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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마 Jul 24. 2024

다 나가주세요, 혼자 있고 싶어요

점심 대신 산책으로 구원한 회사 생활

다 꼴 보기 싫으니 혼자 먹을게요

대부분의 회사 생활에서 점심은 누군가와 함께 나가서 먹곤 했다. 잠시나마 회사를 뛰쳐나가서 수다라도 떨고 들어와야 오후를 견딜 수 있었으니까. 처음 밥을 혼자 먹게 된 건 팀장이 되고 1년쯤이 지나서였다. 내 바로 아래의 파트장 두 명이 서로 절친처럼 친하길래 나까지 세 명이 신나게 나가서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곤 했는데, 회사의 사람 관계라는 게 대부분 그렇듯 너무 빨리 친해진 사람들은 그만큼 빨리 사이가 틀어지더라. 두 파트장이 갑자기 서로를 증오하기 시작하더니, 밥은커녕 회의를 같이 진행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티격태격하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그들이 싸우는 꼴을 보는 것도 지겹고, 싸우느라 일은 진전이 안되고, 파트장들이 싸우는데 그 아래 팀원들이 일을 제대로 할 리도 만무했으니 나는 시름시름 입맛을 잃어갔다. '다 꼴 보기 싫다'는 생각에 점심을 혼자 먹기 시작했다.


입 짧은 자의 점심이란

혼자 나가서 먹는 건 좋았지만, 입이 짧은 나는 어느 식당을 가도 밥이 반쯤 남아버렸다. 회사 주변의 밥집이 한정적이라 어딜 가도 자꾸 회사 사람을 마주치는 것도 싫었다. 아침마다 도시락을 싸 올 기력은 없었고 식당에 가기엔 슬슬 돈이 아까워진 나는 밥을 굶고 회사 주변을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퇴근을 하면 바로 저녁밥 생각에 입맛이 싹 돌았지만, 회사에만 있으면 배도 안 고프고 밥맛도 없었다. 커피나 하루에 다섯 잔씩 마셔대며 저녁 8시까지 공복으로 지내고도 큰 탈 없이 살아남았던 것은 점심 산책과 저녁밥 덕분이라고 본다. 햇빛을 쬐며 한 시간 동안 노래를 쾅쾅 들으며 걷다 보면 누군가와 점심 먹으며 수다를 떨 때보다 훨씬 건강한 에너지가 충전됐다. 어차피 누구와 함께 밥을 먹어도 회사 욕밖에 안 하는 거, 혼자 삭히는 게 나았다. 그러고 퇴근 후엔 무조건 맛있는 걸 먹었다. 다행히 위도 장도 굶주린 기간을 잘 버텨주었다.


다들 왜 밥을 안 먹냐고 걱정했지만 회사에서 혼자일 때가 가장 행복한걸요

그때의 회사 생활을 돌이켜보면 혼자 보낸 점심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우연히 발견한 좋은 산책로에 책과 샌드위치를 들고 가서 앉아있기도 하고, 조금 떨어진 곳에 새로 생긴 힙한 카페를 아지트 삼는 것도 즐거웠다. 하루종일 탈수기에 들어간 것처럼 윗사람, 아랫사람, 옆팀, 거래처 모두에게 털리는 기분이 들다가도 일단 점심시간이 되어 혼자 밖으로 뛰쳐나가면 잠시 도망친 기분이 들었다. 한여름 땡볕에 더 멀리 걸어 다니려고 회사에 운동화와 캡모자를 놔두기도 했다. 거래처가 점심 식사 약속이라도 잡으려 들면 어떻게든 식사가 아닌 커피 약속으로 바꾸기도 했다.


도시락을 싸다닌 것은 한참 후, 인생 최저 몸무게를 찍고 퇴사한 뒤 새로 들어간 회사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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