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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누나 Sep 26. 2019

팥죽 첫 번째로 잘하는 집_우리 집

삼남매의 일순위 엄마음식 팥칼국수


엄마는 경상도 토박이지만

아빠는 전라도 해남에서 자라셨다.

전라에서 '팥죽'이라 하면 대부분 '팥칼국수'를 생각한다고 한다.

엄마가 할머니에게 직접 전수를 받은 것은 아니지만, 아빠의 오랜 음식이라 엄마가 자연스럽게 우리가 클 때도 가끔 만들어주는 음식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 삼남매는 팥칼국수 하는 날이 제일 좋았다.

나는 이게 전라도 음식이라는 것도 몰랐고, 그래서 대학교에나 가서야 친구들이 팥칼국수를 먹어본 적 없다고 했을 때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다. 사실 흔히 먹는 팥죽에 새알이 아닌 칼국수면을 넣는 게 다를 뿐 엄청나게 다른 맛은 아니건만, 칼로 송송 썰어내는 엄마표 수타면과 찹쌀을 살짝 섞어 되직한 팥죽의 조화는 어느 집에서도 맛볼 수 없는 엄마 손맛이다.


팥칼국수 하는 날은 미리 공표하신다.

우리는 그 끼니 때는 꼭 비워두고 집에 붙어있는다.

그리고 몇일 전 해주신 뜨끈한 한 그릇, 

위장이 자그마해서 많이 못 먹는 나인데 이건 꼭 한그릇 쓱쓱 다 비운다.


소금 간을 하고 설탕은 자기가 알아서 조절해서 넣어 먹는다.

난 반 수저면 충분한데, 달게 먹는 언니랑 동생은 거진 두 스푼을 넣어야 해서 엄마가 못마땅해 하신다.

실제로 전라도에서 파는 것을 먹어보진 못했지만 설탕을 많이 넣어 정말 달달하게 먹는다고 한다.

먹느라 급해서 사진을 예쁘게 찍지도 않았던 것 같다.


하자마자 먹는 것도 정말 맛있지만 나는 남은 것 냉장고에 넣어두어 살짝 굳은 것도 좋아한다.

그렇게되면 데워도 숟가락으로 '퍼'먹어야 하는데 그러면 또 다른 맛.


아빠에게 여쭤본 적 있다.

엄마 팥칼국수가 할머니것보다 맛이 있느냐고.

대답을 얼른 못하신다.

"자기  엄마의 손맛은 아무도 못 따라하는거야. 아무리 네 엄마가 요리를 잘해도 아빠가 기억하는 할머니표 팥죽은 다른 맛이지."

듣고보니 끄덕끄덕하게 된다. 그리고 묘하게 슬퍼지는 건, 아빠가 더 이상 '엄마 손맛'을 맛보지 못한다는 사실과, 내가 엄마에게 이걸 배워도 나도 '엄마 손맛'은 흉내낼 수 없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다.

세상엔 먹을 것이 넘치고 맛있는 것도 많지만, 

역시 자기에게 익숙한 맛, 자라면서 접한 맛의 정서 내지 기억의 힘은 생각보다 크다.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할머니의 팥죽맛은 어땠을지 없는 오늘, 문득 해남 할머니댁이 무척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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