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드라마를 잘 보지 않게 된 이유
드라마를 참 좋아한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 드라마를 몇 개 꼽아보자면, '연애시대', '메리대구공방전', 단막극 '연우의 여름', '올드미스다이어리', '그냥 사랑하는 사이', '청춘시대', 'Friends', '미생', '나의 아저씨', '비밀의 숲 1', '옷소매 붉은 끝동'... 셀 수가 없다.
그런데 이토록 좋아하던 내가 우울증을 본격적으로 앓고 나서는 드라마를 얼마 보지 않았다. 가장 최근에 완드 한 작품이 벌써 2년 전 작품인 옷소매 붉은 끝동이니 뭐...
가만 생각해 봤다.
내가 왜 그렇게 되었을까?
추측한 바로는 내 우울증의 두드러진 증상 중 하나인 지나친 감정이입 때문인 것 같다.
그렇다. 나는 실생활에서도,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도 감정이입을 심하게 하는 편이다. 이른 갱년기인가 생각해 보았지만 그러기엔 너무 오래전부터 그래왔다.
TV속 인물이 행복하면 나도 행복감을 느끼지만 문제는 그 또는 그녀가 인생의 굴곡 앞에 눈물을 흘릴 때다. 함께 우는 건 물론이고, 때론 그 또는 그녀도 내지 않는 '꺼이꺼이' 소리를 낸다.
본능적으로 더 이상 이러기 싫었던 것 같다.
내 안의 1인분 감정도 소화를 잘 못 시켜 걸핏하면 체하는데, 남의 감정, 그것도 사실은 다 가짜인 세계의 온갖 사람들이 겪는 희로애락까지 소화를 시키려니 내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회피일까 생각해 본 적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지금의 나에겐 회피마저 소화제가 될 거라 생각된다. 다른 사람의 밥까지 먹으니 자꾸 체한다면 회피도 한 가지 방법일 거다.
당분간 나는 계속 TV 드라마를 잘 보지 않을 것 같다.
내 속만 편할 수 있다면 남들의 눈물까지 껴안진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지나친 감정이입은 공감이 아닌 감정 과식이나 마찬가지니까.
PS. 그래도 드라마 추천 해주세요. 나중에 다 나으면 정주행 해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