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복사꽃이 화사하게 피고, 흐드러진 벚꽃이 가벼이 날리며 아름다운 벚꽃비를 만들어내던 날, 환하게 웃던 할머니가 네모난 사진 속에서 움직이질 않았다. 할머니는 내 손을 꽉 쥘 때면 항상 단단한 두 손으로 힘 있게 잡아주었는데. 앞으로 누가 그렇게 내 손을 잡아줄까. 그렇게나 반갑게, 그렇게나 따뜻하게, 또 그렇게나 힘 있게 꽉 잡아줄까.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손을 잡는 것만으로도 느껴졌다. 할머니의 사랑이. 그 큰 사랑이.
할머니의 온몸은 차갑고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할머니는 뜨끈하게 몸을 지지는 걸 좋아하는데, 한여름에도 뜨끈뜨근 전기장판에 보일러까지 틀던 할머닌데, 새하얀 수의를 입고 차디찬 철제 프레임 위에 가만히 누어 있던 할머니. 온몸을 어루만지고 두 눈을 한참 바라보았다. 두 눈은 위아래가 군데군데 붙어 있었다. 틀니를 뺀 입은 살짝 벌어진 채 돌처럼 굳어 있었다. 말도 안 돼. 사랑하는 나의 할머니. 사랑하는 나의 할머니.
애들아, 할머니 돌아가셨단다. 일요일 아침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다 잠시 쉴 때 엄마에게 온 그 카톡을 봤다. 처음 나온 말은, 잘 됐어 잘 됐어 잘 됐어, 였다. 몇 번이고 반복했다. 진짜 잘 된 거였다. 최근 병원에 있는 할머니를 보러 다녀온 후, 나는 할머니의 건강 회복을 바라는 글 대신, 하루빨리 죽음을 바라는 듯한 글을 썼다 지웠다 하다 끝내 발행하지 못한 채 저장해 두었다. 할머니의 죽음을 바라는 손녀라니. 이런 글은 도무지 올릴 수가 없었다. 물론 희망을 품던 때도 있었다. 할머니가 다시 걷는 날을 위해 재활 치료를 받으면 안 되겠냐고 엄마에게 졸랐고, 방울이를 데리고 올라갈 테니 한번만 병실 밖으로 나가게 해달라고 외숙모에게 졸랐다. 지난 몇 년 몇 번의 고비를 넘겨 또다시 활짝 웃어주었던 것처럼 기적처럼 살아남길 바랐다. 하지만 철제 침대에 누운 할머니의 뼈밖에 남지 않은 팔다리를 쓸어 내릴 때, 주사의 흔적으로 곳곳이 까맣게 변해버린 얼굴 피부를 어루어 만질 때, 그때 깨달았다. 그건 내 욕심이었다고. 꽃피는 봄날, 아픔 없이 너무나 잘 가셨다. 치매에 걸려 우리를 알아보지 못할 때도 '수고가 많아요', '고마워요'를 외치던 할머니는 그렇게 떠나는 순간마저도 아름다운 봄날의 축복을 받으며 떠났다.
그 모든 이야기를 발행해둘 걸 그랬다. 그 당시 할머니와 나눈 이야기, 할머니를 만나고 든 생각들을 모두, 더 상세하게 기록해둘 걸 그랬다. 할머니의 앙상하지만, 신기할 정도로 따스했던 그 품이 손 내밀면 닿을 듯 생생하다. 입을 가리고 빵 터지던 순간, 배우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배우라고 이야기하며 반짝이던 눈, '처음 먹는데 참 맛있다'며 단골집 칼국수 면을 젓가락에 돌돌 말아 입에 넣던 손가락까지. 할머니의 죽음이 가장 두려운 이유는, 이렇게나 사랑으로 충만했던 할머니와의 모든 소중한 순간들이 점차 흐려질 거라는 것이다.
할머니는 아무 것도 남겨두지 않고 흙으로 돌아갔다. 앞으로 나는 새로운 만남, 또 다른 이별을 경험하고 자주 웃고 가끔 울며 또 하루하루를 살아갈 것이다. 그러는 사이 할머니와의 추억은 조금씩 작아지고, 희미해질 것이다. 할머니가 내게 분명히 소중한 존재였다는 그 한 가지 짙은 사실만 남긴 채.
그러니 나는 할머니를 더 필사적으로 기억해야 한다. 하나도 빠짐없이 그리운 할머니와의 순간을. '할머니~' 하고 시작하던 모든 실 없는 말들이 눈물나게 그립다.
할머니, 하연이 소연이 왔어요~
할머니, 우리 칼국수 먹으러 가자.
할머니, 할머니가 해준 계란찜 먹고 싶어.
할머니, 나 누구야?
할머니, 또 올게. 금방 올게.
33년생 박순례, 나의 사랑하는 할머니는 코로나19 후유증으로, 2024년 4월 6일, 하늘이 맑고 꽃들은 분홍빛으로 만개하고 연녹색 새싹이 녹음지는 아름다운 계절에 하늘나라로 갔다. 오랜만에 만나는 할아버지, 우리집을 지켜주던 작은 강아지들 바둑이 노랑이, 앞집 뒷집 다 죽고 없다고 한스러워하던 할머니 친구들 짜짜 할머니와 팽창 할매까지. 모두모두 오랜만에 만나 언제나처럼 활짝 웃고 있기를. 우리 모두가 태어나기 전, 할머니의 엄마 아빠 형제자매 유년시절 친구들까지 오손도손 만나 소녀처럼 웃고 떠들고 있기를. 그러다 눈이 퉁퉁 부어 코보다 더 튀어나온 언니와 나를 보곤, 뭐 그리 슬픈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우느냐고 얼굴을 거칠게 쓸어 내리고 손을 언제나처럼 세게, 꼬옥 잡아주기를. 어여 자자, 또 오거라, 해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