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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선아 Nov 11. 2017

퇴근길 스케치 #14

퇴사하던 날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만원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사람들의 행렬에 따라

순례자들처럼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뚜벅뚜벅 떠밀리며 출근을 했다.

한강 물빛과 한강다리들이 경쾌하게 아침 햇살에 빛나고 있었다.

신기한 일이었는데, 아니 그것은 우연일 뿐인데 나에게만 의미로 다가오는 그런 장면이었다. 

보라매공원 가로수길 끝을 지나 가야 했던 출근 길이 공사장의 간이 벽으로 가로막힌 것이다. 

그리고 그 가벽에는 사진과 같은 작은 문이 뚫려 있었다. 공사는 지하철 공사였고, 그건 그저 공사장의 문일 뿐이었는데, 유독 마지막 출근 날  내 눈에 보인 그 작은 문은 나에게 다른 삶으로 나가는 문처럼 보였다. 

점심 시간에 사랑하는 동료들과 맛있는 식사를 하고, 보라매공원 청소년카페에서 차를 마셨다.

이 역시 일상적인 일이었지만, 유독 카페 창가에 놓인 꽃이 나에게 수고했다고 말하는 듯했다.

출퇴근 길을 수없이 반복해서 걸었다.

이 길에서 많은 친구들을 만났다. 이들이 있었기에 내 발걸음은 행복했다.

비가 오는 날 만났던 작은 달팽이들이 행인의 발에 짓밟히지 않기를 바랐다.

사마귀들은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었다. 늠름한 존재감으로 어디서나 용감해 보였다.

아주 작은 틈에서 자라는 싹을 보았다.

사색에 잠긴 저 흰 새는 항상 한 다리로 서서 물 빛에 자신을 비춰보았다.  

물오리 커플, 항상 반가웠다.

까치들은 풀쩍 뛰어 앞서가서는 짐짓 옆을 보았는데, 그들은 공원의 인간들을 대부분 익히 알고 있는 듯했다.

바람과 계절의 방향을 바라보는 듯한 까치의 옆모습.

비둘기들이 또 내 앞길을 먼저 걸어가 주었다. 비둘기들은 다친 새들도 많아서 마음이 찜찜했었다.

친구들과 인사를 마치고, 나는 어김없이 눈물을 흘렸다.

사랑했던 사람들과 보람있던 일들이었다.

퇴근길의 가로등이 가는 내 발길을 비춰주었다.

호수에 비친 가로등도 내일 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자, 특별해 보였다.

붉은 가로등 불빛과 푸른 하늘 빛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가로등 여럿이 불을 비춰주자, 내 그림자도 여럿이 되었다.

마치 이곳의 생활과 이별하는 또 다른 내 그림자 같았다.

그렇게 퇴사를 했다. 한 이십여 년의 직장생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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