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루덴스, 노동과 놀이
남들이 말하는 안정된 회사를 다니고 있었지만 나는 왜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 행복하지 않을까? 너무 고민이었다. 혹시 내가 게으른 사람이어서 그런 건가? 나는 자본주의에 안 맞는 사람인가?
일이 즐겁다는 사람들도 있던데 난 회사 다니는 것이 너무 짜증나고 싫고...내가 무슨 문제가 있는 사람인가?
"직장생활" 에 대한 명확한 개념도 없었고 그냥 남들이 회사를 다니니까 나도 다니고 먹고살기 위해 회사를 다니고 있는 상태였다. 프로젝트 준비로 한 달 내내 야근을 한 적이 있었다. 어느 날 야근을 마치고 퇴근할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 11시 30분이니까 앞으로 8시간 후에 다시 회사로 와야 하는구나..."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행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직장생활에 대한 회의감이 밀려들었다.
늦은 시간의 도심 한복판에서 그렇게 난 혼자 있었다. 다시 오지 않을 내 젊은 날의 소중한 시간을 회사에서 소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를 알고 싶었고 스스로 납득되고 싶었다.
정답을 찾아 여기저기 헤매고 다니던 나는 네덜란드의 철학자인 요한 하위장아의 "노동과 놀이"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다. 직장인들의 고민은 결국 "행복하지 않아서"인데 하위징아의 "노동과 놀이"라는 개념을 접하고 나는 고민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고민하는 이유도 알고 보니 "노동과 놀이"의 개념이 잡혀있지 않고 혼동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내 머리 속에 회사, 일, 성취, 목표, 취미, 행복, 시간에 대한 생각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로 뒤죽박죽 섞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생산적 활동과 비생산적 활동의 경계가 모호하고 "직장생활" 에 대한 명확한 개념도 없었다. 그냥 남들이 회사를 다니니까 나도 다니고 먹고살기 위해 회사를 다니고 있는 꼴이었다. "노동과 놀이"의 개념을 잡고 보니직장생활에 대한 생각이 어느 정도 머릿속이 정리가 되었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직장인들을 위해서 하위징아의 "노동과 놀이" 개념을 잠시 이야기 해보겠다. 직장생활의 기본개념은 사실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하니까.
암벽등반이 취미인 남자가 주말을 이용해 암벽을 오르고 있다. 즐거울까? 괴로울까? 당연히 즐거울 것이다 근데 만약 당신이 회사 워크숍을 갔는데 회사 인사팀에서 극기 훈련을 한다고 암벽에 매달아 놓고 암벽등반을 마친 사람만 집에 갈 수 있다고 엄포를 놓으면서 당신을 암벽에 매달아 놓는다. 그럼 당신은 암벽 오르는 것이 즐거울까? 괴로울까? 아마 괴로울 것이다.
똑같이 암벽을 오르는데 누구는 즐겁고, 누구는 괴롭다. 둘의 차이가 뭘까? 암벽등반이 취미인 남자는 놀이로 즐기고 있기 때문에 즐겁고, 회사 워크숍에서 극기 훈련 중인 당신은 노동을 하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다. 이것이 노동과 놀이의 차이이다.
목적과 수단이 같으면 놀이이고 목적과 수단이 다르면 노동이다.
노동과 놀이를 구분 짓는 것은 아주 간단하다. 목적과 수단이 같으면 놀이이고 목적과 수단이 다르면 노동이다. 암벽등반이 취미인 남자는 암벽 오르는 게 좋아서 암벽을 오른다. 목적과 수단이 같다. 그러니까 놀이로 즐기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회사 인사팀에서 시켜서 어쩔 수 없이 집에 갈 목적으로 암벽을 오른다. 목적과 수단이 다르다. 그럼 노동이 되는 것이다. 노동이 되었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다.
회사에서 시켜서 어쩔 수 없이 집에 갈 목적으로 암벽을 오른다. 목적과 수단이 다르다. 그럼 노동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생각해보자. 회사에서 회식을 한다. 회식은 노동인가? 놀이인가? 기업에 강연을 가면 꼭 물어보는 질문이다. 대다수의 직원들은 목적과 수단에 대한 설명을 듣고 곧바로 정의 내린다. "회식은 노동"이라고. 특히 국내 굴지의 대기업 모계열사 직원들은 "회식은 노동"이라고 강의장이 떠내려 갈 정도로 함성에 가까운 합창을 하였다. 잠사나마 그들은 누군가에게 저항을 한 것이다. 그들의 저항정신에 박수를 보낸다.
이들과 마찬가지로 대다수의 직원들은 "회식은 노동"이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간혹 "회식은 놀이"라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다. 누구냐 하면 바로 그 회사의 술 좋아하는 "부장"이다. (하여간 진상들이다)
그렇다. 회식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부장이 술을 좋아한다. 팀원들 다 모아놓고 폭탄주를 한 잔씩 돌린다. 폭탄주가 좋아서 폭탄주를 마신다. 목적과 수단이 같다. 부장은 놀이다. 그래서 부장이 회식을 좋아하는 것이다.(하여간 진상이다) 당신은 어떤가? 폭탄주 안 마시고 회식 빠지면 찍힐까 봐 어쩔 수 없이 참석한다. 목적과 수단이 다르니까 당신은 노동이다.
하위징아 주장의 핵심은 이것이다.
“인간의 본질은 놀이이다. 놀아야 행복하고 인간의 어떤 행위가 놀이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간의 자율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즉, 자발적 행위라야 놀이가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놀이는 자율성이 기본이고 어떤 행위라도 명령, 통제, 기한이 있으면 놀이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율성이 없으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다니고 있는 회사는 어떤가?
조직이 있고 상하관계가 있고, 정해진 시간이 있고, 실적과 목표가 있다. 언제까지 출근해서 어떻게 일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다. 다른 말로 바꾸면 명령, 통제, 기한이 있다. 결국 직장인들은 회사에서 놀이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노동은 즐겁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회사에서 일하는 게 즐겁지 않고 행복하지 않은 것은 아주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언론이나 인터넷 읽어보면 즐기면서 일을 해야 된다고 하고 수많은 명사, 멘토들도 하나같이 하는 말이 즐기면서 일을 하라고 한다. 근데 나는 지금 회사 일을 즐기면서 하는 것 같지 않고, ‘이 일이 나랑 안 맞나?’, ‘내가 끈기가 부족해서 못 즐기는 건가?’ 이런 고민이 들고 일을 즐기지 못하는 나는 경쟁에 뒤처진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던가? 다시 한번 확실하게 이야기 해주겠다.
“전혀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면 행복할 것이라는
‘내가 좋아하는 일’에 대한 환상
정리되어 있지 않은 생각의 조각들을 모아 깔끔하게 정리하자면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우리는 노동을 하고 있는데 주변에서 자꾸 놀이로 즐기라고 하니까 놀이로 즐겨야 될 것 같은데 그게 잘되지 않으니까 혼란스러운 것이다.
좀 전에도 언급하였다시피 자율성이 없이 명령, 통제, 기한이 있으면 놀이가 아니고 노동이다. 근데 우리는 자꾸 노동하는 시간에 놀이를 찾으면서 ‘이게 난 왜 안 되지?’라고 혼란스러워 하는 것이다. 노동은 신성하고 소중하다는 속성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돈을 버는 수단이지 즐겁고 행복한 행위는 아니라는 거다.
이 사실부터 명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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