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아무도 물어보지 않아서 나에 대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답답함에 무작정 집을 나섰다. 오전 10시. 이 시간쯤이면 항상 나는 시계를 보곤 했었다. 사무실에 출근해서 같은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전날에 있었던 일을 정리하거나 지난주에 있었던 일을 정리하다 시계를 보면 거의 항상 같은 시간이었다. 10시가 되기 직전이거나 10시가 막 지난 시간. 월요일 아침 10시에 항상 회사에 있었는데, 하는 생각을 또 하고야 만다. 며칠 집에만 있으니 답답해졌다. 답답함에 무작정 집을 나섰다. 갈 데가 마땅히 없어서 아무 데나 걸었다. 낯선 곳을 걸어본다.
앞으로 걸었다가 다시 뒤쪽으로 걸었다가 저기 끝까지만 걸어볼까, 하면서 방향도 목적도 없이 걸어본다. 길이 이렇게 넓고 큰데 아무도 없구나, 길이 아닌 곳을 걸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나는 그동안 누군가가 정해준 길만 걸었구나, 하는 노래 가사 같은 감성에 젖어들다가 얼른 고개를 세게 저었다. 내 생각을 읽은 이가 있을까 봐 순간 창피해졌다. 아무도 없다는 걸 알았는데,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걸 알았는데도 창피함에 걸음을 재촉하며 그곳을 지나갔다.
이제 막 개발이 시작된 이 동네는 지나가는 사람조차 만나기 어려운 곳이었다. 세상이 멸망하고 이 지구에 나 혼자 살아가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해주는 동네다. 우리 집 주변부는 대부분 공터였고, 그곳에는 아무렇게나 자란 나무와 괴기스러운 풀들이 서로 마구잡이로 엉키어있었다. 공터 옆길에 심어진 나무들은 내 키보다 조금 컸고, 말랐고, 살아있을까 싶을 정도로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 애들이 대부분이었다. 길도 있고 나무도 있지만 아무도 걷지 않는 길이 많았다. 나는 방향을 잡지 못하고 한자리를 빙글빙글 돌기도 했다.
죽었을지도 모르는 나무들이 나란히 심긴 공터를 걷고 있는 동안에도 나의 눈과 나의 마음은, 오전 10시에 항상 있었던 그곳에 갔다 오곤 했다. 연인에게 헤어짐을 통보받은 사람처럼 이제 혼자라는 사실을 애써 떠 올려 야만 하는, 그런 식으로 이해해가는 중이었다. 그동안 있었던 일이 꿈처럼 느껴져 마치 없었던 일인가 싶기도 했고, 그 공간에서 기쁘고 행복했던 일들만 생각나 절대 못 잊을 것 같은 힘든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일에서도, 공간에서도, 사람 사이에서도, 나는 미련이 많았다. 쉽게 잊지 못하고 마음 안에 재워야 했다.
그날은 갑작스러웠다. 금요일 퇴근할 때까지도 예상하지 못했다. 나의 퇴사는 내가 없는 주말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고. 월요일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통보받았다. 쉴 틈 없이 빠르게 돌아가던 나의 시간이 한순간에 멈추던 날이었다.
당황스러웠으나 기뻤고,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했다. 기쁨이 있었던 이유는 항상 자유로워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토록 바라 왔던 퇴사'라고 생각하니 내가 원했던 일이라고 여겨졌고, 그래서 잠시나마 기뻤다. 내 시간을 내 뜻대로 사용하면서 주인으로 행세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은 불안함을 덮어두기에 좋았다.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했는데 기뻐서인지 슬퍼서인지는 나도 알 수가 없었다. 둘 다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 날 나와 같이 통보받은 누군가는 점심시간이 되기도 전에 사무실을 바로 떠났으나, 나는 차분히 내 자리에 앉았다. 다시는 앉아 볼 일도 없거니와 내 것이라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새삼스러워진 시간이었다. 반드시 가져가야 할 물건도 없었고, 집까지 2시간을 넘게 가야 하는 거리를 생각해서 정리하는 대신 대부분을 버리고 나왔다.
오전 10시가 되면, 집을 나와 걷기 시작했다. 세상이 멸망하고 이 지구에 나 혼자 살아가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해주는 동네가 좋아졌고, 이 세상의 끝까지 가더라도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 위로되기도 했다. 남아도는 시간을 무엇을 위해, 어떻게 써야 할지 알 수 없을 땐, 하는 일 없이 맨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