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땡땡 Aug 21. 2019

화를 내는 당신에게 부탁합니다

화내는 일만큼은 유일하게 최선을 다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사람 사는 곳이다 보니 아침에도 점심에도 저녁에도 남이랑도 친구랑도 애인이랑도 엄마랑도 다툼이 없는 이 땅은 없다. 나도 그럴 때가 있고 상대도 그럴 때가 있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날 때는 누구나 있다. 절대 없을 사람은, 절대 없을 상황은 절대 없다.

다툼은 누군가의 잘못일 때도 있을 것이고 서로 간의 오해일 때도 있을 것이고 다양하다. 물론 다툼을 일으킨 자가 누구인지와 그 오해가 만들어진 원인에 따라 상황도 달라지고 화를 내는 주체도 달라진다. 화가 나는 입장에서는 무슨 소리를 못하겠는가. 잘못의 경중에 따라 달라지기는 해도 분명한 것은 잘못한 자는 한없이 작아져 온갖 쓴소리와 뭇매를 감수해야 한다는 것 그것은 분명하다. 사람에 따라 성격에 따라 화를 내는 것 또한 제각각 다르겠지만 화가 났다는 것은 평소의 모습과는 아주 다른 극도의 분노를 쏟아내는 상황이기에 화를 내는 본인도 무슨 말과 행동을 할지 모르는 충동에 휩싸여 가슴속 모든 화를 뱉어낸다.


내가 하고자 하는 부탁은 바로 이 시점을 말한다. 물론 나 역시 화가 나면 주체할 수 없는 화를 뱉어내지만 언제부터인가 100% 화를 다 뱉지 못하는 나를 발견해오고 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다. 성인이 되면서부터인 것 같긴 하다. 학생 때에는 그 누구보다 경솔하게 그 누구보다 큰 소리로 상대가 무너지기만을 바라는 마음을 다해 뱉었다. 그게 얼마나 위험한 행동인지도 모른 체 말이다. 뱉으면서 상대가 무너지는 그 모습과 내 눈 하나 보지 못하고서 작아지는 그 모습에 나는 희열을 느꼈던 걸까. 얼마나 잔인한지 왜 몰랐을까.

잘 못을 했으면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하지만 죽을죄가 아님에도 왜 그렇게까지나 전력을 다해 화를 냈을까. 어쩌면 내가 화를 뱉어내는 것에 전력을 다하지 않기 시작한 것은 상대가 무너지는 모습에 승리의 쾌감이 아닌 되려 모질었던 내 모습과 시원한 게 아니라 찝찝함만 남았던 그 기분 이후부터였을지도 모르겠다.

시원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괴로웠고 차라리 잘잘못을 따지고 사과를 받고서 조용한 수용과 괜찮다는 말 한마디를 왜 하지 못했을까에 대한 후회만이 남았다. 그래서 나는 그러지 않는다. 화를 내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 물론 아주 너그러이 한없이 웃으며 받아들이는 사람까지는 못되었지만 그래도 화를 내는 일에 내 열과 성의를 전력을 다하지는 않는다. 나를 위해서 이기도 하고 내일 또 봐야 할 수도 언젠가 또 마주쳐야 할 수 도, 마주치지 못할지라도 그 사람에게 잔뜩 인상을 쓰고서 모질디 모진 내 잔상만 기억될까봐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내가 그렇게 바뀌고부터 한 가지 참 속상한 것이 있긴 했다. 화가 나는 당신에게 미안하면서도 나는 당신의 모진 그 모습에 상처받고 있다는 점이다. 내가 부탁하고자 하는게 이것이다. 화를 낼 때 최선을 다하지 말자는 것 말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화가 났고, 죄인인 나는 화를 내는 것을 당연히 받아들이고서 미안한 마음과 용서를 바라는 마음으로 당신의 눈을 볼 수 없고, 당신에게 내 목소리를 낼 수 없다. 화가 나있는 당신의 입을 막을 순 없지 않은가. 그래서 죄인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은 '듣기' 뿐이다. 그래서 듣고만 있는 것이다. 당신은 그 시간에 '말하기'를 한다. 그 말하기의 시간 동안 당신이 쏟아내는 말과 행동은 당연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얼마나 많은 상처가 되는지 한번 생각해본 적 있는가. 죄인의 상처까지 이해해야 하냐는 생각을 접어두고 생각해보는 것이 포인트다. 용서하고 화해하고 다시 웃으며 돌아갈 수 있지만, 한 때 죄인이었던 내게 전력을 다해 화를 뱉던 당신의 표정과 한숨, 가슴 깊이 울려 드는 고함이 다 잊히지는 않는다. 깔끔하게 그 기억이 사라져 주면 좋으련만 기계가 아닌데 영구 삭제가 될 리가 있는가. 언제든 꺼내면 선명하게 보일 기억으로 남아있다. 잊고 싶지만 이상하게 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고 당신이라는 사람의 새로운 일부를 만들게 한다.


 용서를 너그러이 해주는 그다음 단계를 생각하기 이전에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어떨까. 최선을 다해서 화를 내지 않고 조금 부족하게 뱉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조금만 덜어내고 뱉어내면 당신의 마음도 되려 괜찮아질 테고 더 깨끗해질 것이다. 잘못한 사람의 입장에서도 당신을 향한 미안함의 진정성은 짙어질 것이고 고마운 마음에 최소한 같은 이유로 얼굴 붉히게 하는 일은 더 적어질 것이다. 그러면 내 기억 속에 당신의 모습 중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은 없을 것이다.


화가 나는 당신에게 부탁까지 해서 정말 미안하지만, 조금 살살 부탁한다.


이전 06화 칭찬월급+퇴사없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