 우리는 저마다의 뛰어난 감각을 지니고 있다. 내 안 어디에 숨어있는지, 일 하면서 기어코 찾아내서 나만의 감각을 즐기는 기쁨을 느끼기를. 감각에는 크고 작음이 없다. 고유의 나의 감각을 만났을 때, 그 감각을 갖고 노는 하루가 즐겁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