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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ersjoo Jan 17. 2024

서로를 웃겼다

웃어야 끝나는 슬픔  

결국 나의 ELS가 -54%로 생을 다했다. 

단 0.5%의 이자를 더 받겠다고 가입한 4년 전 ELS가 반토막 이상 났고, 요즘 연일 뉴스에 나오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에 나도 포함이 되었다. 처음엔 멍했고, 은행에서 포기하는 게 좋을 거라는 전화를 받고 나서는 혼자 눈물도 흘렸다. 다행히(?) 당장 밥을 굶을 지경은 아니지만, 작업실 월세는 걱정된다. 

아무튼 작은 욕심을 태어나 처음 부려보았다가 큰 해를 입었다. '동의합니다'라고 은행 데스크 마이크에 대고 녹음을 하라하길래 시키는 대로 해 놓았으니 그들을 탓할 수도 없다. 그저 내 인생엔 작은 합법적 요행도 허락되지 않는 걸까 싶어 알 수 없는 대상에게 섭섭하고 속이 상할 뿐이다. 


친구는 나보다 훨씬 큰 피해를 입었다. 그 친구도 평소 요행을 바라지 않는 성향인데 처음 은행 직원 설득에 돈을 맡겼다 연일 뉴스 소재로 거론되고 있다. 둘 다 그냥 성실히 살았을 뿐인데 스테이크 정도는 가끔이지만 아무 생각 없이 먹던 우리가 만나면 '작업실서 짜장면 시킬까?'라며 서로에게 묻는다. 


어제 그 친구와 만났다. 서로 말은 안 꺼내지만 '요즘 어때'라는 말로 에둘러 근황을 물었다. 

그러다 그냥 웃었다. 어이없는, 그러나 눈물 섞인 웃음을 터뜨리며 우린,

"뭐, 그나마 다행이지. 우리가 뭐 당장 이번달에 학원비 잔뜩 내야 할 애 새끼들이 있냐, 사업 말아먹은 남편 새끼가 있냐. 우리 입에나 풀칠하면 그래도 죽진 않은 지경이니 다행이라 생각하자."

라며 서로를 위로했다. 


모든 걸 내려놓은 듯한 우리의 자조적인 웃음은 귀한 (상상 속) 애들과 남편을 새끼로 만들긴 했지만 평소 쓰지 않는 표현까지 쓸 만큼 편해진 것 같았다. 


늘 그랬던 것 같다. 

슬픈 일이나 속상한 일이 생기면 당황하며 인정하지 못하다가, 화가 났다가, 미련을 가졌다가, 내려놓았다가 결국은 웃으며 인정했다. 온갖 불합격도, 그리고 지금의 폭망도 결국은 웃음이 나와야 진정 받아들이게 되었다. 


나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친구는 다행히 원래 잘 버는 친구라 금방 그 공백을 메울 수 있을 거다. 

친구와 비교도 되지 않게 비실비실한 나는 늘 그랬듯 그저 꾸준히 계속 나아가며 조금씩 그 공백을 메울 수 있을 거다. 


다만, 우리 둘 다 웃음은 잃지 않았으면 한다. 웃음이 없으면 낫기 어려운 마음의 찰과상을 입었으니 웃음은 포기할 수 없다. 


PS. 알바 찾아요. 

     성실하고 애는 착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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